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 시인
ㆍ버 시인 “꽁지 책 들고와 나한테 사인해 달라는데 미치겠어”
다시 봄이 왔다. 지난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기나긴 꽃샘 추위로 매화와 산수유꽃이 피더니 어느새 물앵두꽃이 벚꽃보다 일주일 정도 앞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동의 특산물인 녹차 잎이 사상 처음의 동해(凍害)로 누렇게 마르는 등 시절이 하수상하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니 전국 곳곳에서 상춘객들이 몰려와 화개장터가 시끌벅적하다. 다음 주가 되면 화개동천(花開洞天)의 쌍계사 벚꽃 십리길이 환하게 열릴 것이고, 하동에서 구례까지 섬진강변 19번 국도와 861번 지방도가 ‘천상의 꽃살문’을 활짝 열어놓을 것이다.
지난 26일 ‘지리산학교’ 6기 종강식이 열렸다. 악양면 면사무소 2층에 위치한 학교에는 그동안 학생들이 공부한 것들을 전시하기도 하고 마지막 책걸이도 푸짐하게 열렸다. 종강식을 마치고 학생과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원규 시인 촬영
언젠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너무 많이 맡은 꽃향기가 뇌 속까지 들어와 생각들이 온통 꽃무늬로 어른거리고, 내가 그대인지 그대가 나인지 너무 많이 본 꽃들이 몸속에까지 들어와 동맥과 정맥 속에 흐르고 있다.’ 봄날은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온갖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니 몸과 마음이 자꾸 달뜨게 되는 것이다. 문득 언젠가 보았던 <벽암록>의 ‘장사화상이 봄기운을 느끼다(長沙春意)’가 뇌리를 스쳐 얼른 일어나 다시 찾아보았다.
“화상께서는 어디를 다녀오십니까?”
“산에 좀 갔다 오는 길이네.”
“어디까지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처음에는 향기로운 풀을 따라갔다가 지는 꽃을 따라 돌아왔네.”
지난 토요일 ‘슬로시티’ 악양면사무소 2층에서는 지리산학교 6기 종강식이 있었다. 100여명의 학생과 강사들이 어울려 그동안 공부한 그림·사진·바느질 등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거나 생애 첫 시낭송을 하는 등 마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멀리 울산에서 온 시노래패 ‘울림’이 박남준 시인과 나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든 노래로 축하공연을 해주었다. 여수에서 온 ‘회천사’ 오종문씨는 삼치회와 김밥을 싸들고 왔고, 생활글쓰기반의 ‘꼴망태펜션’ 여주인은 훈제 닭요리를 가져오고, 누구인가 촌두부를 가져왔다. 누구는 직접 담근 매실주를 가져오고, 또 누구는 막걸리와 김치를 가져오는 등 언제나 그렇듯 종강식장은 졸업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봄소풍이자 한바탕 잔치마당이 되었다.
지리산행복학교와 지리산학교는 엄연히 다르지만 모두들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소설가 공지영씨가 지리산에 대안학교를 만들었다면서요? 그게 지리산학교 아닌가요?”라고 묻기도 한다. 지리산행복학교는 공지영씨의 연재와 책의 제목으로서 지리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다룬 ‘가상학교’이지만, 지리산학교는 지역민과 귀농·귀촌인들이 더불어 만들어가는 생활밀착형 대안문화예술학교로서 엄연히 실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거나 방송을 보다보니 실체가 있는 지리산학교와 하나로 엮이게 된다. 하기야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인 ‘버들치 시인’ 박남준, ‘고아르피엠 여사’ 신희지씨와 더불어 ‘낙장불입 시인’인 나 등등이 모두 지리산학교와 깊은 연관이 있으니 또 전혀 다르다고 할 수도 없다. 모두 강사 혹은 교무처장직을 맡고 있는데다 나 또한 교사대표를 맡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지리산행복학교’ 그 이후는 이 봄날에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말총머리에 수염을 기른 독특한 외모의 ‘내비도 교주 최도사’는 동네 목욕탕이나 자장면집에 가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데다 아예 집까지 찾아와 다짜고짜 1주일째 동거(?)