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 시인
ㆍ발원지 생명수 잊고 산다면, 우린 ‘어머니인 강의 후레자식’
낙동강 발원지인 태백의 황지연못. 이곳이 바로 낙동강 1300리 물길의 발원지임을 알리는 돌비석. | 이원규 시인 촬영
매년 3월22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릴 적 어머니가 장독대 위에 올리던 정화수(井華水)를 생각한다. 아직 이른 새벽 마을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하내리의 찬샘에서 길어온 맑은 물 한 사발을 생각한다. 그 물은 신성한 생명의 물이었고, 고단한 육체와 정신의 온전한 활명수(活命水)였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의 정화수를 까맣게 잊고 살아온 날들은 ‘어미 아비도 몰라보는 후레자식’의 삶이었다.
‘물의 날’에도 4대강 죽이기공사는 여전히 ‘용맹정진’ 중이다. 폐수정화처리장 등의 ‘살리기공사’는 보이지 않고 강의 내장이 온통 다 파헤쳐지고, 온몸은 토막토막이 난 채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4대강은 더 이상 생명의 젖줄이 아니라 단절의 시대, 불통의 시대를 대변하는 은유가 되었다. 신라시대 원효 스님은 해골바가지 속의 썩은 물을 마시고 깨달았다고 한다. 하지만 4대강이라는 거대한 해골바가지 속의 물을 보며 어찌할 것인가.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짠맛을 알고 저 해골바가지 속의 물을 다 마셔봐야 겨우 깨달을 것인가. 참으로 불행한 메타포가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생명 시원의 발원지(發源地)에 가보고 싶었다. ‘역천(逆天)의 공사 중’인 끔찍하고 지긋지긋한 강을 거슬러 올라 잠시라도 발원지에 다시 가보고 싶었다. ‘민족의 젖줄’ 낙동강의 발원지인 태백의 황지연못과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가 그리웠다. 금강의 발원지인 전북 장수군 신무산의 뜬봉샘, 영산강의 발원지인 전남 담양군 가마골의 용소, 섬진강 발원지인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 능선의 데미샘이 간절해졌다. 매화꽃이 만발한 섬진강에서 폭설이 채 녹지 않은 강원도 태백까지 꽃샘추위를 맞으며 달려갔다. 장장 천리 길을 마치 애인을 만나러가듯이 가슴 설렜다. 춥고 배도 고팠지만 뼛속 깊숙이 고로쇠물처럼 어머니의 정화수가 차오르는 듯했다.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25-4.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 황지연못은 말 그대로 여여(如如)했다. 처음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발원지답게 첫 얼굴, 첫 마음이었다. 황지연못은 태백시를 둘러싼 태백산·함백산·백병산·매봉산 등의 줄기를 타고 땅속으로 스며들었던 물이 용출되는 곳이다. 예로부터 ‘천황(天潢)’으로 불리며 신비하고 영험한 기운이 서린 연못으로 인정받아왔다. 해발 700m에 자리한 황지연못은 둘레가 100m인 상지, 50m인 중지, 30m인 하지로 된 3개의 못으로 이뤄져 있으며 사계절 하루 5000t의 물이 솟아나며 언제나 15도를 유지하는 청정수다.
