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의 길인생 (28) 썸네일형 리스트형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20)봄이 오지 않는 낙동강 이원규 | 시인 ㆍ어이하여 봄이 와도 꽃과 풀이 없는가 섬진강엔 매화꽃 피고 | 이원규 시인 촬영봄이 오고 있다. 조금 늦었지만 섬진강변 매화꽃들이 피어나고 강물 속으로 ‘봄의 전령’인 황어떼가 거슬러 오르고 있다. 화개장터 남도대교 아래 얕은 물살에는 성급한 낚시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4대강 사업에서 조금 비켜난 섬진강에는 바야흐로 봄기운이 무르익기 시작했다. 그러나 섬진강변에 살며 예년처럼 나 혼자 가슴 설레며 봄을 맞이하기에는 너무나 미안하고, 슬프고, 불편하고, 참담했다. 대체 이 무슨 심사인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는 말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널리 회자되는 이 말은 원래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중국의 4대 미인(서시·왕소군·초선·양귀비) 중 하나인 ‘비운의 ..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19) ‘늦깎이 화백’ 한숙자 할머니 이원규 | 시인 ㆍ74세에 국자 대신 붓을 들다, 이제 그녀의 마음은 봄날이다 ‘백발 인생’에 그림으로 한 획을 그었다며 환하게 웃는 한숙자 할머니. 이제야 독립된 한 인간으로 서는 것 같다며 만족하고 있다. | 이원규 시인 촬영 ‘아파야 철이 든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전에는 조금 아프더라도 ‘고통은 몸의 일부’려니 생각하며 생의 한철 통증을 견디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병원 문턱에도 가보지 않은 건강한 자의 교만이었다. 그러다 문득 ‘고통이 몸의 전부’가 되고 보니 공포가 밀려오고 보이는 세상이 달라졌다. 일단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졌다. 이전에는 타락하거나 비굴해 보이던 이들마저 단지 더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존재가치가 달라진 것이다. 내 나이 스물에는 스물아홉..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18) ‘웃음 치료 전도사’ 시골 보건소장 김향숙 이원규 시인 ㆍ“사후약방문이 무슨 소용 … 살 때 행복한 게 최고지예” 마늘밭을 매던 아낙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나 김 소장이 가르쳐 준 마늘밭 체조, 일명 ‘마늘종 스트레칭’을 신명나게 하고 있다. | 이원규 시인 촬영동해안과 영남지역의 폭설로 오던 봄이 한참이나 돌아선 듯하다. 하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부터는 비가 와도 기상관측 사상 처음일 만큼으로 내리고, 눈이 와도 100년 만의 폭설이다. 옛날 같으면 이것만으로도 군주의 부덕을 문제 삼고, 군주는 ‘스스로 부덕의 소치를 장우’할 만한 일이다. 4대강 사업 등 대규모 국책사업들이 마치 기상이변 같으니 오히려 기가 차다 못해 불감증에 걸린 탓일까. 모두들 입술을 꽉 깨물고 있다. 그렇다고 오던 봄이 돌아설 것인가. 마침내 섬진강 첫 매화는 피..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17) ‘천수만 철새 지킴이’ 김신환 동물병원장 이원규 시인 ㆍ“동물 살리는 수의사가 구제역 그 죽음의 굿판에 끌려다니려니 죽갔시유” 큰말똥가리 ‘천’이 우리 집에 온 지 1년이 지났다. 이제는 총상을 입은 오른쪽 날개도 많이 아물어 2~3m 정도 날 수 있다. 서산 천수만에서 데려왔다고 해서 이름을 ‘천’이라 붙여주었는데, 여전히 야성적이다. 나 어릴 적 참매를 길들이듯이 적당히 굶겨가며 닭고기 등의 먹이로 훈련을 시켰다면 아마 지금쯤 내 어깨 위로 날아올랐을 것이다. 처음 데려올 때는 ‘어차피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할 바엔 길을 들여 함께 놀고 싶은 유혹’도 있었다. 