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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세로 들어가는 포도밭 사잇길… 와인 향이 흐른다

생테밀리옹(프랑스) | 최병준 기자경향신문

ㆍ역사와 와인의 고장 프랑스 보르도 지역 생테밀리옹

이번 여행지는 프랑스의 보르도다. 만약 와인 고수라면 메독의 샤토 마고나 샤토 무통로칠드, 생테밀리옹의 샤토 슈발블랑, 소테른의 샤토 디켐, 포므롤의 샤토 페트뤼스를 떠올릴 것이다. 위에 언급된 샤토의 와인 한 병은 최고급이 아니라도 빈티지만 좋으면 수백유로를 호가한다. 샤토 마고는 와인 경매를 통해 마을 안 중세시대 교회 리노베이션 경비를 마련했다니 그저 입이 떡 벌어질 뿐이다. “난 와인 몰라, 중저가 와인이나 맛보면서 여행이나 즐기면 안돼?”라고 생각하는 여행자에게도 보르도가 괜찮다. 아름다운 고성 마을도 있다. 지금은 와인에 대해 몰라도 거기 가면 자연스럽게 와인이 궁금해진다.



일단 보르도까지 가는데 와인 상식은 하나만 알아두고 떠나자. 샤토는 원래는 성(城)이란 뜻인데 요즘은 와이너리를 그렇게 부른다. 보르도 시에서 한 시간 거리에 지롱드 강이 있는데 이 양쪽이 와인 산지다. 크게 나누면 강 서쪽이 메독, 강 동쪽이 생테밀리옹이다. 그럼 보르도는? 가론강을 끼고 있는 보르도 시는 200년 전만 해도 런던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도시였다. 현재는 프랑스 제2도시다. 보르도 주변 와인들이 보르도를 통해 팔리면서 보르도 하면 “와인!”이 된 거다.

보르도 주변엔 어딜 가나 아름답지만 와인도 좋고, 역사도 있고, 사진 찍기도 좋은 여행지로는 생테밀리옹이 제일 낫다. 중세의 모습이 남아 있는 생테밀리옹은 1999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가이드 브루노는 하루 전부터 “사진찍을 준비 단단히 해라”고 뜸을 들였다. 도시는 작다. 한나절이면 둘러본다. 골목마다 와인가게가 있고 들판은 포도밭이다. 고개를 들면 성탑과 교회가 보인다.

이 골목, 저 골목 한 번씩 휘감으면서 산책하는 기분도 괜찮다. 여기서 꼭 봐야 할 것은 지하교회다. 왜냐하면 생테밀리옹이란 도시 이름 자체도 바로 교회와 연관이 있다. 생테밀리옹은 성(聖) 에밀리옹이란 뜻이다. 에밀리옹은 8세기 부르고뉴에 살았고 샤토에서 일했던 농부란다. 마음씨가 고와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삯으로 받은 빵을 나눠줬다. 그의 선행은 금세 알려졌고, 750년 생테밀리옹으로 옮겨와 동굴에 은거하며 17년을 살다 죽었고 성자로 추앙받았다.

생테밀리옹 성당 종탑에서 내려다본 시가지.


지하교회는 그가 묻혔던 자리다. 거대한 암반을 파서교회를 만들었는데 천장 높이가 12m나 된다. 야고보의 유해가 있다는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목에 있는 생테밀리옹은 중세 순례길 중 하나였다. 순례자는 오가는 길에 성자 에밀리옹의 유해를 보고 참배했다. 산티아고까지 못 가는 사람들은 에밀리옹의 유해만 보고 돌아가기도 했단다. 교회 안에는 벽 옆에 구멍을 뚫어 관을 놓았던 흔적이 있다.

여기서 정강이뼈가 하나 보였다. 실감나게 보이려고 가짜 뼈를 놓았을까? 가이드는 “진짜”라고 했다. 그럼 이게 성자의 유골? “에밀리옹의 유골은 100년 전쟁 때 영국인들이 훔쳐다 버렸을 거예요. 그들은 신교도들이니까!” 하지만 이 말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100년 전쟁은 1337년 시작된다. 루터가 95개조에 달하는 반박문을 붙인 것은 1517년이니 앞뒤가 맞지 않다.

