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ㆍ에로스보다 진한 우정
종종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을 봅니다. 다윗이 누구에게나 빛나는 생의 주연이었다면, 요나단은 생각할수록 빛나는 조연이었습니다. 다음 대에 왕이 되어야 할 왕자로서 요나단은 자기보다 빛나고 있는 친구 다윗을 질투할 만도 한데 그는 오히려 아버지의 질투로부터 친구 다윗을 보호하고, 다윗을 위로하며, 다윗과 깊은 우정을 나눈 인간 중의 인간이었습니다.
렘브란트의 저 그림은 사울왕의 질투로 목숨이 위태롭게 된 다윗을 요나단이 사울왕 몰래 빼돌려 떠나보내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그림입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남자가 요나단입니다. 친구를 위로하는 따뜻한 손이 듬직합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생각보다 나이 들었지요? 우정을 아는 듬직함을 그리기 위해 렘브란트는 요나단의 표정에 나이를 입혔나 봅니다.
종종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을 봅니다. 다윗이 누구에게나 빛나는 생의 주연이었다면, 요나단은 생각할수록 빛나는 조연이었습니다. 다음 대에 왕이 되어야 할 왕자로서 요나단은 자기보다 빛나고 있는 친구 다윗을 질투할 만도 한데 그는 오히려 아버지의 질투로부터 친구 다윗을 보호하고, 다윗을 위로하며, 다윗과 깊은 우정을 나눈 인간 중의 인간이었습니다.
렘브란트의 저 그림은 사울왕의 질투로 목숨이 위태롭게 된 다윗을 요나단이 사울왕 몰래 빼돌려 떠나보내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그림입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남자가 요나단입니다. 친구를 위로하는 따뜻한 손이 듬직합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생각보다 나이 들었지요? 우정을 아는 듬직함을 그리기 위해 렘브란트는 요나단의 표정에 나이를 입혔나 봅니다.
렘브란트 ‘다윗과 요나단의 이별’(Departing of David and Jonathan), 1642년, 패널에 유채, 73×61㎝, 에르미타주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얼굴이 보이는 듬직한 남자가 요나단이니 칼을 찬 뒷모습의 사람이 다윗이겠습니다. 다윗의 칼이 저것인가 보지요? 얼마 전 이스탄불에 다녀왔는데, 거기 톱카프 궁전 박물관에서 다윗의 칼이라고 하는 칼이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묵묵히 빛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황제가 되자 너무 좋았던 어머니 헬레나는 감사의 표시로 기꺼이 성지순례를 떠납니다. 길고도 오랜 순례 길에서 찾아온 성물(聖物) 중에 다윗의 칼이 있었습니다. 톱카프에 전시되어 있는 그 잘생긴 칼이었습니다. 그것이 진짜 다윗의 칼이었는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1700년의 세월을 다윗의 칼로 살아온 다부진 칼은 이미 다윗의 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칼은 원래 요나단의 칼이었겠지요?
저 그림 ‘다윗과 요나단의 이별’ 속에 다윗이 차고 있는 저 칼은 요나단의 것이었습니다. 요나단이 이별의 정표로 다윗에게 준 것입니다. 칼은 그렇다 치고 목동이었던 다윗의 옷도 생각보다 화려하지요? 그것도 요나단이 건넨 것입니다. 저 시대에 자신의 옷을 입혀 준다는 것은 자기를 나눠준다는 뜻이었습니다. 일종의 도원결의였던 셈이지요. 요나단과 다윗은 그만큼 가까웠습니다.
뒷모습만으로도 전달되지 않습니까? 요나단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는 다윗이 요나단의 품에서 절망스럽게 흐느끼고 있다는 것을. 저렇게 요나단의 품에 무너져 있는데도 다윗이 안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고 위로할 수 있는, 두려움 없는 우정이 부러울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후 불레셋과의 전투에서 요나단이 전사했을 때 다윗이 썼던 조가(弔歌)가 자연스럽습니다. “너 이스라엘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었구나, 나의 형 요나단이여, 나 애통하오. 내게 소중했던 형이여,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 아름다웠소.”
에로스 사랑보다 아름다운 우정을 아십니까, 친구의 처지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는 요나단 같은 속깊은 친구가 있으십니까? 사랑이 소유가 아니듯 우정도 소유가 아닙니다. 저 그림을 보니 진정한 우정은 옆에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뒷모습만으로도 당장 쓰러질 것처럼 지치고 슬퍼 보이는 저 다윗을 보니 아마 저 그림을 그릴 때 렘브란트는 울고 싶었나 봅니다. ‘나’를 받아주는 큰 품에서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을 모두 쏟아내고 싶었나 봅니다. 그 슬픔은 무엇이었을까요? 1642년 작품이니, 그 해는 바로 렘브란트가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를 잃은 해입니다. 렘브란트 나이 서른여섯, 얼마나 암담했을까요? 슬플 땐 울어야 합니다. 슬픔이 응어리져 굳어지기 전에 울고 또 울어야 합니다. 저렇게 서럽게 울고 나면 자신만의 독특한 운명을 받아들일 힘이 생길 것입니다.
'이주향의 그림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38) 앙리루소 ‘뱀을 부리는 여자’ (0) | 2011.09.16 |
---|---|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36) 마티스의 ‘원무’ (0) | 2011.09.16 |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35) 오처드슨의 ‘아기도련님’ (0) | 2011.08.19 |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34)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0) | 2011.08.11 |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32) 르누아르의 ‘빨래하는 여인들’ (0) | 2011.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