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수원대 교수·철학
ㆍ“언제부터 이렇게 예뻤나?”
고흐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꿈을 꾸게 되지요? 벨라스케스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사는 게 좋습니다.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은 ‘세비아의 물장수’입니다. 신분의 관점에서 보면 물장수는 존재감이라곤 없는 천한 사람이지만, 삶의 관점에서 보면 그 물장수는 인생사 희로애락을 소화해낼 줄 아는 현자 같습니다. 기분 좋게 나이든 온화한 물장수가 주는 물 한잔을 받아 마시면 그것이 온 몸 구석구석을 돌며 생기를 실어 나를 것 같습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거울을 보는 비너스>, 1647~51년경, 캔버스에 유채, 122.5*177㎝, 내셔널 갤러리, 런던.
고흐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꿈을 꾸게 되지요? 벨라스케스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사는 게 좋습니다.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은 ‘세비아의 물장수’입니다. 신분의 관점에서 보면 물장수는 존재감이라곤 없는 천한 사람이지만, 삶의 관점에서 보면 그 물장수는 인생사 희로애락을 소화해낼 줄 아는 현자 같습니다. 기분 좋게 나이든 온화한 물장수가 주는 물 한잔을 받아 마시면 그것이 온 몸 구석구석을 돌며 생기를 실어 나를 것 같습니다.
아프로디테의 거울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이의 거울이 아닙니다. 누이의 거울이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는 성찰의 거울이라면 아프로디테의 거울은 ‘나’의 아름다움을 찬양해야 한다고 염파를 보내는 자아도취, ‘자뻑’의 거울입니다. 거울을 보는 그녀는 그녀 자신에게 빠져 있습니다.
저 그림을 의뢰한 이는 그 당시 스페인의 총리대신 아들로 천하의 바람둥이였던 가스파르 데 아르였다고 합니다. 아프로디테는 그런 바람둥이도 가지고 놀 수 있는 여인입니다. 물론 그런 바람둥이에게 빠질 여인은 아닙니다. 거울을 보는 게 업(業)인 그녀는 그녀 자신에게만 빠져 있습니다. 세상 모든 남자가 그녀에게 빠질 때까지 어떤 남자에게도 빠지지 않고 도도하게 자기를 과시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거울 속의 아프로디테를 응시해보십시오. 저 거울을 통해 아프로디테는 자신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그녀를 보는 당신을 응시하고 있지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어도 당당하고 도도한 것이 녹록하지 않습니다. 그게 아프로디테입니다.
저 아프로디테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찬사를 받는 일입니다. 너의 아름다움이 최고라고, 너밖에 없다고! “길라임씨는 언제부터 이렇게 예뻤나?” 아프로디테가 좋아하는 멘트입니다. 그런 찬사를 할 줄 아는 김주원이 매력적으로 보인다면 당신 안의 아프로디테가 김주원에게 점수를 준 것입니다. 아프로디테의 그런 활력을 잘 이용하면 생이 탄력을 받으며 환해집니다.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지 않는 자를 그저 무시하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아름다움 모독죄로 질투하고 보복합니다.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을 무시하는 자, 폭풍을 감당해야 합니다. 맹렬한 분노와 분노의 파괴를 감당해야 합니다.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넘어가시겠습니까?
아프로디테는 원시적인 여성성의 상징입니다. 우리 속에는 사랑받고 찬사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본능이 숨 쉬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공부를 많이 하고 준법정신이 강하고 정직이 최상의 시민의 자질이라고 믿는 현대여성들은 아프로디테적인 기질을 부끄러워해서 외면합니다. 그러나 외면한다고 그 기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이나 연인이 딴 여자에게 눈길을 줄 때 ‘나’도 놀랄 정도로 맹렬하게 질타해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네가 뭔데 딴 짓이냐고! 그것이 내 안의 아프로디테가 하는 짓입니다. 그렇게 아프로디테는 원시적인 여성성의 상징입니다.
원시적인 여성성은 그 자체로는 나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에너지입니다. 그 에너지가 창조적인 에너지가 되기 위해서는 원시성이 의식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원시성이 의식으로 발전한 것이 또 하나의 다른 거울, 그것이 누이의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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