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민용·사진 김영민 기자 vista@kyunghyang.com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ㅣ경향신문
지금 대한민국엔 ‘총성 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바로 커피전쟁이다. 100원짜리 커피믹스에서부터 한 잔에 4만원이 넘는 코피루왁(사향고양이 배설물에서 나온 원두로 만든 커피)까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곳곳에는 스타벅스, 커피빈, 할리스, 엔제리너스, 파스쿠찌 등 대형 커피전문점 체인에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점, 중소형 커피전문점과 직접 커피를 볶아 내려주는 로스터리카페까지 성업 중이다. 오피스 상권의 커피전문점들은 가격 할인, 무료쿠폰 발행 등의 ‘당근’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쿠폰도 예전에 10잔 마시면 1잔을 공짜로 주던 ‘10+1’이 대세였다면 이젠 9+1, 8+1에 이어 3+1이 등장했다. 심지어 카페라테 이상의 비싼 커피 1잔을 사면 아메리카노 1잔을 끼워주는 ‘1+1’도 나왔다.
인스턴트커피와 커피음료의 인기 역시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전국 이마트에서 라면과 쌀을 제치고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은 커피믹스였다. 길거리 편의점 사정도 다르지 않다. 편의점 GS25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것이 바로 커피였다. 자연히 한국인들의 커피 소비량도 엄청나다. 국제자원연구소(WRI)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커피 소비량은 1975년 0.1㎏에서 2007년 1.8㎏으로 18배 늘었고 이 수치는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100여년 전만 해도 ‘양탕’이라 환영받지 못하던 검은 음료가 어느새 한국인의 입맛을 점령했다. 대한민국은 어쩌다 ‘커피 공화국’이 되어버린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커피가 대중에 퍼지게 된 계기는 한국전쟁이다. 미군 식량에 들어있던 인스턴트커피의 맛을 일반인들도 알게 됐고 미군 매점(PX)에서 불법으로 흘러나온 인스턴트커피가 시장에 유통되면서 사람들은 ‘물건너온 미제 음료’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대중의 커피 수요를 확인하면서 1970년 동서식품이 국내 최초로 인스턴트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어 76년 세계 최초로 동서식품이 개발·생산한 커피믹스는 ‘커피 전성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야외용으로 개발된 커피믹스는 편리함과 경제성을 무기로 사무실과 공장, 가정까지 파고들었다. 78년 개발·보급된 커피자판기도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커피믹스가 히트하면서 한국인에게 커피는 진하고 달달한 맛으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이는 원두커피 전문점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치열한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지금도 유효하다. 약 2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커피시장에서 커피믹스 매출액은 9758억원(2009년 기준)으로 1위다. 동서식품의 경우 커피믹스 매출액은 97년 178억원에서 2009년 8000여억원으로 40배 이상 성장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커피에 노출돼 있다. 커피 자판기 없는 지하철역이나 빌딩을 본 적 있는가. 사무실이나 공장에도 냉온 정수기 옆에는 친절하게 커피믹스와 종이컵이 비치되어 있다. 식당에서 후식으로 커피를 내놓지 않았다가는 야박하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다. 들판에서 일하는 60~70대 촌로들도 새참으로 인스턴트 믹스커피를 찾는다. 산업혁명 시대 노동자들의 피로감을 잊게 하고 열량공급원으로 기능하던 설탕의 역할을, 한국에서는 달달한 커피믹스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데 이 같은 커피믹스의 급격한 성장에는 쓰라린 현대사의 주요 국면이 반영돼 있다. 업계에서는 커피믹스가 전국민의 입맛을 길들인 계기를 외환위기로 본다. 인력 감축 등으로 인해 스스로 커피를 타 마시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간편한 커피믹스가 대중화됐다는 것이다. 냉온 정수기가 보급되고 양성평등의식이 신장하면서 ‘커피 타는 여직원’이 줄어든 것도 커피믹스의 보급에 일조했다.
커피믹스가 이처럼 ‘실용적’인 이유로 국민들의 입맛을 점령했다면, 그 대칭점에선 ‘문화적 차별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커피문화가 등장했다. ‘바리스타’들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99년 국내에 진출한 스타벅스는 국내 커피문화와 카페문화를 바꿔놓았다. 설탕맛이 강한 커피믹스, 혹은 커피메이커로 내린 묽은 향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은 비로소 에스프레소, 핸드드립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추출한 커피의 맛을 알게 됐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카페를 여는 것은 직장인들의 꿈이 되고 <커피 프린스 1호점> 같은 드라마도 등장했다. 홍대 앞·상수동 일대에는 골목마다 1주일에 한 곳 꼴로 카페가 생겨나고, 커피관련 서적과 카페 탐험기 등이 책으로 나왔다. 나만의 커피 맛에 빠진 이들은 각종 커피추출기구를 사다 직접 내려마시고 다양한 생두를 구해다가 로스팅을 한다.