황지연못에는 ‘수전노 노랭이’ 황동지라는 부자에 관한 전설이 전해오는데, 어느 노스님의 당부를 잊은 며느리는 도계읍 구사리 산등에서 돌이 되었고, 황부자는 이무기가 되었다고 하며, 황부자의 집터는 가라앉아 못이 되었다고 한다. 상지가 황부자의 집터, 중지가 방앗간터, 하지가 화장실터라고 한다. 가뭄이 들 때면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고, 연못에 돌을 던지면 비바람이 크게 인다는 전설도 있으며, 연못 주위에 천하의 명당이 있다 해서 이름난 풍수가들이 일대를 헤매기도 했다. 맑고 푸른빛을 띠고 있는 황지연못은 한눈에도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한편 낙동강의 길이와 발원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길이는 525㎞라는 게 정설이지만 실측 결과 513.5㎞는 주장도 있으며, 발원지는 ‘낙동강의 근원으로서 관아에서 제전을 두어 가물 때는 기우제를 올렸다’는 것과 <척주지> <대동지지> 등을 근거로 황지연못이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좀 더 높은 곳인 천의봉의 ‘너덜샘’과 금대산·함백산·태백산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은 혼돈을 부채질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아름다운 일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어느 산의 옹달샘치고 발원지 아닌 곳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 상징성에 무게가 실린 문제일 뿐이다.
황지연못은 1989년 광동댐이 건설되기 이전에는 태백시민들의 상수도 취수장이었다. 3년 전 늦여름의 지독한 가뭄으로 광동댐이 바닥을 보이자 20년 만에 다시 상수원 역할을 톡톡히 해 공원으로만 머물던 황지연못이 그 소중함을 스스로 입증하기도 했다. 최근 태백시와 한국환경공단이 ‘낙동강발원지 물길복원’을 위한 생태하천 조성사업을 한다고 하는데 행여나 청계천 복원 수준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시내 복개사업이나 생태하천사업 이전에 성지화 혹은 성역화부터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가 아닐까. 10여년 전 수경 스님 등과 함께 낙동강 도보순례를 할 때 바로 이곳에서 출발하며 ‘낙동강 살리기 기원제’를 지냈다. 바로 엊그제의 일만 같은데 당시에는 낙동강이 되살아나고 있었으니 대구 근교 등의 몇 구간을 제외하고는 그나마 희망적이었다. 그러나 황지연못의 맑은 물이 먼 길을 흘러가는 지금의 낙동강의 얼굴은, 몸통은, 내장은 어떠한가.
이 용천수를 어머니의 정화수로 흰 사발에 가득 떠놓고 간절한 기원을 하기 이전에 날마다 대성통곡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낙동강에 기대어 살며 날마다 이 맑은 물을 오염시킨 사람들 모두 황지연못을 찾아와 참회부터 해야 하고, 이 맑은 생명수를 바라보며 ‘생명 본연으로서의 첫 마음’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집집마다 수도꼭지를 거슬러 오르면 바로 황지연못과 연결돼있다. 우리들의 입과 내장과 항문을 지나 싱크대 하수구와 화장실 변기를 따라 내려가면 부산 을숙도가 나오고, 거슬러 오르면 황지연못이 아닌가. ‘낙동강 생명공동체’라는 말은 관념이 아니라 바로 구체적인 현실이요, 모두가 한 몸인 것이다.
황지연못과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는 채 15㎞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태백시에서 35번 지방도를 타고 백두대간의 삼수령(三水嶺)을 넘어야 한다. 매봉산 삼수령(피재)은 이곳에서 빗물이 떨어지면 세 갈래로 갈라지는데 한강을 따라 서해로,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흘러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옛 문헌에는 한강의 발원지를 오대산 우통수라는 샘이라고 했으나, 1987년 국립지리원이 ‘한강 최장 발원지는 검룡소’라고 발표하면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태백시 창죽동 산1-1의 검룡소는 용이 되고자 한강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이무기의 전설이 내려온다.
검룡소는 둘레가 10m 남짓한 작은 소(沼)이자 큰 샘이다. 수온이 사철 평균 9도로 유지되며 하루 2000t의 물이 솟아난다. 금대봉 자락의 여러 샘에서 솟는 물이 땅으로 스며들었다가 다시 솟아나는 것이다. 조선총독부에서 9년 동안 실측한 결과 한강 발원지는 삼척군 하장면이고 그 길이는 514.4㎞라고 발표했지만 이 실측은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 새로 계측한 결과에 따르면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의 검룡소에서 서해까지 497.5㎞라고 한다. 낙동강 발원지가 황지연못보다 윗자락인 천의봉의 너덜샘이나 은대봉 능선의 은대샘과 금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듯이 한강의 발원지 또한 금대봉 자락의 제당굼샘과 예터굼의 굴물 등까지 거슬러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황지연못과 검룡소가 발원지로서의 위상을 쉽게 잃을 것 같지는 않다.
