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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의 길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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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월요광장]가을 단상, 길과 집과 무덤 가을 단상, 길과 집과 무덤2011년 08월 29일(월) 00:00무더운 여름이 잦은 비와 함께 서서히 물러나고 밤이면 선선한 기운이 창문을 넘어온다. 바야흐로 가을이 오고 있다. 이 가을의 문턱에서 문득 생각하니, 길이 곧 집이었다. 집 밖에 그 어디론가 향하는 길이 있으리라 믿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모든 길이 곧 집이었다. 집과 길은 자웅동체의 한 몸이었다. 점과 점을 이으면 선이 되듯이 집과 집을 이으면 그게 바로 길이었다. 우리는 모두 이승의 나그네이기에 발바닥 밑이 모두 안방 구들장이요, 잘 모르는 마을 입구의 당산나무 그늘도 바로 집이요, 숲 속의 잘 모르는 무덤도 집이다. 나그네는 가야할 길이 따로 없고 이 세상 어디에나 다만 늘 도착하는 집만 존재하는 것이다. 21세기 현대인들에게 집은 무..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27) 세상 도처가 눈물겨운 고향, ‥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27) 세상 도처가 눈물겨운 고향, 돌아가야 할 집이었다이원규| 시인 ㆍ연재를 마치며 활짝 핀 복사꽃이 섬진강 강물에 얼굴을 비추고, 물버들이 연둣빛 새싹을 내밀었다. 삽질을 피해 유일하게 생태적인 강의 모습을 간직한 이곳에 천연기념물 수달이 살고 있다. | 이원규 시인 촬영지난 6개월 반 동안 산을 넘고 물을 건넜다. 매주 2~3일 정도는 서울과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길 위에 있었다. 줄잡아 2만5000㎞는 돌아다녔으니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구 반 바퀴 이상을 달렸다. 제대로 야영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돌이켜보면 지난 겨울의 폭설과 한파마저 정신 번쩍 들게 하는 길동무였다. 두 달 전에 진단 받은 늑막염의 통증마저 좋은 길동무가 되었다. 폐 속에서 700㎖의 ..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26) 땅끝 해남의 시인들 이원규 | 시인 ㆍ‘세상변혁 열정’ 불살랐던 김남주·고정희 선생이 그리운 날들 김남주 시인 흉상 아주 어릴 때부터 세상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걸어서 못 가면 모터사이클을 타고서라도 지구 한 바퀴를 돌아보며 이 세상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환멸을 넘어, 연민을 넘어 바람의 끝에서 다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날마다 백척간두진일보 (百尺竿頭進一步)의 자세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모두 헛꿈이었으며 언제나 제자리였다. 얼마만큼 왔나 돌아보면 그 자리 그대로였다. 멀리 지리산까지 빈손으로 와 14년 동안 살아봤지만 돌이켜보면 목줄 매인 흑염소처럼 매애 매애애 울며 산기슭을 뱅뱅 돌기만 했다. 이따금 밧줄이 고무줄처럼 조금 늘어졌다 줄어들었을 뿐 환멸과 권태는 그대로이고, 지극한 연민의 마을 초..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25) 세계 최대의 북 ‘천고’ 만든 이석제씨 이원규 | 시인 ㆍ‘하늘북’을 울리다, 이 땅의 생명평화를 지키라고 살다보면 느닷없이 마른하늘에 천둥 벼락이 칠 때가 있다. 더 늦기 전에 사생결단의 때가 왔음을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데 늘 우유부단하다보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는 경고로 천둥이 치고 하늘북(天鼓)이 우는 것이다. 몸의 위기, 마음의 위기가 아주 가까이 다가서고,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말을 뼛속 깊이 새기기 전에 삶은 때로 분명하고도 명쾌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역천(逆天)의 기운 속에서 날마다 이명처럼 천고가 울어도 아직 그 뜻을 몰라 우물쭈물하고만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좀 더 분명한 하늘북소리를 듣고 싶었다.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난계국악박물관 옆에 지난해 가을 첫 모습을 드러낸..