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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의 길인생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16) 남해 독일마을 우춘자·빌리 부부

이원규 | 시인
ㆍ“살수록 정이 드는 아내의 조국에서 9988234 하고 싶다”
ㆍ<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틀만 아프다가 사흘째 편하게 죽자 >

지리산에 살면서도 언제나 그리운 곳이 있다. ‘보물섬’ 남해군이다. 우리 집 뒷산 형제봉에 오르면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한눈에 지리산 주능선이 보이고, 돌아서서 동남쪽을 보면 언제나 남해금산과 쪽빛 푸른 바다가 아슴푸레하게 보인다. 쨍하고 맑은 날이면 창선-삼천포연륙교까지 보인다. 바로 그 근처 창선면 대벽리 단항마을에는 천연기념물 299호인 왕후박나무가 500년째 그 자리에 서 있다. 허허로운 날이면 마치 ‘돌아온 탕자’처럼 고개 숙이고 찾아가 늘 푸른 그늘의 품에 안겼다가 오는 곳이다. 그리하여 그리움은 언제나 푸르스름하다. 남해 쪽빛 바다와 드넓은 마늘밭과 가천 다랭이논과 후박나무·동백나무가 그러하듯이.

조성형 감독의 <그리움의 종착역>. 2009년 베를린영화제 초청작인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남해 독일마을이 그 배경이다. 조 감독은 20여년 동안 독일에서 생활한 유학생으로 2006년 첫 작품 <풀 메탈 빌리지>로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다. 그녀의 두 번째 작품이 바로 <그리움의 종착역>이다. 1970년대 한국의 수많은 간호사·광부들이 ‘조국근대화의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로 건너갔다. 이 다큐멘터리는 간호사들 중에서 독일인과 결혼해 20~30년 살다 한국에 돌아와 남해 독일마을에서 노후를 보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지난해 ‘G20정상회의 영화대축제’ 개막작으로 한국 관객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영화제는 말 그대로 ‘졸속’이었다. ‘무리한 G20 홍보’로 비판받아 마땅한 이 형식적인 영화제의 11월3일 관객은 단 3명뿐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작품일지라도 ‘제자리’가 있고 어울리는 ‘그릇’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좋은 영화는 언제 어디에서나 좋은 영화이고 그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