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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의 길인생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17) ‘천수만 철새 지킴이’ 김신환 동물병원장

이원규 시인

ㆍ“동물 살리는 수의사가 구제역 그 죽음의 굿판에 끌려다니려니 죽갔시유”

큰말똥가리 ‘천’이 우리 집에 온 지 1년이 지났다. 이제는 총상을 입은 오른쪽 날개도 많이 아물어 2~3m 정도 날 수 있다. 서산 천수만에서 데려왔다고 해서 이름을 ‘천’이라 붙여주었는데, 여전히 야성적이다. 나 어릴 적 참매를 길들이듯이 적당히 굶겨가며 닭고기 등의 먹이로 훈련을 시켰다면 아마 지금쯤 내 어깨 위로 날아올랐을 것이다. 처음 데려올 때는 ‘어차피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할 바엔 길을 들여 함께 놀고 싶은 유혹’도 있었다.

그러나 비록 다치기는 했지만 독거(獨居)의 삶을 살아온 맹금류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길들여지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길들여진다는 것의 행복과 그만큼의 절망은 동전의 앞뒤처럼 공존하는 것이다. 큰말똥가리 ‘천’은 여전히 내 앞에서 먹이를 먹지 않는다. 슬그머니 피해주면 그때서야 먹기 시작한다. 스스로 먹이 활동을 할 수 없는 비극적 운명을 스스로 받아들여 한결 여유로워졌지만 그래도 야성은 살아있는 것이다.

꼭 1년 만에 다시 충남 서산에 갔다. 바로 이 큰말똥가리를 분양해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다큐 <물은 생명이다>의 이성수 PD 주선으로 만나게 됐다. 2009년 말께 이 PD가 전화를 해 “혹시 말똥가리 키워볼 생각 없으세요? 어릴 때 참매를 키웠다면서요. 여기 천수만에서 총상을 입은 뒤 수술은 잘 됐지만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안락사를 시켜야하는 데요” 하는 것이었다. 순간 “안락사라니요? 그건 안 되지요! 제가 지금 바로 갈게요” 확답하고 말았다. 그때 서산에서 만난 사람이 바로 김신환 동물병원장(59)이었다. 수의사 김신환 원장은 ‘천수만 지킴이’ ‘서산 운동권의 대부’ ‘야생동물들의 보모’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