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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의 길인생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20)봄이 오지 않는 낙동강

이원규 | 시인

ㆍ어이하여 봄이 와도 꽃과 풀이 없는가

섬진강엔 매화꽃 피고 | 이원규 시인 촬영

봄이 오고 있다. 조금 늦었지만 섬진강변 매화꽃들이 피어나고 강물 속으로 ‘봄의 전령’인 황어떼가 거슬러 오르고 있다. 화개장터 남도대교 아래 얕은 물살에는 성급한 낚시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4대강 사업에서 조금 비켜난 섬진강에는 바야흐로 봄기운이 무르익기 시작했다. 그러나 섬진강변에 살며 예년처럼 나 혼자 가슴 설레며 봄을 맞이하기에는 너무나 미안하고, 슬프고, 불편하고, 참담했다. 대체 이 무슨 심사인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는 말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널리 회자되는 이 말은 원래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중국의 4대 미인(서시·왕소군·초선·양귀비) 중 하나인 ‘비운의 절세미인’ 왕소군의 처지를 읊은 시에서 비롯됐다. 왕소군이 국경을 지나 흉노로 붙들려 갈 때 슬픔이 물밀듯 밀려와 가슴에 품은 비파로 변방을 나서는 노래 ‘출새곡(出塞曲)’을 연주하자 하늘을 날던 기러기들이 잠시 날갯짓을 잊어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후대에 미녀를 지칭하는 단어인 ‘낙안(落雁)’도 바로 여기에서 유래됐다.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胡地無花草)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구나’로 시작하는 이 시는 바로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수많은 이들의 심사를 대변하는 절창이 아닐 수 없다. 막말로 하자면 불행하게도 4대강은 지금 ‘오랑캐 땅’이 된 것이다.

섬진강 첫 매화꽃을 보러 나섰다가 문득 낙동강의 안부가 궁금했다. 모터사이클의 기수를 돌려 봄이 와도 꽃과 풀이 없는 ‘무화초의 낙동강’으로 달려갔다. 2박3일 동안 삼량진에서 고령까지 낙동강의 양안을 왕복하며 둘러보았다. 한마디로 참담했다. 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나는 ‘민족의 젖줄’인 낙동강이 바로 나의 탯줄이었다. 낙동강 지류인 영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종이배를 띄우며 갈대밭에서 철새떼가 날아오르는 부산 을숙도를 떠올렸다. 언젠가는 걸어서 바다까지 가보고 싶었다. 겨울방학이 끝나면 겨우내 강변에서 날리던 가오리연에 편지를 쓴 뒤 높이높이 날아올려 연줄을 자르기도 했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병속에 편지를 넣어 대상도 알 수 없는 강 하류의 누군가에게 떠내려 보내기도 했다. 물론 한 통의 답장도 받지 못했지만 이 ‘알 수 없는 그리움’은 유난히 불우하고 외로웠던 내 유년의 존재 이유 같은 것이었다.

낙동강엔 생명이 지고 | 이원규 시인 촬영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고 마침내 어릴 적 꿈을 이루듯 낙동강 1300리를 걸을 기회가 왔다. 2000년 10월, 30대 후반이 되어서였다. 수경 스님 등과 함께 발원지인 강원도 황지연에서 을숙도까지 29일 동안 걸었다. ‘페놀 사건’으로 죽어가던 낙동강이 막 살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2004년 ‘생명평화 탁발순례’ 때 걸어보고, 2008년 종교인들의 한반도 대운하 반대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 때도 걸었으니 세 번을 걸은 셈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이번처럼 처참한 심정은 아니었다.

낙동강의 내장은 다 파헤쳐지고, 마늘과 양파와 감자가 자라던 하천부지는 흔적도 없이 모래더미에 묻히고, 강변 논들은 야적장으로 변했다. 포클레인의 굉음과 트럭들의 질주는 강변 마을들을 뿌연 먼지로 뒤덮고 있었다. 버드나무와 억새 등 뿌리째 뽑힌 수변습지에는 꽃은커녕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았다. 말 그대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2박3일 동안 강변에서 단 한 명의 농부도 만나지 못했다. 빈 배만 강변에 묶여 있을 뿐 어부는 고사하고 낚시꾼 하나 만날 수 없었다. 낙동강 15공구 현장 주변에서 트럭에 놀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고라니 한 마리를 만났을 뿐이다. 이따금 겨울 철새들이 공사장을 피해 힘없이 날아왔다 떠나고 강심의 모래채취선에서 거대한 빨대로 빨아올리는 누런 물거품 주변에 청둥오리 열댓 마리가 눈치를 살피며 도시의 비둘기떼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생명을 살리는 행복한 기적이 낙동강에서 시작됩니다’라는 현수막이 도처에 걸려 있는 낙동강에는 그러나 봄이 오지 않았다. 아니, 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인공적인 생태공원을 조성한다고 해도 봄은 몇 년 뒤에나 겨우 올까말까 할 것이다.