그러나 비록 다치기는 했지만 독거(獨居)의 삶을 살아온 맹금류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길들여지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길들여진다는 것의 행복과 그만..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16) 남해 독일마을 우춘자·빌리 부부 이원규 | 시인 ㆍ“살수록 정이 드는 아내의 조국에서 9988234 하고 싶다” ㆍ 지리산에 살면서도 언제나 그리운 곳이 있다. ‘보물섬’ 남해군이다. 우리 집 뒷산 형제봉에 오르면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한눈에 지리산 주능선이 보이고, 돌아서서 동남쪽을 보면 언제나 남해금산과 쪽빛 푸른 바다가 아슴푸레하게 보인다. 쨍하고 맑은 날이면 창선-삼천포연륙교까지 보인다. 바로 그 근처 창선면 대벽리 단항마을에는 천연기념물 299호인 왕후박나무가 500년째 그 자리에 서 있다. 허허로운 날이면 마치 ‘돌아온 탕자’처럼 고개 숙이고 찾아가 늘 푸른 그늘의 품에 안겼다가 오는 곳이다. 그리하여 그리움은 언제나 푸르스름하다. 남해 쪽빛 바다와 드넓은 마..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15) 전국여농 토종씨앗사업단장 심문희씨 이원규 | 시인 ㆍ“토종씨앗은 우리 미래…‘친정엄마 마음’으로 물려줘야” 우리 땅에 뿌리는 씨앗마저 외국산이 범람하는 시대다. 비싼 돈을 주고 산 물건너온 씨앗들이 우리 땅에서는 발아가 되지 않아 대를 잇지 못하는 ‘불임씨앗’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토종씨앗’을 지키기로 결심했다는 심문희씨. 더디고 고된 작업이지만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걸린 일이라며 오늘도 총총히 전국의 농가를 돌며 토종씨앗을 수집하고 있다. | 이원규 시인 촬영 온 지구에 떼죽음의 공포가 휩쓸고 있다. 벌·새·물고기·거북이 등이 세계 곳곳에서 집단폐사하는 가운데 한반도에서는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로 소·돼지·닭·오리 등 사상 최악의 ‘살처분’이 이뤄지고 있다. 대책 없는 대책뿐이다. 마치 인류 종말의 때가 다가온 듯 죽음과 죽임의 이..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14) 여주 남한강변 귀농 홍일선 시인 이원규 시인 ㆍ“밭일 하다 여강 공사 보면 눈물 쏟아져 내가 그런데 원주민들 마음은 어쩌겠어” 자연부화로 키운 토종닭 나의 ‘애마’ 모터사이클을 타고 한파와 폭설의 길을 나서 이틀 만에야 여주군 점동면 도리(道里) 마을에 도착했다. 이 오지마을에 처음 온 것도 3년 전 바로 이맘때였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4대강 순례길 사전답사 때였다. 남한강의 다른 이름인 여강(驪江) 100리 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옛길 ‘아홉사리’의 시작이자 끝인 마을이다. ‘2만5000분의 1 지도’에 의지해 어렵게 찾아갔을 때 마을 앞 여강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물길이 휘도는 도리섬에는 고라니들이 뛰놀고 백사장과 은빛 여울이 꿈결처럼 펼쳐져 있었다. 여강에서 제일 가까운 곳의 외딴집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야산..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13) 고령군 오사마을 이발사 박영필씨 ㆍ“마을 어르신들 생각해서라도 이용소 문 닫을 수야 없지예” 지난 3년 동안 머리카락을 길렀다. 아니 자르지 않고 그대로 두니 꽁지머리에서 어느새 말총머리가 되었다. 일생에 한 번쯤은 길러보는 것도 멋지겠다 생각만 했지 이렇게 정말 말총머리가 될 줄은 몰랐다. 지리산에 들어온 뒤에 몇 번 빡빡머리는 해봤지만(사실 빡빡머리가 제일 편하다), 지난 3년 동안 미용실이나 이발소 근처에는 일절 가지 않았다. 32년째 같은 자리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는 박영필씨. 닳고 닳은 손가위와 바리캉, 1970~80년대의 해묵은 포스터와 누런 액자들이 걸려있는 그의 이발소는 마치 추억을 되새기는 영화 세트장 같다. 세월은 흘렀지만 추억이 있는 곳. 그래서 그의 이발소에는 그리운 것이 많은 어르신들이 먼 길을 걸어 이곳까지..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