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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변방을 찾아서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1) 해남 송지초등 서정분교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ㆍ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곳, 변방이 희망이다

작고 낡은 교문은 비좁은 시골길 옆 비탈 위에 있었다. 구불거리는 도로를 앞만 보고 내달렸다면 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지나쳤을 것이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9일 서울에서 자동차로 6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의 서정분교다.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대로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았고 교문으로 올라가는 길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언제 폐교될지 알 수 없어 외관에 투자를 거의 하지 않은 탓이다. 아이들이 서울에서 온 낯선 손님들을 어려워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러나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이 모든 것은 외지인의 편견과 기우에 불과한 것임을 깨달았다.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저학년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와 환영 인사를 퍼부어댔다.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우리는 수업 다 끝났고요, 6학년 형들은 아직 교실에 있어요.” “이거 무슨 인터뷰 같은 거 하는 거예요?”

신영복 교수가 9일 전남 해남군 송지면 서정분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6학년 김남훈군(신 교수 오른쪽)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과 닮았다”고 하자 신 교수가 웃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대개의 시골 분교는 학생 수가 매우 적어 늘 폐교 위기에 시달린다. 서정분교도 학생 수가 5명까지 줄어 문 닫을 처지에 놓인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45인승 통학버스로 해남 읍내에 사는 학생들을 실어 날라야 할 만큼 시끌벅적해졌다. 전교생은 66명이고 교직원도 13명에 이른다. 도시에서 귀농한 학부모들이 자녀를 일부러 이 학교로 보내기도 한다.

세상의 일반적인 흐름을 거스르는 곳에는 주목할 만한 특별함이 있다. 신영복 교수가 ‘변방을 찾아서’의 첫 번째 방문지로 서정분교를 선택한 이유도 여느 분교와는 다른, 어떤 ‘변방성’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지리적·공간적 의미에서 변방은 변두리, 주변부를 뜻합니다. 하지만 저는 담론 지형에서의 변방, 즉 주류 담론이 아닌 비판적·대안적 담론이라는 의미로 변방의 뜻을 설명하고 싶어요. 우리 사회는 더 많이 소비해야 하고 더 빨리 달성해야 하는 곳입니다. 이 같은 우리 사회의 문맥을 성찰하고 반성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변방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농촌 현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인구가 줄고 작은 학교는 폐교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까지 앞두고 있어요. 해남도 우리 시대의 변방인 농촌이고, 그중에서도 분교는 주류 담론과 근대적 가치에서 소외된 곳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곳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심부의 시각으로 변방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변방에서 우리 사회 중심부를 바라보고 고민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지요.”

신 교수가 서정분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7년이다. 분교가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단체에서 책 5000권을 기증받아 교내에 도서실을 개관할 때 신 교수가 현판을 썼다. 현판 글귀 ‘꿈을 담는 도서관’은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꿈을 키우길 바란다는 뜻으로 학교 측에서 골랐다. 당시엔 해남까지 거리도 멀거니와 일정이 여의치 않아 직접 가지는 못하고 글씨만 써서 보냈다. 학교 측은 답례로 알이 굵은 고구마상자를 보냈다. 분교 근처 사찰인 미황사의 주지 금강스님이 이 아름다운 물물교환을 주선했다. 신 교수가 왔다는 소식에 금강스님이 분교를 찾아왔다.

신영복 교수가 2007년 서정분교 도서실에 선물한 현판이다. 학교 측이 고른 글귀를 신 교수가 쓰고 삼목불교문화재 오영철 소장이 목각을 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8년쯤 전이에요.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요청해 학군을 조정하고 학생들을 본교로 보내면서 그나마 30명 있던 학생이 3년 새 5명으로 줄었습니다. 서정분교는 40여년 전에 지역 사람들이 울력으로 세운 학교예요. 교정의 돌과 나무도 주민들이 달마산에서 캐서 옮기고 심었지요. 서정분교 출신들이 지역공동체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니 학교가 사라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폐교 공청회에 참석해 폐교를 막았어요. 그리고 해남 지역 주민들 중에 학교 살리기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금강스님과 주민들은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이 성공한 사례를 수집하고 서정분교에 알맞은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머리를 맞댄 결과, 서울의 비싼 사립학교가 부러워할 만큼 알찬 방과후학습 과정을 만들자는 답이 나왔다.

주민들은 전교생 5명을 위한 방과후교실을 운영하기 위해 재능을 내놓았다. 영어를 잘하는 주민은 영어를 가르쳤고 피아노를 잘 치는 주민은 피아노 연주를 가르쳤다. 미황사 측이 초빙한 숲 해설사는 학생들과 함께 달마산을 누볐고 미황사의 승합차는 학생들을 태우고 이리저리 소풍을 다녔다. 금강스님도 팔을 걷어붙이고 아이들에게 탁본을 가르쳤다.

서정분교에 다니면 잘 배우고 잘 놀 수 있다는 소문이 해남 읍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생각이 트인 젊은 학부모들이 자녀를 분교에 입학시켰고, 학생 수가 40명까지 늘었다. 서정분교는 해남 읍내를 오갈 25인승 통학버스를 구입했다. 통학 문제가 해결되니 오겠다는 학생이 더 많아졌고, 학생이 불어나니 교사 수도 5명, 6명 계속 늘었다. 책을 기증하겠다는 곳이 나타났고, 교실 한 칸을 떼어 도서실로 꾸몄다. 도서실 입구에 신 교수 글씨를 목각한 현판을 걸던 날은 서정분교가 폐교 직전의 시골 학교에서 살아있는 교육의 본보기로 거듭나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한때 교사들이 ‘유배지’로 여겼던 서정분교는 이제 대안 교육을 꿈꾸는 이들이 자원하는 학교가 됐다. 올해 서정분교로 옮겨와 3학년을 맡고 있는 이미숙 교사도 스스로 이 학교를 찾아온 경우다.