입구 주차장에서 검룡소까지 오르는 천혜의 산책길 1.6㎞는 아직 눈이 쌓여 있었다. 검룡소 바로 아래에서 바라보는 이끼폭포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3년 전 4대강 순례를 마치고 실상사 수월암의 연관 스님과 이곳에 왔을 때는 한여름이었다. 검룡소 아래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채 몇 초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웠다. 사시사철 9도를 유지하지만 이 온도에 뼈가 시리고 오금이 저릴 정도라는 게 신기했다. 언젠가 가보았던 바이칼 호수의 맑고 찬 물과 다를 바 없었다. 검룡소의 맑은 물을 두 손으로 고이 받들어 마시고 내려오는 발길은 상쾌했다. 온몸의 피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황지연못과 검룡소 이후는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끔찍했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이 역으로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야말로 낙동강과 한강의 시작은 이토록 맑았으나 흐를수록 탁해지고 죽어만 가는 것이다. 충주에 사는 이현주 목사는 “강이 옛날보다 더러워졌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더러워진 것이지 자연이 더러운 것은 아니다”라며 “어머니인 대자연이 생명의 강을 망치는 후레자식들의 더러움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자신이 후레자식인 줄 알고 참회하는 후레자식’이 있는가 하면, ‘어머니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조차 아직 모르는 후레자식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채근담(菜根譚)>에는 ‘첫 마음으로 돌아가라(당원기초심 當原其初心)’고 했으며, 노자(老子)의 <도덕경>에는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상선약수上善若水)’고 했다. 단 하루라도 발원지의 생명수를 잊고 사는 한 우리는 모두 ‘어머니인 강의 후레자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화방창 봄나들이를 나서려면 먼저 발원지부터 가볼 일이다.
‘물의 날’에도 4대강 죽이기공사는 여전히 ‘용맹정진’ 중이다. 폐수정화처리장 등의 ‘살리기공사’는 보이지 않고 강의 내장이 온통 다 파헤쳐지고, 온몸은 토막토막이 난 채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4대강은 더 이상 생명의 젖줄이 아니라 단절의 시대, 불통의 시대를 대변하는 은유가 되었다. 신라시대 원효 스님은 해골바가지 속의 썩은 물을 마시고 깨달았다고 한다. 하지만 4대강이라는 거대한 해골바가지 속의 물을 보며 어찌할 것인가.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짠맛을 알고 저 해골바가지 속의 물을 다 마셔봐야 겨우 깨달을 것인가. 참으로 불행한 메타포가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생명 시원의 발원지(發源地)에 가보고 싶었다. ‘역천(逆天)의 공사 중’인 끔찍하고 지긋지긋한 강을 거슬러 올라 잠시라도 발원지에 다시 가보고 싶었다. ‘민족의 젖줄’ 낙동강의 발원지인 태백의 황지연못과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가 그리웠다. 금강의 발원지인 전북 장수군 신무산의 뜬봉샘, 영산강의 발원지인 전남 담양군 가마골의 용소, 섬진강 발원지인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 능선의 데미샘이 간절해졌다. 매화꽃이 만발한 섬진강에서 폭설이 채 녹지 않은 강원도 태백까지 꽃샘추위를 맞으며 달려갔다. 장장 천리 길을 마치 애인을 만나러가듯이 가슴 설렜다. 춥고 배도 고팠지만 뼛속 깊숙이 고로쇠물처럼 어머니의 정화수가 차오르는 듯했다.