이원규 시인 촬영

운하의 미련을 버리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함안보·합천보의 공사현장 주변에는 ‘활짝 웃어라! 한국의 강들아’라는 홍보관이 있다. 홍보관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감시초소 같은 것이었다. 사실은 낙동강 전체가 감시 대상이 되었다. 군사작전 지역도 아닌데 일단 접근금지다. 카메라를 들고 몇 분만 서성이면 어디선가 순식간에 수자원공사 직원이 나타나 “어디서 왔느냐, 뭐하러 왔느냐?” 다짜고짜 ‘불심 검문’을 한다. 그리고 다시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현장소장 등 여러 명이 몇 대의 사륜차를 몰고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그리고 다시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모래채취선은 작업을 중단한다. 이는 환경운동가나 국회의원 등이 현장을 답사할 때나 기자들이 취재할 때면 늘 보이는 행태들이다. 무슨 비밀작전 같기도 하고 마치 스스로 ‘반생명 반환경 사업’ 혹은 ‘불법 현장’임을 시인하는 듯하다.

함안보 홍보관 주변의 플래카드 내용들을 보면 가관이다. 무슨 홍보를 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지역민을 우롱하고 낙동강 살리기사업을 반대하는 단체는 창녕 방문을 원하지 않는다’(하왕산포럼), ‘모래먼지 먹기 싫다 수자원 확보하자’(창녕사랑모임회), ‘낙동강 살리기사업으로 맑은 낙동강 보고 싶다’(맑은강만들기 김해주민회), ‘낙동강 살리기는 생명환경 살리기’(생명환경 함안보지킴이), ‘김두관 정치행보에 경남 발전 희생된다’(창녕지역 보사랑모임), ‘낙동강 살리기가 대한민국 번영 1번지’(낙동강살리기 창원협의회) 등이다. 면면을 살펴보면 낙동강 주변 8개 시·군 주민으로 지난해 말 구성됐다는 ‘낙동강새물길 보사랑모임’ 중심인 듯하다. 여기저기에 물어보아도 이 단체들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8개 단체를 인터넷에 검색해도 단체명은 고사하고 활동 내용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뭔가 익숙한 풍경이다. 3년 전 남한강을 순례할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곳곳의 ‘대운하 부동산’이었고, ‘한반도 대운하 반대하는 자는 여주 군민 아니다’라는 현수막이었다.

낙동강 답사 중에 근처의 여러 곳을 들렀다. 먼저 들른 곳은 창원과 창녕을 잇는 본포교였다. 순례 중 큰 감동을 주었던 카페 ‘알 수 없는 세상’은 낙동강 공사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옛 나루터의 아주 오래된 주막집으로 강변 외딴집이었던 이곳을 인수한 50대 중반의 여인이 온갖 야생화들을 키우며 카페로 개조해 오랫동안 강변 나그네들의 쉼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경북 예천의 삼강주막이 다시 복원돼 엄청난 인기를 끄는 것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소리꾼 장사익을 좋아하는 이 여주인은 기타와 노래 솜씨 또한 출중했다. 그날 밤 순례단의 스님 중 하나가 “거, 장사익씨 너무 좋아하지 마슈. 나도 참 좋아했는데, 얼마 전 이명박 취임식 때 축가 부르는 것 보고 정이 뚝 떨어졌슈. 아마 앞으로 산사음악회 등에서는 보기 힘들겠슈. 민초들의 애환이 서린 노래를 앞으로는 강남에서나 들어야 할 거유. 이 집도 위태로우니 나, 참” 하고 은근히 비판하기도 했다. 마치 예견이라도 할 것일까. 스님의 우려 그대로 카페 ‘알 수 없는 세상’은 사라지고 장사익의 노래도 다시는 이곳에서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원규 시인 촬영

쓸쓸한 발길을 돌려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의 홍의장군 곽재우 생가에 들렀다. 500년 된 은행나무와 전국 최초로 의병을 모집해 훈련시키려고 큰북을 매달았다는 현고수(懸鼓樹) 아래에서 ‘역주행의 오늘’을 생각했다. 그리고 김해시 진영읍의 노무현 대통령 생가에 들러 참배를 했다. 여전히 많은 참배객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새만금 삼보일배’ 등으로 불편한 관계였지만 그래도 총리실에 ‘새만금 신구상기획단’ 설치 등 최소한의 소통은 했다.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을 듣자마자 ‘생명평화 오체투지’를 중단하고 당사자였던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등과 함께 찾아가 다소 때늦은 해원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노무현 정부 당시의 새만금 등으로 대표되는 반환경 사업들을 두고 ‘산과 강과 바다의 위기’로 보았지만 이명박 정부의 행태들을 보면 사실 그것은 아주 오래되고 낮은 차원의 위기였다. 아무 거리낌 없이 4대강을 동시에 군사작전 하듯이 파헤치는 등 단군 이래 최대의 위기가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위기의 실체는 사실 운하의 연장선상이라는 점이며, 그 이면에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탈법적이고도 초법적인 탈을 쓴 ‘단군 이래 사상 최대의 국가적인 땅장사 혹은 땅투기’라는 것이다. 주범들의 막무가내식 행태를 막아내지 못하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과 국민들 또한 모두가 공범자, ‘춘래불사춘의 공범자’인 것이다.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어이하랴. 낙동강의 이후에는 봄이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