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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그림철학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44)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ㆍ누가 이웃인가?

운명에는 목격자가 있고, 목격자의 운명이 있습니다. 혹 상처 입고 쓰러져 위기를 맞고 있는 누군가를 목격하신 적 없으신가요? 그 때 어떻게 하셨나요?

포대기에 쌓인 아기가 길가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아기의 목숨이 위태롭기만 한데 한 사람, 두 사람…, 마침내 열일곱 번 째 사람이 그 아기를 지나칩니다. 보고도 못 본 척 그냥 지나치는 사이 아기는 목숨 줄을 놓아버렸습니다. 얼마 전 중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사건입니다. 그 사건이 어찌 중국만의 문제겠습니까?

나는 생각합니다. 어쩌면 내가 이웃의 위기에 무디고 무딘 피폐한 영혼이고, 그럼으로써 나의 위기에도 아무에게도 손 내밀 수 없는 고립된 영혼인지도 모른다고. 그 상황에 떠오르는 그림이 바로 고흐의 ‘선한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분위기가 환하지요? 저 따뜻한 노랑과 안정감이 있는 파랑이 상처 입은 사람에게 괜찮다, 괜찮다, 위로해주는 어머니의 품 같습니다. 아마도 저 그림을 그릴 때 고흐는 따뜻한 사랑이 절절히 그리웠나 봅니다.

빈센트 반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1890, 캔버스에 유채 73×59.5㎝, 크뢸러 뮐러 미술관, 오테를로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누가복음에 나옵니다. 여리고로 가는 길목에서 한 남자가 강도를 만나 빈털터리가 된 채 상처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습니다. 존경받는 율법사가 그냥 지나가고, 경건한 레위인이 그냥 지나칩니다. 그를 보고 도와준 것은 천하디 천한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환자를 말에 태우는 사마리아인을 보십시오. 상처 입은 남자의 무거워진 몸을 일으켜 세우는 사마리아인의 자세가 힘에 부쳐 보입니다. 그러나 힘이 생겨나는 것도 같지요? 남자를 받아들이는 말의 태도도 안정적인 것이 저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진정한 이웃 사랑이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흐는 이렇게 썼습니다. “사랑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 사랑에는 진정한 힘이 있다. 사랑으로 한 일은 무엇이든 잘 한 일이다.”

고흐는 저 한 장의 그림에 많은 걸 담았습니다. 오솔길을 따라 앞으로 가보면 뒷모습만 보이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저 멀리 사라지고 있는 한 사람, 그리고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또 한 사람! 그들은 상처 입은 남자를 외면하고 그냥 지나쳐버린 율법사와 레위인입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고 교육을 해왔던 지도층 인사들인 거지요.

아마 그들은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양로원이나 보육원을 방문해서 그들 방식의 나눔을 실천하는 괜찮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렇게 피 흘리고 있는 구체적인 개인의 친구는 될 수 없는 거지요.

윤리적인 사람들의 함정이 있습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계명 혹은 윤리 뒤에 숨어 자신의 약점을 감추는 것! 그들은 윤리적인 우월성으로 군림하려 들면서 자신의 삶이 빛나기만을 바랄 뿐 서로의 삶속으로 스미지를 못하기 때문에 정작 삶이 빛나지 않는 겁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초라하게 사라지는 그들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그들’인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너무나 윤리적인 우리들인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저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나 봅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본 적도 있었고, 누군가를 도와줘본 적도 있었습니다. 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해서 명치끝에 걸려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알겠습니다. 우리는 부족해서 도움을 받고 넘쳐서 도와주는 것이 아님을. 인간은 도움을 주며 풍요로워지고 도움을 받으며 윤이 나는 존재임을. 인간의 영혼은 어려움으로 죽어가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함께할 존재가 없이 고립되어 있을 때 서서히 죽어가는 거지요. 물을 만나지 못한 화초가 말라가는 것처럼.

저 그림에서는 상처 입은 남자까지 모두가 다 나의 자화상입니다. 살다 보면 손발이 마비된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할 때도 있으니까요. 사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돕지 못하는 위기의 순간에는 보다 섬세해지지요? 도움을 주는 손길이 따뜻한지, 차가운지 본능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런 순간에 너그러운 도움으로 위험을 헤쳐오고 보면 그야말로 기적을 믿게 됩니다. 먹은 마음 없는 도움을 받아 어려움을 넘어온 사람, 그 사람은 단순히 위기를 모면한 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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