황지연못 상지. | 이원규 시인 촬영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25-4.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 황지연못은 말 그대로 여여(如如)했다. 처음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발원지답게 첫 얼굴, 첫 마음이었다. 황지연못은 태백시를 둘러싼 태백산·함백산·백병산·매봉산 등의 줄기를 타고 땅속으로 스며들었던 물이 용출되는 곳이다. 예로부터 ‘천황(天潢)’으로 불리며 신비하고 영험한 기운이 서린 연못으로 인정받아왔다. 해발 700m에 자리한 황지연못은 둘레가 100m인 상지, 50m인 중지, 30m인 하지로 된 3개의 못으로 이뤄져 있으며 사계절 하루 5000t의 물이 솟아나며 언제나 15도를 유지하는 청정수다.
황지연못에는 ‘수전노 노랭이’ 황동지라는 부자에 관한 전설이 전해오는데, 어느 노스님의 당부를 잊은 며느리는 도계읍 구사리 산등에서 돌이 되었고, 황부자는 이무기가 되었다고 하며, 황부자의 집터는 가라앉아 못이 되었다고 한다. 상지가 황부자의 집터, 중지가 방앗간터, 하지가 화장실터라고 한다. 가뭄이 들 때면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고, 연못에 돌을 던지면 비바람이 크게 인다는 전설도 있으며, 연못 주위에 천하의 명당이 있다 해서 이름난 풍수가들이 일대를 헤매기도 했다. 맑고 푸른빛을 띠고 있는 황지연못은 한눈에도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한편 낙동강의 길이와 발원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길이는 525㎞라는 게 정설이지만 실측 결과 513.5㎞는 주장도 있으며, 발원지는 ‘낙동강의 근원으로서 관아에서 제전을 두어 가물 때는 기우제를 올렸다’는 것과 <척주지> <대동지지> 등을 근거로 황지연못이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좀 더 높은 곳인 천의봉의 ‘너덜샘’과 금대산·함백산·태백산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은 혼돈을 부채질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아름다운 일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어느 산의 옹달샘치고 발원지 아닌 곳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 상징성에 무게가 실린 문제일 뿐이다.
황지연못 하지 | 이원규 시인 촬영
황지연못은 1989년 광동댐이 건설되기 이전에는 태백시민들의 상수도 취수장이었다. 3년 전 늦여름의 지독한 가뭄으로 광동댐이 바닥을 보이자 20년 만에 다시 상수원 역할을 톡톡히 해 공원으로만 머물던 황지연못이 그 소중함을 스스로 입증하기도 했다. 최근 태백시와 한국환경공단이 ‘낙동강발원지 물길복원’을 위한 생태하천 조성사업을 한다고 하는데 행여나 청계천 복원 수준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시내 복개사업이나 생태하천사업 이전에 성지화 혹은 성역화부터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가 아닐까. 10여년 전 수경 스님 등과 함께 낙동강 도보순례를 할 때 바로 이곳에서 출발하며 ‘낙동강 살리기 기원제’를 지냈다. 바로 엊그제의 일만 같은데 당시에는 낙동강이 되살아나고 있었으니 대구 근교 등의 몇 구간을 제외하고는 그나마 희망적이었다. 그러나 황지연못의 맑은 물이 먼 길을 흘러가는 지금의 낙동강의 얼굴은, 몸통은, 내장은 어떠한가.
이 용천수를 어머니의 정화수로 흰 사발에 가득 떠놓고 간절한 기원을 하기 이전에 날마다 대성통곡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낙동강에 기대어 살며 날마다 이 맑은 물을 오염시킨 사람들 모두 황지연못을 찾아와 참회부터 해야 하고, 이 맑은 생명수를 바라보며 ‘생명 본연으로서의 첫 마음’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집집마다 수도꼭지를 거슬러 오르면 바로 황지연못과 연결돼있다. 우리들의 입과 내장과 항문을 지나 싱크대 하수구와 화장실 변기를 따라 내려가면 부산 을숙도가 나오고, 거슬러 오르면 황지연못이 아닌가. ‘낙동강 생명공동체’라는 말은 관념이 아니라 바로 구체적인 현실이요, 모두가 한 몸인 것이다.