“이전에 다니던 학교는 교장·교감이 하달하는 지시를 교사들이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반면 서정분교는 교사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계획을 세우면 교육 과정에 바로 반영할 수 있습니다. 소신있는 교육을 할 수 있으니까 정말 행복하고, 살아있다는 게 느껴져요.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모두 모이는 ‘다모임’ 시간이 있어요. 학생들이 어떤 사안을 두고 결론이 날 때까지 끝장토론을 하는 거죠. 오늘도 급식의 배식을 종전처럼 고학년들이 맡을 것인지, 아니면 각자 먹고 싶은 만큼 직접 담을 것인지 토론했어요. 다모임을 통해 학교 운영에 참여하게 되면서 아이들도 자주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서정분교 아이들은 학년에 관계없이 통학버스가 읍내로 출발하는 오후 4시30분까지 학교에 남아있는다. 수업이 끝난 아이들은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논다. 비가 쏟아져 운동장이 질퍽해지면 질퍽해진 대로 진흙탕에서 뒹굴고, 햇볕이 좋은 날은 근처 냇가에서 첨벙거리며 고기를 잡는다. ‘꿈을 담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세상 모르고 책을 읽다가 책 속 주인공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기도 한다. 추석을 앞두고 있던 때라 이날은 전교생이 교실에 솥을 놓고 송편을 만들었다.

“이거 드세요.” 여자아이 하나가 송편 한 접시를 교무실로 들고와 탁자 위에 얼른 내려놓고 도망치듯 내뺀다. 송편을 맛보는 동안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아이가 교무실 문 밖에 엎드린 채 문 안쪽을 슬쩍슬쩍 들여다본다. 무슨 얘기들을 나누고 있는지 궁금해죽겠는데, 수줍어서 들어오지는 못하는 것이다. 신 교수가 “너도 들어와서 같이 먹자”고 손짓했더니 냉큼 달아난다.

김성철 교감은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아이들이 만나고 싶어하고 말도 붙여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저희 아이들은 처음 본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해요. 워낙 자유롭게 생활하니까 교사 입장에선 무슨 사고라도 날까봐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어린아이들이니 많이 뛰어놀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도 ‘그 학교 어떤 학교냐’ ‘여건이 맞으면 아이를 보내고 싶다’는 문의가 와요. 일반 학교의 정해진 규율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전학을 오기도 합니다.”

신영복 교수가 서정분교 아이들과 축구를 하고 있다. 아이들은 통학버스가 해남 읍내로 출발하는 오후 4시30분까지 공을 차거나 술래잡기를 하며 논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서정분교는 올해 ‘시범 무지개학교’로 지정됐다. 무지개학교는 전남도교육청이 지역의 열악한 교육 여건을 극복하고 공교육을 내실화하고자 시행하는 혁신학교 사업으로, 시범 무지개학교로 지정된 30개 학교 중 분교는 서정분교가 유일하다. 금강스님은 “분교이다보니 언제 문을 닫을지 몰라 늘 불안했는데 무지개학교로 지정되면서 마음을 놓았다”고 했다.

송편 접시를 비우고 학교 건물을 나서려는데 2학년 이윤비가 신 교수를 붙잡았다. “우리 노래 준비한 거 있는데…. 5일 동안 연습했어요!” 노래 부를 사람을 소집하니 16명이 피아노 앞에 모였다. 선생님의 반주에 맞춰 ‘물오리’와 ‘달 따러 가자’를 열창했다. 마음이 흐뭇해진 신 교수가 아이들에게 글씨를 선물했다. 이윤비는 “원래 2학년끼리만 노래하기로 했는데 1학년들이 끼어들었다”며 입을 삐죽거렸다.

이날 통학버스는 오후 4시30분이 지나도 출발하지 못했다. 사내아이들끼리 싸우다 한 학생이 코피가 터지는 바람에 교사들이 분쟁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려나, 버스야 오늘 안에는 떠나겠지, 다른 아이들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거나 축구공을 차는 등 하던 놀이를 계속했다. “선생님도 같이 하실래요?” 한 아이의 제안에 신 교수가 함께 공을 찼다. 발군의 스트라이커로 활약한 여자아이는 “커서 선수가 돼도 좋겠다”는 신 교수의 칭찬에 으쓱하는 눈치다.

신 교수는 “프랑스의 사상가 스테판 에셀이 ‘창조야말로 저항이다’라는 말을 했다. 변방이 희망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곳”이라며 “오늘, 지켜야 할 가치들을 지키는 아주 새로운 학교를 만났다”고 말했다.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 시간, 엄마가 데리러오기를 기다리던 여자아이가 신 교수 옆에 다가와 무화과를 내밀었다. 한 남자아이는 아빠를 기다리면서 그네에 올라 발을 굴렀다. 아이들이 시계를 보지 않는 작은 학교. 서정분교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 신영복 교수를 만나세요

경제학자이자 사상가이면서 서예가로도 유명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자신의 글귀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변방’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합니다. 보통사람들의 눈으로,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신 교수와 직접 대화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찾습니다. 신 교수가 서준 글씨를 소장하고 인생의 좌표로 삼고 있는 분, 신 교수의 글귀와 얽힌 사연이 있는 분, 신 교수의 글귀를 사랑하는 분이면 누구나 연락을 주십시오. 신 교수와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좋은 만남을 통해서, 부디 많은 분들이 희망의 숲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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