를 청하는 사내도 있다. 물론 무작정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녹차 한 잔 대접하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하지만 이런 대책 없는 이들에겐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또 무슨 심사인지 이번에 찾아온 사내에게는 군말 없이 산중 외딴집의 방을 내준 것이다. “형, 웬일이야? 혼자 살던 사람이 일주일째 동거를 다하고서리” 하고 놀리자 “야, 원규야. 빈털터리인 내가 남의 집에 살긴 하지만 그래도 내어 줄 방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 내가 관상은 쫌 볼 줄 알잖냐” 하며 허허 웃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야, 근데 어떨 때는 아예 문을 안으로 걸어 잠가놓고 방안에서 죽은 듯 있다 보면 별 소리가 다 들려. 뭐, 이 집의 풍수지리가 어떻고, 연못엔 버들치가 사느니 안 사느니, 자기들끼리 온갖 평을 하다가 돌아가는 거 있지. 차암, 나는 내 집 내 방에 갇혀서 이 좋은 봄날에 오줌이 마려워도 참아야 한다니까. 혹시나 전화 올까봐 얼른 진동으로 바꾸고. 어휴, 꽁지작가 오면 보자구. 나의 이 고통만큼 끝까지 술을 사라 할 테니까, 흐흐.” 하지만 박시인은 그래도 덜 시달리는 편이다. 아무래도 이 여파로 더 고생이 많은 사람은 지리산학교의 김미수 간사와 신희지 처장이다. 카페 지리산학교에 전화번호가 공개돼있다 보니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문의전화와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교무처 사랑방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김미수씨는 연신 차를 대접해야 하고, ‘고아르피엠 여사’는 집에서도 하루 종일 통화 중이다. 5월부터 시작하는 다음 학기에 타지역 사람들이 몰리고, 여행을 온 김에 생활글쓰기반 등 각반의 청강을 신청하는 바람에 대기번호를 부여해야할 판이다. ‘행복한 비명’이 아닐 수 없다.
나 또한 이 봄날에 거의 휴대폰을 꺼놓고 산다. 애초부터 일어나면 전화기를 켜고 해가 지면 껐지만 요즘엔 아예 꺼버린다. 주말이면 봄날의 섬진강변 집을 나서 오히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강원도 등 더 먼 곳을 다녀온다. 다른 이들에 비하면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으려는 ‘싸가지’ 없는 짓이지만 별 도리가 없다. 그래도 불쑥 불쑥 용케도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집은 진입로를 걸어서 들어와야 하는데다 강 건너가 아니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사 온 지 1년밖에 안 된 외딴집이니 찾아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기어코 집을 찾아내는 것이다. 과연 정보화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조금 불편할 뿐 차 한 잔 나누면 될 것을 뭐 그리 호들갑떨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모두 고운 눈으로 보는 것만은 아니다. 소위 ‘안티’도 생겨나는 법. “너무 미화시킨 것 아니냐. 지리산은 청학동이 아니라 처절한 삶의 현장이다. 진정한 행복이라기보다는 수박 겉핥기 아니냐. 지리산의 땅값과 빈집 값만 올리는 바람에 진정으로 들어와 살려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간다. 저희들끼리만 행복하면 다냐?” 등등의 비판과 비난 또한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래도 할 짓은 다 한다. 최근 ‘모해’라는 비밀모임이 생겼다. 도시적 습성(?)을 버리지 못한 몇몇이 작당을 해서 당구를 치는 것이다. 솔봉식당 지하에 당구장이 생겼는데, 달랑 당구대 세 개뿐인 이 당구장의 주고객이 되었다. 식당에서 열쇠를 받아 우리끼리 치다가 알아서 계산하고 문을 닫는 무인 당구장이다. 며칠에 한번쯤 누군가 문득 ‘모해?’라는 문자를 보낸다. ‘모해?’는 ‘뭐해?’의 경상도 사투리다. 그 문자를 받은 사람은 단 한 마디의 답문자 ‘콜’을 보낸다. 그러면 정확히 한 시간 뒤에 슬그머니 당구장에 모여든다. 문자만 보고는 그 누구도 절대로 알 수 없는 비밀 메시지인 것이다. 지리산학교의 목공예반 김용회, 사진반 이창수, 학생회 총무 최진우, 섬진강 지킴이 황근수씨 등이 그 주요 멤버다. 살다가 문득 ‘모해?’ 하면 언제나 ‘콜’ 할 수 있는 인생이 날마다 그립다.