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24)‘지리산 행복학교’ 그 이후 이원규 | 시인 ㆍ버 시인 “꽁지 책 들고와 나한테 사인해 달라는데 미치겠어” 지난 26일 ‘지리산학교’ 6기 종강식이 열렸다. 악양면 면사무소 2층에 위치한 학교에는 그동안 학생들이 공부한 것들을 전시하기도 하고 마지막 책걸이도 푸짐하게 열렸다. 종강식을 마치고 학생과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원규 시인 촬영다시 봄이 왔다. 지난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기나긴 꽃샘 추위로 매화와 산수유꽃이 피더니 어느새 물앵두꽃이 벚꽃보다 일주일 정도 앞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동의 특산물인 녹차 잎이 사상 처음의 동해(凍害)로 누렇게 마르는 등 시절이 하수상하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니 전국 곳곳에서 상춘객들이 몰려와 화개장터가 시끌벅적하다. 다음 주가 되면 화개동천(花開洞天)의 쌍계사 벚꽃 십리길..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23) 낙동강과 한강의 발원지 황지연못과 검룡소를 이원규 | 시인 ㆍ발원지 생명수 잊고 산다면, 우린 ‘어머니인 강의 후레자식’ 낙동강 발원지인 태백의 황지연못. 이곳이 바로 낙동강 1300리 물길의 발원지임을 알리는 돌비석. | 이원규 시인 촬영 매년 3월22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릴 적 어머니가 장독대 위에 올리던 정화수(井華水)를 생각한다. 아직 이른 새벽 마을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하내리의 찬샘에서 길어온 맑은 물 한 사발을 생각한다. 그 물은 신성한 생명의 물이었고, 고단한 육체와 정신의 온전한 활명수(活命水)였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의 정화수를 까맣게 잊고 살아온 날들은 ‘어미 아비도 몰라보는 후레자식’의 삶이었다. ‘물의 날’에도 4대강 죽이기공사는 여전히 ‘용맹정진..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生](22) 보성공연예술촌 오성완·이당금 부부 이원규 | 시인 ㆍ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기에 … “그래 우린 연극에 미쳐부렀어” 모든 걸 쏟아부었기에 후회는 없다. 무엇인가에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 것 같다며 밝게 웃는 오성완(왼쪽)·이당금씨 부부. | 이원규 시인 촬영 한때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不狂不及)’는 말이 유행했다. ‘만약 네가 미치지 않는다면 결코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뜻의 약여불광(若汝不狂) 종불급지(終不及之)를 줄인 말이다. 어떤 이는 “그 어디에도 출전을 찾아보기 어렵고, 한자를 모르는, 말도 안 되는 조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말이란 또 그렇게 시대적 배경 속에서 새로 태어나 회자되면서 생명력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의 본래 의도보다는 다국적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의 최고경영자 하워드 슐츠의 ..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生](21) 나의 로망 나의 삶, 모터사이클 이원규 | 시인 ㆍ“나는 폭주족이 아니라 우리시대의 기마족이다” ‘내 집’을 꿈꾸지 않는 대신 선택한 것이 모터사이클. 멈추는 그곳이 곧바로 텐트를 칠 수 있는 ‘나의 집’이다. | 이원규 시인 촬영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숨 쉬는 것과 더불어 걷는 것이다. 날마다 직립보행의 자세를 증명하며 누군가를 만나거나 무언가를 하기 위해 어디론가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그 다음이 자전거를 타는 것. 꽃샘추위에 움츠리다 기지개를 켜며 대자연의 일부로서 더불어 살아 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깨달음의 시간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 세상의 ‘탈것’들 중에 가장 매력적인 것은 모터사이클(바이크)이다. 일본식 영어인 ‘오토바이(이륜자동차)’라는 말이 널리 쓰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오래전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