어쨌든 생테밀리옹은 100년 전쟁과 인연도 있다. 스토리는 이렇다. 12세기 이 지역의 영주인 공작의 딸이 영국왕에게 시집갔는데 관례에 따라 지참금으로 자신의 영지인 생테밀리옹을 줬다. 이때부터 영국왕 소유가 된다. 영국왕이 직접 다스리기는 힘드니까 이 지역 포도주 우선 구매권을 갖는다. 당시엔 이런저런 왕가의 결혼이 많았고, 이로 인해 13세기 말 프랑스 영토의 절반가량이 영국땅이 됐다. 영국왕은 이 참에 프랑스까지 손에 넣어버릴까 욕심을 내다 프랑스를 전격 침공한다. 영국군에 밀리던 프랑스군은 잔다르크에 힘입어 결국 승리를 거뒀다. 잔다르크는 영국군에 잡혀 화형당했지만 프랑스 민중을 한데 뭉치게 한 원동력이 됐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투가 바로 1452년 보르도 전투였다.

샤토 망고에서의 와인 테이스팅.

종탑에 올라가면 생테밀리옹 도시를 감싸고 있는 포도밭을 볼 수 있다. 포도밭은 광활하다. 포도밭을 보고 있다 보면 여기까지 왔는데 와인 한 잔 하고 가야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5004㏊에서 800개의 샤토가 제각각 다른 와인을 생산한단다. 와인 테이스팅 클래스도 있고, 샤토도 방문해볼 수 있다.

와인 클래스에선 영어로 2시간 정도 보르도 와인의 족보를 설명해준다. 서쪽 메독지역은 토양이 석회암과 자갈이 많아 드라이한 와인인 카버네 소비뇽을 주로 키우고 동쪽은 진흙 성분이 있어 과일향이 풍부한 메를롯 품종이 더 많다. 와인 향을 맡는 방법도 교육과정에 들어 있다.

생테밀리옹이나 메독에선 레드와인을 마셔야 한다. 생테밀리옹에서는 화이트와인이나 로제와인은 AOC등급을 못받는다. 이 말은 화이트나 로제는 생테밀리옹 와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화이트 와인을 시키면 전라도에서 경상도 음식을 찾는 격이다.

그럼 어떤 와인을 골라야 할까? 1952년부터 3대가 와인을 만들고 있는 샤토 망고를 찾았을 때 주인 얀 도데치니는 “와인 블렌딩을 할 때 첫번째 느낌으로 선택을 한다”며 “향이나 맛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와인을 고르라”고 했다. 말뜻은 애매모호하지만 3~4개 와인을 테이스팅해보면 어떤 와인이 자신의 취향인지 금세 안다. 입이란 희한해서 비교해서 마셔보면 초보자도 좋은 와인을 고르게 된다. 중세 도시에서 좋은 와인 한 잔? 이런 게 생테밀리옹의 재미다.

도심 속에 있는 식당.

■ 여행길잡이

*파리~보르도 구간은 에어프랑스(www.airfrance.co.kr)로 이동하거나 테제베로 갈 수 있다. 항공편은 1시간 정도, 기차(www.raileurope-korea.com)로는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생테밀리옹이나 샤토 마고는 보르도에서 현지 여행사를 통해 투어신청을 하면 갈 수 있다. 생테밀리옹 와인 테이스팅 스쿨(www.vignobleschateaux.fr), 샤토 마고(www.chateau-

margaux.com)는 와인 테이스팅을 하려면 최소 3개월 전에 예약해야 한다. 보르도 관광청(www.bordeaux-tourism.com) 보르도 오페라하우스(테아트르) 앞 광장 건너편에 있는

리전트 그랜드 호텔(www.theregentbordeaux.com)은 5성급으로 백작의 집을 개조해 만들었다.이 호텔 내에 있는 식당은 미슐랭 별점 1개를 받은 식당. 바닷가재 머리와 꼬리즙을 내서 소스를 만들고

캐비어를 곁들인 정찬이 압권이다.*생테밀리옹에 있는 위트리에피 식당(www.ihuuitrier-pie.net)도 잘한다. 아키텐 지방 관광청(www.tourisme-aquitaine.fr), 프랑스 관광청(kr.francegui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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