“화상께서는 어디를 다녀오십니까?”
“산에 좀 갔다 오는 길이네.”
“어디까지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처음에는 향기로운 풀을 따라갔다가 지는 꽃을 따라 돌아왔네.”
지난 토요일 ‘슬로시티’ 악양면사무소 2층에서는 지리산학교 6기 종강식이 있었다. 100여명의 학생과 강사들이 어울려 그동안 공부한 그림·사진·바느질 등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거나 생애 첫 시낭송을 하는 등 마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멀리 울산에서 온 시노래패 ‘울림’이 박남준 시인과 나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든 노래로 축하공연을 해주었다. 여수에서 온 ‘회천사’ 오종문씨는 삼치회와 김밥을 싸들고 왔고, 생활글쓰기반의 ‘꼴망태펜션’ 여주인은 훈제 닭요리를 가져오고, 누구인가 촌두부를 가져왔다. 누구는 직접 담근 매실주를 가져오고, 또 누구는 막걸리와 김치를 가져오는 등 언제나 그렇듯 종강식장은 졸업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봄소풍이자 한바탕 잔치마당이 되었다.
그런데 매월 열리는 지리산학교의 행사가 조금은 달라진 듯했다. 낯선 사람들의 출현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학생도 아니고 강사도 아닌 낯선 여행자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것이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가 경향신문에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그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책으로 출간되고 방송 및 여러 매체에 소개되면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지리산학교를 찾아오고, 하동군 악양면의 형제봉 주막 등과 화개면을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그냥 지리산이나 섬진강에 놀러온 봄날의 관광객들이 아니라 ‘지리산의 행복’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태세로 책을 들고 밑줄을 그어가며 배낭을 짊어진 채 찾아온 여행자들이다. 그중에는 아예 지리산에 눌러 살 작정으로 빈집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
지리산행복학교와 지리산학교는 엄연히 다르지만 모두들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소설가 공지영씨가 지리산에 대안학교를 만들었다면서요? 그게 지리산학교 아닌가요?”라고 묻기도 한다. 지리산행복학교는 공지영씨의 연재와 책의 제목으로서 지리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다룬 ‘가상학교’이지만, 지리산학교는 지역민과 귀농·귀촌인들이 더불어 만들어가는 생활밀착형 대안문화예술학교로서 엄연히 실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거나 방송을 보다보니 실체가 있는 지리산학교와 하나로 엮이게 된다. 하기야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인 ‘버들치 시인’ 박남준, ‘고아르피엠 여사’ 신희지씨와 더불어 ‘낙장불입 시인’인 나 등등이 모두 지리산학교와 깊은 연관이 있으니 또 전혀 다르다고 할 수도 없다. 모두 강사 혹은 교무처장직을 맡고 있는데다 나 또한 교사대표를 맡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지리산행복학교’ 그 이후는 이 봄날에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말총머리에 수염을 기른 독특한 외모의 ‘내비도 교주 최도사’는 동네 목욕탕이나 자장면집에 가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데다 아예 집까지 찾아와 다짜고짜 1주일째 동거(?)를 청하는 사내도 있다. 물론 무작정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녹차 한 잔 대접하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하지만 이런 대책 없는 이들에겐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또 무슨 심사인지 이번에 찾아온 사내에게는 군말 없이 산중 외딴집의 방을 내준 것이다. “형, 웬일이야? 혼자 살던 사람이 일주일째 동거를 다하고서리” 하고 놀리자 “야, 원규야. 빈털터리인 내가 남의 집에 살긴 하지만 그래도 내어 줄 방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 내가 관상은 쫌 볼 줄 알잖냐” 하며 허허 웃는다.
