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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법정스님, 눈쌓인 산 보고싶어해”

연합뉴스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서귀포를 떠나기 전 죽음이 무엇인가 하고 묻자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뢰와 같은 침묵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아마 육신을 벗고 맨 먼저 강원도 눈 쌓인 산을 보러 가셨겠지요."

11일 입적한 법정스님과 각별한 인연을 쌓으며 '산에는 꽃이 피네' 등의 책을 함께 내기도 한 류시화 시인은 이날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한 후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http://www.shivaryu.co.kr/)를 통해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시인은 스님이 제주도에서 겨울을 나다 병세가 악화해 서울의 병원에 입원해 있던 때 "강원도 눈 쌓인 산이 보고 싶다"고 했던 말을 전하며 "그 소박한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줄곧 병원에 갇혀 계시다가 오늘 오전 의식을 잃으셨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스님의 폐암이 재발한 이후부터 "이 육체가 거추장스럽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새장에 갇힌 새를 보는 것 같아 뒤에서 눈물을 쏟은 적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이제 그 새가 날아갔습니다"라고 애통함을 전했다.

시인은 스님이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다 의식을 잃고 입적한 것에 대해 "이런 사실을 두고 법정스님과 어울리지 않는 마무리라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한 인간의 모습이고 종착점입니다. 어디에서 여행을 마치는가보다 그가 어떤 생의 여정을 거쳐왔는가가 더 중요함을 우리가 알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시인은 또 지난해 6월 법정스님이 시인과 제자 등 가까운 사람 서넛을 부른 자리에서 "절대로 다비식 같은 것을 하지 말라. 어떤 거창한 의식도 하지 말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으나 결국 주위의 설득에 따라 송광사에서 다비식이 진행되기로 했다고 전했다.

시인은 스님이 입적 며칠 전에 한 "만나서 행복했고 고마웠다"라는 말을 그대로 스님에게 돌려주며 "사람은 살아서 작별해야 합니다. 그것이 덜 슬프다는 것을 오늘 깨닫습니다"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

"이 보잘것없는 한 중생을 만나 끝까지 반말 한 번 안 하시고 언제나 그 소나무 같고 산사람 같은 모습을 보여주셔서 행복하고 감사했다고. 이 삶이 고통이고 끝없는 질곡이라 해도 또다시 만나고 싶다고. 해마다 봄이면 '꽃보러 갈까? 차잎 올라오는 것 보러 갈까? 바다에 봄 오는 것 보러 갈까?' 하고 연락하시던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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