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수원대 교수·철학
ㆍ고독을 잊게 하는 붓 끝의 산
인간은 빵으로 살고, 재능으로 죽는 거라며 화를 낸 사람은 세잔의 아버지였습니다. 그 말만 들어도 알겠습니다. 세잔의 아버지가 얼마나 완강하고 무서웠는지를. 자수성가형의 강한 아버지는 배고픈 화가가 되고자 하는 아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겁니다. 재능으로 죽어도 미련 없이 죽을 수 있는 일의 행복을 인정해주기에는 가족이 너무나 보수적이고 너무나 가깝지 않나요?
세잔이 가족의 환영을 받지도 못하면서 가슴 속에 묻어버리지도 못하고 꺼내 키워야 했던 그림의 불씨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말년에 생 빅투아르 산을 그린 그림을 보면 선명해집니다. 저 그림은 세잔이 그린 생 빅투아르 산 그림들 중의 하나입니다. 산과 하늘과 숲과 성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지요? 움직이지 않는 산과 성이 움직이는 바람과 빛과 무성한 숲을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든 것 같은 느낌이 좋습니다. 성은 산을 향해 견고하고, 산은 하늘을 향해 조용히 열려 있습니다. 무성한 나뭇잎들은 산과 성과 하늘의 살아있는 울타리 구실을 하며 모두가 하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오렌지빛이어서 분명하게 시선이 가는 성은 무서울 정도로 조화로운 세상을 훔쳐본 인간의 의식 같습니다.
세잔은 말년 20년 동안 고향의 산, 생 빅투아르를 그렸습니다. 아이에게 산은 놀이터고 심신이 지친 도시인들에게 산은 휴식처입니다. 그렇다면 매일 산을 그리고 또 그린 화가에게 산은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은 빵으로 살고, 재능으로 죽는 거라며 화를 낸 사람은 세잔의 아버지였습니다. 그 말만 들어도 알겠습니다. 세잔의 아버지가 얼마나 완강하고 무서웠는지를. 자수성가형의 강한 아버지는 배고픈 화가가 되고자 하는 아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겁니다. 재능으로 죽어도 미련 없이 죽을 수 있는 일의 행복을 인정해주기에는 가족이 너무나 보수적이고 너무나 가깝지 않나요?
세잔이 가족의 환영을 받지도 못하면서 가슴 속에 묻어버리지도 못하고 꺼내 키워야 했던 그림의 불씨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말년에 생 빅투아르 산을 그린 그림을 보면 선명해집니다. 저 그림은 세잔이 그린 생 빅투아르 산 그림들 중의 하나입니다. 산과 하늘과 숲과 성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지요? 움직이지 않는 산과 성이 움직이는 바람과 빛과 무성한 숲을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든 것 같은 느낌이 좋습니다. 성은 산을 향해 견고하고, 산은 하늘을 향해 조용히 열려 있습니다. 무성한 나뭇잎들은 산과 성과 하늘의 살아있는 울타리 구실을 하며 모두가 하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오렌지빛이어서 분명하게 시선이 가는 성은 무서울 정도로 조화로운 세상을 훔쳐본 인간의 의식 같습니다.
세잔은 말년 20년 동안 고향의 산, 생 빅투아르를 그렸습니다. 아이에게 산은 놀이터고 심신이 지친 도시인들에게 산은 휴식처입니다. 그렇다면 매일 산을 그리고 또 그린 화가에게 산은 무엇이겠습니까?
폴 세잔 ‘생 빅투아르 산’ 1904~06년, 캔버스에 유채, 66.2*82.1cm, 브리지스톤 미술관, 도쿄
관찰은 단순히 보는 게 아닐 겁니다. 세잔이 말합니다. “나는 지속적으로 자연을 탐구해왔다. 본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본 것을 그려야 한다.” 잡생각을 지워가며 침묵 속에서 조용히 산을 바라보다 보면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집요하게 화가를 사로잡았던 원근법은 어쩌면 3차원 세계의 환영일 수 있다는 것을. 세잔은 원근법으로부터 자유롭고 나서 바로 ‘색’의 혁명을 이룩합니다. 세잔은 인상파 화가면서도 순간적인 빛 너머의 존재에 집요했습니다. 모네의 그림이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라 할 수 있다면 세잔은 빛 너머, 영광 너머 묵직하게 존재하는 어떤 것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빛은 색으로 드러납니다. 캔버스 위에서 색은 존재를 알려주는 생명의 아이들입니다. 모네와 대조적인 그 점에서 그는 피카소나 마티스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빛은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색채를 통해 묘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젊은 날 강한 아버지로 인해 아들의 존재까지 감춰야 했던 세잔은 아주 소심한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소심한 성격 탓에 나이 들수록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고립되었으니 그림이야말로 그의 유일한 구원이었습니다. 그가 고독 속에서 20년이나 그려왔던 생 빅투아르 산은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그의 신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빛 너머 묵직하게 존재하는 어떤 견고한 구조를 보여주기에 산은 진짜 좋은 소재 아닌가요?
세잔이 말합니다. “생 빅투아르는 나를 이끌었다. 그 산은 내 안에서 자기 자신을 사유하고 있는 것이고, 나 자신은 생 빅투아르의 의식이다.” 세잔에게 생 빅투아르는 신이고 성전이며, 세잔은 생 빅투아르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사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릴케는 이렇게 말했나 봅니다. 세잔은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종교를 그렸다고.
프랑스 남부 엑상 프로방스에 가면 세잔의 길(Route de Cezanne)이 있습니다. 생 빅투아르를 그리기 위해 오른 로브 언덕까지의 길, 그 세잔의 길을 걸으며 사람들은 물을 것입니다. ‘나’의 길은 무엇인지?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이유!
'이주향의 그림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42) 번 존스 ‘코페투아왕과 거지소녀’ (0) | 2011.10.28 |
---|---|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41) 폴 세잔 ‘수욕도’ (0) | 2011.10.06 |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39) 앙리 루소 ‘잠든 집시여인’ (0) | 2011.09.26 |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38) 앙리루소 ‘뱀을 부리는 여자’ (0) | 2011.09.16 |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36) 마티스의 ‘원무’ (0) | 2011.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