용이 되고자 한강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이무기의 전설이 내려오는 검룡소. 한강의 발원지임을 알리는 돌비석. | 이원규 시인 촬영
황지연못과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는 채 15㎞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태백시에서 35번 지방도를 타고 백두대간의 삼수령(三水嶺)을 넘어야 한다. 매봉산 삼수령(피재)은 이곳에서 빗물이 떨어지면 세 갈래로 갈라지는데 한강을 따라 서해로,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흘러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옛 문헌에는 한강의 발원지를 오대산 우통수라는 샘이라고 했으나, 1987년 국립지리원이 ‘한강 최장 발원지는 검룡소’라고 발표하면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태백시 창죽동 산1-1의 검룡소는 용이 되고자 한강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이무기의 전설이 내려온다.
검룡소는 둘레가 10m 남짓한 작은 소(沼)이자 큰 샘이다. 수온이 사철 평균 9도로 유지되며 하루 2000t의 물이 솟아난다. 금대봉 자락의 여러 샘에서 솟는 물이 땅으로 스며들었다가 다시 솟아나는 것이다. 조선총독부에서 9년 동안 실측한 결과 한강 발원지는 삼척군 하장면이고 그 길이는 514.4㎞라고 발표했지만 이 실측은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 새로 계측한 결과에 따르면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의 검룡소에서 서해까지 497.5㎞라고 한다. 낙동강 발원지가 황지연못보다 윗자락인 천의봉의 너덜샘이나 은대봉 능선의 은대샘과 금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듯이 한강의 발원지 또한 금대봉 자락의 제당굼샘과 예터굼의 굴물 등까지 거슬러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황지연못과 검룡소가 발원지로서의 위상을 쉽게 잃을 것 같지는 않다.
검룡소 | 이원규 시인 촬영
입구 주차장에서 검룡소까지 오르는 천혜의 산책길 1.6㎞는 아직 눈이 쌓여 있었다. 검룡소 바로 아래에서 바라보는 이끼폭포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3년 전 4대강 순례를 마치고 실상사 수월암의 연관 스님과 이곳에 왔을 때는 한여름이었다. 검룡소 아래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채 몇 초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웠다. 사시사철 9도를 유지하지만 이 온도에 뼈가 시리고 오금이 저릴 정도라는 게 신기했다. 언젠가 가보았던 바이칼 호수의 맑고 찬 물과 다를 바 없었다. 검룡소의 맑은 물을 두 손으로 고이 받들어 마시고 내려오는 발길은 상쾌했다. 온몸의 피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황지연못과 검룡소 이후는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끔찍했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이 역으로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야말로 낙동강과 한강의 시작은 이토록 맑았으나 흐를수록 탁해지고 죽어만 가는 것이다. 충주에 사는 이현주 목사는 “강이 옛날보다 더러워졌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더러워진 것이지 자연이 더러운 것은 아니다”라며 “어머니인 대자연이 생명의 강을 망치는 후레자식들의 더러움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자신이 후레자식인 줄 알고 참회하는 후레자식’이 있는가 하면, ‘어머니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조차 아직 모르는 후레자식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검룡소 아래 이끼폭포. | 이원규 시인 촬영
<채근담(菜根譚)>에는 ‘첫 마음으로 돌아가라(당원기초심 當原其初心)’고 했으며, 노자(老子)의 <도덕경>에는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상선약수上善若水)’고 했다. 단 하루라도 발원지의 생명수를 잊고 사는 한 우리는 모두 ‘어머니인 강의 후레자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화방창 봄나들이를 나서려면 먼저 발원지부터 가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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