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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그림철학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17) 레옹 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ㆍ소망합니다. 그대 내 사랑이 되기를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지요? 저 그림의 남과 여, 한용운의 ‘님의 침묵’처럼 정말로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을 정열적인 키스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으세요? 그런데 왜 여자만 알몸일까요? 아, 그러고 보니 알겠습니다. 저 남자가 저 여자를 만든 거네요! 저 남자, 피그말리온입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로 유명한 그 남자!

그 마음, 아세요?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할 수 없는 마음, 사랑할 사람도 없는데, 봄꽃처럼 피어오르는 사랑! 피그말리온이 그랬습니다. 그는 왕이었습니다. 세상의 여자를 권력으로 취할 수 있는 왕! 그런데 권력으로 쉽게 다가가다 보면 마음으로 다가서는 법을 잃어버리게 되지요? 계급장 떼고 만나는 것이 어려운 사람에게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어려운 법입니다. 그래놓고 세상 탓, 여자 탓, 남자 탓만 하는 거지요.

그런 피그말리온은 믿었습니다.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아도 마음 놓고 사랑할 여자가 없다고. 왜 그에겐 마음 놓고 사랑할 여자가 없었던 걸까요? 피그말리온이 본 세상의 여자들은 아무에게나 정을 주고 또 쉽게 정을 거두는 헤픈 존재들이었습니다. 함께 꿈꿀 수 없는 여자, 함께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여자였던 거지요.

장 레옹 제롬,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1890년경, 캔버스에 유채, 89x68㎝,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사랑할 사람이 없다며 사랑하지 않는 자는 대부분 콧대 높은 사람이라기보다 콤플렉스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현실 속의 여자를 미워하며 신뢰하지 못하는 남자는 실상은 자신의 남성성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 콤플렉스 속에서 제대로 타오르지 못한 열정은 병이 됩니다. 세상에 혼자 버려진 느낌, 혹은 높은 탑에 갇혀 있는 답답한 느낌을 앓고 있는 거지요.

그렇게 병들고 시든 남성성이 여인의 향기가 그리우면 피그말리온처럼 환상 속의 그대를 만들게 되지 않나요? 자, 보십시오. 피그말리온과 정열적인 키스를 나누는 저 아름다운 몸매의 여인을. 그녀는 갈라테이아입니다. 세상에는 간직해둘 만한 가치가 있는 여자가 없다고 세상의 여자를 사랑하지 못한 피그말리온이 직접 조각하여 만든 그 여자 갈라테이아! 조각가이기도 했던 피그말리온은 자기 속의 여인을 현실화했습니다. 아름답고 열정적이고 그러면서도 따뜻하고 정숙한 여인을.

이제 여자의 발을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이상하게도 발이 조각대에 붙어 있습니다. 아시겠지요? 그녀는 현실 속의 여인이 아니라 만들어진 여인, 환상 속의 여인입니다. 장 레옹 제롬의 솜씨는 사랑에 빠져 키스를 나누는 열정적인 여인의 환상적 자태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멋진 솜씨는 생동하는 상체와 대비하여 아직 피가 돌지 않아 차갑기만 할, 푸르스름한 종아리에서도 드러납니다. 피그말리온의 갈라테이아가 조각대에서 걸어 나와 현실 속의 여인이 되기 위해서는 저 다리에 피가 돌고 힘이 붙어야 합니다.

실제로 피그말리온은 상아로 아름다운 여인을 깎아놓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간곡히 빌었다지요? 눈 맑고 피부 맑은 내 여인이 마음 맑은 여인으로 따뜻하게 태어나기를, 피가 돌고 살이 붙어 자신과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아프로디테의 아들 에로스의 화살이 그들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저 순간은 그의 간곡한 소망이 실현되는 극적인 순간이기도 합니다. 거기서 바로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세상은 소망하고 기대하는 대로 이뤄지고, 사람은 믿어주는 대로 반응하고 성장한다는 거!

실제로 아이를 키워보면 알게 됩니다. 아이는 엄마의 믿음을 먹고 성장한다는 것을. 자신을 믿지 못하는 엄마는 아이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것도. 가까운 사이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는 의미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가까운 이에게 나눠주고 있는 내 안의 정서와 느낌을 성찰하게 만드니까요.

그렇지만 환상 속의 그대를 만들어야만 사랑할 수 있는 피그말리온은 안쓰럽지 않나요? 그저 바랄 뿐입니다. 환상으로 사랑을 시작한 자, 그 환상을 통해 환상을 깨고 진짜로 현실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