여기저기서 피해사례(?)가 속출한다. 버들치시인이 특히 그렇다. 박시인의 집은 악양면의 끝집이다 보니 비교적 찾아내기가 쉽다. 마을 끝까지 직진을 하다보면 오르막길이 끝나면서 바로 박시인의 집 마당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잘못 들어온 차도 이 마당에서 돌려야 하니 방안에서 조용히 시를 쓰다가도 후다닥 옷을 챙겨 입고 방문을 열어보아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리산행복학교’를 들고 온 여행객들이 이 책에다 사인을 해달라는 데 있다. 어느 날 나에게 “야, 요즘 나 자존심 상해 미치겠어. 아니, 나도 시인이잖아. 물론 등장인물로는 나오지만 근데 내 시집도 아니고 공지영의 책에다 사인을 해달라면 나는 어떡하냐구, 차암. 요즘 독자들은 예의가 없어. 웬만하면 차라도 한 잔 내줄 텐데” 하며 혀를 끌끌 차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야, 근데 어떨 때는 아예 문을 안으로 걸어 잠가놓고 방안에서 죽은 듯 있다 보면 별 소리가 다 들려. 뭐, 이 집의 풍수지리가 어떻고, 연못엔 버들치가 사느니 안 사느니, 자기들끼리 온갖 평을 하다가 돌아가는 거 있지. 차암, 나는 내 집 내 방에 갇혀서 이 좋은 봄날에 오줌이 마려워도 참아야 한다니까. 혹시나 전화 올까봐 얼른 진동으로 바꾸고. 어휴, 꽁지작가 오면 보자구. 나의 이 고통만큼 끝까지 술을 사라 할 테니까, 흐흐.” 하지만 박시인은 그래도 덜 시달리는 편이다. 아무래도 이 여파로 더 고생이 많은 사람은 지리산학교의 김미수 간사와 신희지 처장이다. 카페 지리산학교에 전화번호가 공개돼있다 보니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문의전화와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교무처 사랑방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김미수씨는 연신 차를 대접해야 하고, ‘고아르피엠 여사’는 집에서도 하루 종일 통화 중이다. 5월부터 시작하는 다음 학기에 타지역 사람들이 몰리고, 여행을 온 김에 생활글쓰기반 등 각반의 청강을 신청하는 바람에 대기번호를 부여해야할 판이다. ‘행복한 비명’이 아닐 수 없다.
나 또한 이 봄날에 거의 휴대폰을 꺼놓고 산다. 애초부터 일어나면 전화기를 켜고 해가 지면 껐지만 요즘엔 아예 꺼버린다. 주말이면 봄날의 섬진강변 집을 나서 오히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강원도 등 더 먼 곳을 다녀온다. 다른 이들에 비하면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으려는 ‘싸가지’ 없는 짓이지만 별 도리가 없다. 그래도 불쑥 불쑥 용케도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집은 진입로를 걸어서 들어와야 하는데다 강 건너가 아니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사 온 지 1년밖에 안 된 외딴집이니 찾아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기어코 집을 찾아내는 것이다. 과연 정보화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조금 불편할 뿐 차 한 잔 나누면 될 것을 뭐 그리 호들갑떨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모두 고운 눈으로 보는 것만은 아니다. 소위 ‘안티’도 생겨나는 법. “너무 미화시킨 것 아니냐. 지리산은 청학동이 아니라 처절한 삶의 현장이다. 진정한 행복이라기보다는 수박 겉핥기 아니냐. 지리산의 땅값과 빈집 값만 올리는 바람에 진정으로 들어와 살려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간다. 저희들끼리만 행복하면 다냐?” 등등의 비판과 비난 또한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래도 할 짓은 다 한다. 최근 ‘모해’라는 비밀모임이 생겼다. 도시적 습성(?)을 버리지 못한 몇몇이 작당을 해서 당구를 치는 것이다. 솔봉식당 지하에 당구장이 생겼는데, 달랑 당구대 세 개뿐인 이 당구장의 주고객이 되었다. 식당에서 열쇠를 받아 우리끼리 치다가 알아서 계산하고 문을 닫는 무인 당구장이다. 며칠에 한번쯤 누군가 문득 ‘모해?’라는 문자를 보낸다. ‘모해?’는 ‘뭐해?’의 경상도 사투리다. 그 문자를 받은 사람은 단 한 마디의 답문자 ‘콜’을 보낸다. 그러면 정확히 한 시간 뒤에 슬그머니 당구장에 모여든다. 문자만 보고는 그 누구도 절대로 알 수 없는 비밀 메시지인 것이다. 지리산학교의 목공예반 김용회, 사진반 이창수, 학생회 총무 최진우, 섬진강 지킴이 황근수씨 등이 그 주요 멤버다. 살다가 문득 ‘모해?’ 하면 언제나 ‘콜’ 할 수 있는 인생이 날마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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