커피전문점의 매출액도 가파르게 성장했다. 지난해 스타벅스, 커피빈, 할리스, 엔제리너스 등 상위 4개 커피전문점의 매출액은 약 5000억원에 이른다. 패스트푸드점과 소규모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개인이 운영하는 로스터리카페까지 포함하면 커피전문점 시장 규모는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성장은 ‘이미지’의 승리이기도 하다. 시원한 통유리창에 깔끔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커피전문점, 아기자기하고 개성 강한 소형 카페들은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한껏 과시했다. 몇 해 전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군 ‘된장녀’ 논쟁은 이 같은 이미지 소비를 바라보는 시선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20~30대 여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커피전문점은 이제 성별과 연령에 관계없이 만남의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요즘에는 카페를 사무실로 삼는 코피스(coffice)족까지 출현했다.
최근 커피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은 인스턴트커피와 원두커피의 공생이다. 캔커피 ‘레쓰비’에 이어 원두커피음료 ‘칸타타’로 커피음료계의 강자로 군림한 롯데칠성은 얼마전 국내에 원두로스팅공장을 설립했다. 동서식품은 값싼 로부스타종으로 만들던 인스턴트커피 대신 고급 아라비카종으로 만든 ‘맥심 아라비카’ 커피믹스를 내놓았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는 아라비카 원두로 만든 고급 믹스커피 ‘비아(VIA)’를 올 가을 국내에서 출시한다. 커피빈도 올 초 인삼을 섞은 커피믹스를 내놓았다. 개당 1000원을 호가하는데도 모두 팔려나갈 만큼 인기를 끌었다. 달달한 커피음료를 내놓던 식품음료업계에서는 인스턴트커피에 고급커피의 맛을 구현하려 하는 반면 커피전문점들은 믹스의 간편함을 껴안고 있다.
커피는 이슬람 수도자의 수행을 돕기 위해 처음 음용됐다고 한다. 그런 만큼 명상과 관조의 성격을 띤 음료였다. 그러나 이 땅에서 커피는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음료로 변했다. 한 박자 쉬어가는 시간이어야 할 ‘커피 브레이크’조차 빠르고 간편하게 즐기려는 한국인의 성정이 커피믹스를 히트상품으로 만들었고, 남과 다르고자 하는 ‘차별성’에 대한 추구는 커피전문점의 급성장을 이뤄냈다. 독특한 ‘커피 공화국’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인스턴트커피와 커피음료의 인기 역시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전국 이마트에서 라면과 쌀을 제치고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은 커피믹스였다. 길거리 편의점 사정도 다르지 않다. 편의점 GS25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것이 바로 커피였다. 자연히 한국인들의 커피 소비량도 엄청나다. 국제자원연구소(WRI)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커피 소비량은 1975년 0.1㎏에서 2007년 1.8㎏으로 18배 늘었고 이 수치는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100여년 전만 해도 ‘양탕’이라 환영받지 못하던 검은 음료가 어느새 한국인의 입맛을 점령했다. 대한민국은 어쩌다 ‘커피 공화국’이 되어버린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커피가 대중에 퍼지게 된 계기는 한국전쟁이다. 미군 식량에 들어있던 인스턴트커피의 맛을 일반인들도 알게 됐고 미군 매점(PX)에서 불법으로 흘러나온 인스턴트커피가 시장에 유통되면서 사람들은 ‘물건너온 미제 음료’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대중의 커피 수요를 확인하면서 1970년 동서식품이 국내 최초로 인스턴트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어 76년 세계 최초로 동서식품이 개발·생산한 커피믹스는 ‘커피 전성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야외용으로 개발된 커피믹스는 편리함과 경제성을 무기로 사무실과 공장, 가정까지 파고들었다. 78년 개발·보급된 커피자판기도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커피믹스가 히트하면서 한국인에게 커피는 진하고 달달한 맛으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이는 원두커피 전문점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치열한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지금도 유효하다. 약 2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커피시장에서 커피믹스 매출액은 9758억원(2009년 기준)으로 1위다. 동서식품의 경우 커피믹스 매출액은 97년 178억원에서 2009년 8000여억원으로 40배 이상 성장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커피에 노출돼 있다. 커피 자판기 없는 지하철역이나 빌딩을 본 적 있는가. 사무실이나 공장에도 냉온 정수기 옆에는 친절하게 커피믹스와 종이컵이 비치되어 있다. 식당에서 후식으로 커피를 내놓지 않았다가는 야박하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다. 들판에서 일하는 60~70대 촌로들도 새참으로 인스턴트 믹스커피를 찾는다. 산업혁명 시대 노동자들의 피로감을 잊게 하고 열량공급원으로 기능하던 설탕의 역할을, 한국에서는 달달한 커피믹스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데 이 같은 커피믹스의 급격한 성장에는 쓰라린 현대사의 주요 국면이 반영돼 있다. 업계에서는 커피믹스가 전국민의 입맛을 길들인 계기를 외환위기로 본다. 인력 감축 등으로 인해 스스로 커피를 타 마시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간편한 커피믹스가 대중화됐다는 것이다. 냉온 정수기가 보급되고 양성평등의식이 신장하면서 ‘커피 타는 여직원’이 줄어든 것도 커피믹스의 보급에 일조했다.
