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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의 길인생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18) ‘웃음 치료 전도사’ 시골 보건소장 김향숙

이원규 시인

ㆍ“사후약방문이 무슨 소용 … 살 때 행복한 게 최고지예”

마늘밭을 매던 아낙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나 김 소장이 가르쳐 준 마늘밭 체조, 일명 ‘마늘종 스트레칭’을 신명나게 하고 있다. | 이원규 시인 촬영

동해안과 영남지역의 폭설로 오던 봄이 한참이나 돌아선 듯하다. 하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부터는 비가 와도 기상관측 사상 처음일 만큼으로 내리고, 눈이 와도 100년 만의 폭설이다. 옛날 같으면 이것만으로도 군주의 부덕을 문제 삼고, 군주는 ‘스스로 부덕의 소치를 장우’할 만한 일이다. 4대강 사업 등 대규모 국책사업들이 마치 기상이변 같으니 오히려 기가 차다 못해 불감증에 걸린 탓일까. 모두들 입술을 꽉 깨물고 있다.

그렇다고 오던 봄이 돌아설 것인가. 마침내 섬진강 첫 매화는 피었다. 지난해보다 1주일 늦었지만 광양시 진월면 문암마을에 딱 한 송이가 핀 것이다. 이제 이 한 송이가 수천 수만의 꽃봉오리들을 일깨울 것이다. 아직은 날이 차지만 기운생동의 봄기운을 만났으니 ‘나 또한 그 기운을 전해야 할 터인데’ 하고 생각을 하다 문득 남해에 가고 싶었다. 남해 독일마을의 오춘자·빌리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 유독 눈길을 끌던 사람, 매화처럼 환한 여인을 만나고 싶었다. 40대 중반의 작달막한 키에 사각의 얼굴로, 통속적인 여자의 외모로는 빛나지 않지만 언제나 활달한 목소리와 몸짓으로 남해 할머니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었다. ‘스타’였다.

남해군 삼동면 동천보건진료소장 김향숙씨(46). 바로 그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만 아프다 죽자)를 주창하는 김 소장은 한마디로 팔방미인이다. 어릴 때부터 해온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건강박수·지압·춤·노래 등 못하는 게 없을 정도다. 그는 지난해 경상대 대학원에서 임상간호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억척이다. 그뿐인가. 웃음임상치료사 1급, 건강박수치료사 1급, 치료레크리에이션 1급, 장기요양보호사 1급 등을 취득하고 성교육 강사와 숲해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대개의 보건소는 조용하다. 어쩌다 할머니들이 진료를 받고 약을 타가는 정도다. 그러나 동천보건소의 규모는 여느 시골보건소와 비슷하지만 그 활동 내용은 전혀 달랐다. 서예를 하고 춤추고 노래부르며 박수를 치는, 전국에서 가장 시끌벅적한 보건소다. 일본 오이타대학과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이 벤치마킹할 정도다. 김 소장의 지론은 단순명료했다. “보건소는 진료와 약 처방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예방의학에 중점을 둬야 하지예. 사후약방문이 무슨 소용입니꺼? 하고 싶은 것 하고, 웃으며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살아있는 동안 행복한 게 최고지예. 저는 마 언제까지나 우리 몸의 미세혈관까지 뻥 뚫어주는 웃음임상치료사 김향숙입니더. 이제 보건진료소장은 전공뿐만이 아니라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합니더.”

‘남해 마늘’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보니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마늘밭에서 일을 한다.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일을 하다 보니 요통과 견통 등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김 소장이 시작한 게 마늘밭 현장에서 체조를 하는 ‘마늘종 스트레칭’이다. 일을 하다 모두들 잠시 그 자리에서 일어나 ‘마늘종 스트레칭’으로 몸을 푸는 것이다. 일단 아픈 뒤에 보건소를 찾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프지 않는 ‘예방의학’에 초점을 맞춘 결과물 중의 하나다.

월·수·금 오후 2시가 되면 비좁은 보건소를 벗어나 바로 옆의 새마을금고 2층 강당을 빌려 쓴다. ‘웃음치료의 달인’인 그녀는 춤을 추고 노래할 때는 과감히 흰 가운을 벗고 연초록이나 보랏빛 댄스복으로 갈아입는다. 얼핏 보면 밤무대의 무희 같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할머니들에게도 10대들이 노래방에서나 덮어 쓰는 빨강·파랑·노랑 가발을 나눠주는가 하면 요상하게 생긴 가면과 선글라스 등의 소품을 쓰게 한다. 신경림 시인의 시 ‘파장’에서처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듯이 서로 쳐다보기만 해도 벌써 배꼽이 빠지도록 우스워지는 것이다.

‘심뇌혈관질환 예방관리’를 위한 웃음치료 프로그램이 시작되자마자 30여명의 할머니들에게 “자아 따라 하세요. 호르르르, 혀를 떨며 소리를 지르세요” 하며 시범을 보인다. 그러자 이미 익숙한 듯 할머니들이 서로 마주 보며 마치 인디언처럼 호르르르 소리를 내며 웃는다. 혀로 소리내기, 혀 돌리기, 혀 떨기, 혀 날름거리기 등 평소에 하지 못했던 소리와 동작들을 하게 한다. 그리고는 서로 마주보며 ‘하, 하, 하, 하’ 단음절 큰소리로 웃게 하면서 건강 박수 8가지를 치며 몸을 풀고 나면 마침내 노래와 춤을 시작한다. 2층 강당은 어느새 ‘웃음 공화국’이자 ‘댄스 천국’이 되었다.

