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으면서 어른들께 세배도 못 드리고 벌써 두 번의 설날이 지나갔습니다. 코로나의 확산이 시작되던 작년의 설날과, 듣지도 보지도 못한 ‘5인 이상 사적 모임 집합금지 행정명령’으로 직계가족이라도 8인까지만 모일 수 있어 지나간 올 해의 설날입니다. 그렇게 친척이 많지 않아 예전에는 8인이라도 충분했는데 이젠 큰집의 직계가족만도 8인이 넘습니다. 물론 우리 가족도 8인이 넘었지요. 어차피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매번의 명절마다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일은 뜸해졌을 것입니다.
오늘도 코로나와 관련된 속보가 쏟아집니다.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조치’는 여전하고 수도권과 부산의 유흥시설에 대한 영업금지 조치가 더해졌습니다. 룸살롱과 클럽 등 유흥주점과 단란주점, 헌팅포차, 감성주점, 콜라텍, 무도장, 홀덤펍 등 유흥시설이 대상이라는데 부산 소재 유흥시설이 유흥주점 2457개, 단란주점 1686개소, 감성주점 14개소 등 총 4156개소, 부산 인구의 6.8배인 수도권의 유흥시설은 아마도 2~3만 여개 쯤 일 것입니다. 당장 저 많은 업소의 관계자분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일 것이고, 코로나로 힘들어진 세상에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이라도 추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은 분들에게는 좀 더 오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소식일 것입니다. 물론 서울의 직장도, 부산의 직장도 그만 둔 뒤로 나에게 유흥시설은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남의 일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집합금지 행정명령, 5인 이상 사적 모임금지, 모임·식사금지, 사회적 거리두기, 좌석 한 칸 띄우기, 인원제한, 무관중 경기, 영업금지, 원격수업, 재택근무, 언택트, 비대면 서비스 등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한 말들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모이지 마라’는 것인데 흩어져야만 살 수 있는 시절에 묘하게도 ‘모을 집(集)’에 대한 원고청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 많은 곳도, 사람 모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모을 집(集)에 대한 생각과 사유를 나누어 달라’니, 코로나 덕분에 명절에 세배 드리는 것도, 유흥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이제 체면치례 않고 남들 눈치 안 봐도 돼서 은근히 좋아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말입니다.
모을 집(集), 회의문자, 나무(木) 위에 새(새추(隹)部)가 모여서 앉아 있는 것을 나타낸 글자로 「모이다」를 뜻함.
처음엔 그랬습니다. 아니, 그게 틀린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몇 해 전 우연히 지인의 강연에 동행했다 백년어서원의 후원을 결심하게 되었고, 여러 한자들 중에 ‘모을 집(集)’을 선택한 건 나무 위에 새가 모여 앉은 본래의 의미보다 새가 모일 수 있는 나무에 대한 욕심이 더 컸을 것입니다. ‘모을 집’ 말 그대로 집을 모았으면 하는 바램이었겠지요. 멀쩡한 직장을 그만 두고 ‘脫서울’까지는 좋았지만 이후 통영과 김해의 월셋집을 전전하던 때라 간절함이 더 했을 것입니다. 그 간절함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진주 남강변의 작은 아파트를 시작으로 지금의 비교적 넓은 신도시아파트까지 그야말로 집이 모였습니다. 그것은 단지 2년마다 조금씩 큰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살던 집이 팔리지 않아 그리 된 것인데 집조차도 모으면 안 되는 것인지 하루아침에 부동산 교란의 주범인 ‘갭 투자자’로 지목받아 정부의 다주택자에 대한 엄청난 규제들을 직접 감수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갭 투자가 뭔지도 모르고 벌인 일들이라 딱히 대책도 없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모을 집(集)’에는 집대성(集大成), 집소성대(集小成大), 집액성구(集腋成裘) 등과 같이 많은 훌륭한 것을 모아서 하나의 완전한 것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라든지,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을 이룬다거나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아 한 가지 일을 성취한다는 등에 쓰이는 어쩌면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작은 힘들이 모이고 쌓인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 좋은 의미와 달리 개인의 욕망이나 욕심이 모이는 순간, 얼마나 큰 대가와 사회적 혼란을 치러야 하는지 ‘모을 집(集)’에서 깨달을 수 있었던 지난 몇 달이었습니다.
코로나로 그나마 유지되던 사회적 관계가 다 끊어져 버렸습니다. SNS에서조차 새로운 알림이라고 열어보면 과거의 오늘이라며 추억을 소환하는 게 다입니다. 사람 모이는 게 싫다고 했지만 사실은 사람이 무척 그리웠나 봅니다. 지금의 코로나로 그동안 몰랐던 ‘일상의 소중함’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작은 힘이라도 모아 다시 올 환한 봄에는 지금의 위기가 극복되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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