커피믹스가 이처럼 ‘실용적’인 이유로 국민들의 입맛을 점령했다면, 그 대칭점에선 ‘문화적 차별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커피문화가 등장했다. ‘바리스타’들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99년 국내에 진출한 스타벅스는 국내 커피문화와 카페문화를 바꿔놓았다. 설탕맛이 강한 커피믹스, 혹은 커피메이커로 내린 묽은 향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은 비로소 에스프레소, 핸드드립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추출한 커피의 맛을 알게 됐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카페를 여는 것은 직장인들의 꿈이 되고 <커피 프린스 1호점> 같은 드라마도 등장했다. 홍대 앞·상수동 일대에는 골목마다 1주일에 한 곳 꼴로 카페가 생겨나고, 커피관련 서적과 카페 탐험기 등이 책으로 나왔다. 나만의 커피 맛에 빠진 이들은 각종 커피추출기구를 사다 직접 내려마시고 다양한 생두를 구해다가 로스팅을 한다.
커피전문점의 매출액도 가파르게 성장했다. 지난해 스타벅스, 커피빈, 할리스, 엔제리너스 등 상위 4개 커피전문점의 매출액은 약 5000억원에 이른다. 패스트푸드점과 소규모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개인이 운영하는 로스터리카페까지 포함하면 커피전문점 시장 규모는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성장은 ‘이미지’의 승리이기도 하다. 시원한 통유리창에 깔끔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커피전문점, 아기자기하고 개성 강한 소형 카페들은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한껏 과시했다. 몇 해 전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군 ‘된장녀’ 논쟁은 이 같은 이미지 소비를 바라보는 시선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20~30대 여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커피전문점은 이제 성별과 연령에 관계없이 만남의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요즘에는 카페를 사무실로 삼는 코피스(coffice)족까지 출현했다.
최근 커피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은 인스턴트커피와 원두커피의 공생이다. 캔커피 ‘레쓰비’에 이어 원두커피음료 ‘칸타타’로 커피음료계의 강자로 군림한 롯데칠성은 얼마전 국내에 원두로스팅공장을 설립했다. 동서식품은 값싼 로부스타종으로 만들던 인스턴트커피 대신 고급 아라비카종으로 만든 ‘맥심 아라비카’ 커피믹스를 내놓았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는 아라비카 원두로 만든 고급 믹스커피 ‘비아(VIA)’를 올 가을 국내에서 출시한다. 커피빈도 올 초 인삼을 섞은 커피믹스를 내놓았다. 개당 1000원을 호가하는데도 모두 팔려나갈 만큼 인기를 끌었다. 달달한 커피음료를 내놓던 식품음료업계에서는 인스턴트커피에 고급커피의 맛을 구현하려 하는 반면 커피전문점들은 믹스의 간편함을 껴안고 있다.
커피는 이슬람 수도자의 수행을 돕기 위해 처음 음용됐다고 한다. 그런 만큼 명상과 관조의 성격을 띤 음료였다. 그러나 이 땅에서 커피는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음료로 변했다. 한 박자 쉬어가는 시간이어야 할 ‘커피 브레이크’조차 빠르고 간편하게 즐기려는 한국인의 성정이 커피믹스를 히트상품으로 만들었고, 남과 다르고자 하는 ‘차별성’에 대한 추구는 커피전문점의 급성장을 이뤄냈다. 독특한 ‘커피 공화국’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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