“제게도 사조직이 있습니다. 하하, 바로 이 할머니들이지예. 삼동면 13개 마을의 할머니들 중에서 뽑아 오랫동안 교육을 시켰는데, 어느새 22명의 웃음치료 강사들이 됐지요. 이분들이 참으로 자랑스러운 멘토들입니다. 제가 모든 마을을 다 가르칠 수는 없으니 이분들이 각 마을회관에서 저 대신 가르치지요. 그러니까 이분들만 가르치면 삼동면 전체가 함께하는 것이지예. 남해를 보물섬이라 하는데 저에겐 바로 이 할머니들이 저의 보물입니더.”

김향숙 소장은 1988년 전남 신안군 암태면 추포도보건진료소에서부터 일을 시작했다. 89년 남해 선구보건진료소를 거쳐 2003년 현 동천보건진료소까지 24년째 외길을 걸어왔다. 공저로 <웃음임상치료의 실제>가 있으며, 논문으로는 <마늘재배 농업인을 위한 지역사회 건강증진사업 개발 및 효과> <농촌지역 노인들의 성생활과 삶의 만족도> 등 현주민들의 삶과 밀착된 연구논문들을 다수 발표해왔다.

매일 오전에는 진료를 하고 월·수·금 오후에는 서예반 운영, 웃음치료 프로그램, 산길걷기 명상 등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이 끝나는 오후 3시부터는 마을 가정방문 진료를 한다. 그야말로 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간다. “우리 관내에 90세 이상 노인들만해도 20명 넘으니 이분들을 특별관리해야 하고, 장애우 등도 돌봐야지요. 두 명이 하기에는 조금 벅차기도 하지만 보람 아입니꺼. 틈날 때마다 각 마을회관의 어르신들이나 관내의 교직원들, 그리고 학생들에게 성교육 웃음치료도 하지예.”

또한 독일마을의 빌리 할아버지를 비롯한 동천보건진료소 댄스팀은 평균연령 70대 중반으로서는 상당한 실력으로 전국 댄스경연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특히 20여명의 서예반은 마치 혁명에 가까운 업적을 이뤄냈다. 한글을 모르던 할머니들에게 서예를 가르쳤는데, 이제는 한글을 다 깨치는 것을 넘어 모두 명작의 8폭 병풍 하나 정도씩을 남길 정도가 된 것이다. ‘남해 마늘축제’ 때 전시를 하고 마침내 가보로 남길 수 있게 됐다. “처음엔 한글을 가르치는 방편으로 서예를 가르쳤지예. 그런데 글자를 아는 것을 넘어 금방 글씨체도 좋아지더라니까요. 독수공방의 잠 안 오는 밤에 서예를 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는 할머니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납니더.”

내가 찾아간 날도 할머니들이 올해 마늘축제 때 전시할 작품들을 검사 맡으려고 들고 왔는데, 모두들 실력이 만만찮았다. 15개 작품의 병풍 표구를 맡기는 날이었다. 그러나 김 소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할매, 이건 안 되겠다. 너무 빨리 썼지예? 이제 좀 잘 쓴다꼬 빨리 쓰지 말고 제발 천천히 여유있게 쓰세요, 알았지예. 그라고 잘 못 썼다고 제발 덧칠하지 좀 말고. 이건 다시 써오세요.” 불합격한 할머니는 김 소장의 지적에 마치 유치원생처럼 고개를 숙였다. “나도 알아. 다시 써올 게. 아이구, 우리 소장님, 이럴 땐 엄청 무섭다카이.” 그러다가도 함께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면 금방 농담이 오간다. 불합격한 할머니 앞자리에 놓인 고추절임 반찬을 보고는 김 소장이 “할매, 그 고추 좀 빌려 주이소” 하자 할머니가 금방 맞받아치며 “내 고추는 이미 떠난 지 오래다. 네 서방 꺼나 좀 빌려도” 하고 능청을 떨기도 한다. 김향숙 소장의 동갑내기 남편 윤재열씨는 치과기공사로 대학 때부터 유명한 캠퍼스 커플이었다. 180㎝가 넘는 거구의 남편과 단신의 그녀는 ‘거인과 땅콩’의 연애로 유명했다고 한다. 남편 윤씨는 아내가 박사학위 받을 때까지 경상도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내조를 잘했다. 그래서인지 김 소장의 두 자녀들은 모두 엄마의 뒤를 이어 간호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딸뿐 아니라 아들도 올해 간호학과에 입학, 온 집안이 의료계에 투신한 것이다. 불편하더라도 네 가족이 관사에서 사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온 그녀는 24시간 보건소 일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보건소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제가 못생겼지만 그래도 ‘사각공주’ 아입니꺼. 좋은 사진 좀 써주세요” 하며 웃는다. 한발 앞서가는 예방의학의 전도사, 웃음치료의 달인. 저토록 스스로 환하게 피는 꽃을 누가 막으랴. 그리하여 마침내 봄은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