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ㅣ경향신문
ㆍ11일 개봉 인 디 에어
이 남자의 삶에는 뿌리가 없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공중에서’란 뜻의 <인 디 에어>(원제 Up in the air)다.
뿌리 없는 삶을 사는 이 남자는 타인의 삶의 뿌리를 마지막으로 잘라내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 ‘직업 전환 카운슬러’가 공식명칭이지만, 사실 부하 직원의 얼굴을 보며 “넌 해고야”라고 말하길 꺼리는 보스를 대신해 해고를 통지하는 직업이다. 어려워 보이는 일이지만, 이 남자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프로다. 상대방을 절망으로 밀어넣되, 최대한 품위를 갖춘다.
남자는 1년에 300일 이상 미국 전역을 여행한다. 집이란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 가족은 전화로만 연결되는 존재다. 속 깊은 친구 대신 비행기 옆자리 승객과의 부담 없는 대화를 즐긴다. 12살 때 할머니가 홀로 양로원에 들어가는 걸 본 뒤 ‘사람은 혼자 죽는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텁텁한 기내 공기와 싸구려 기내식이 오히려 편안하다는 이 남자, 백 팩 하나에 들어갈 짐, 최소한의 대인관계만을 유지하는 이 남자가 유일하게 집착하는 건 비행기 마일리지다. 항공사 역사상 7번째로 1000만 마일리지를 모아 플래티넘 카드를 얻는 것이 남자의 당면 목표다.
다행히 목표가 눈 앞에 보이지만, 몇 가지 관문이 남아있다. 온라인 화상 해고 시스템을 개발한 신참내기(안나 켄트릭)가 나타나고, 결혼을 앞둔 여동생은 번거로운 선물을 부탁한다. 비슷한 삶의 태도와 방식을 가진 알렉스(베라 파미가)가 빙햄의 위로가 된다.
조지 클루니는 열연하지 않는다. 크게 웃거나 울지 않으며, 동작도 작다. 한국 연기파들의 ‘열연’에 익숙하다면, 꽤 무성의하게 보일 수도 있는 연기다. 하지만 그게 클루니의 매력이고, 이 영화에 어울린다. 차분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이성적이지만 차갑지 않다. 뿌리 뽑힌 삶, 목적지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현대인을 대표하는 빙햄이 스크린을 벗어나 살아 숨쉬는 게 느껴진다면, 클루니의 공이 크다.
빙햄은 삶의 무의미, 절연을 태생적으로 잘 견디지만, 남들도 그럴까. 빙햄이 만나는 이들, 즉 해고 대상자들은 천의 얼굴을 보인다. “내겐 자식이 있어요!”라는 하소연부터, “당신 그러고도 밤에 잠이 와?”라는 협박형까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해고 대상자들 대부분은 출연을 자청한 일반인이라고 한다.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은 촬영 당시 취업난이 극심했던 디트로이트와 세인트 루이스 지역에 구인광고를 냈고, 평범한 사람들은 생전 처음 보는 카메라 앞에서 해고 당시의 심정을 토로했다.
불황의 시대를 건너는 오늘 미국의 모습이 다큐멘터리처럼 담겼다. 대공황기를 다룬 영화를 제외한다면, 이렇게 많은 실직자가 등장한 할리우드 영화는 찾기 어려울 듯하다. 불황, 실직, 해고 등의 어휘가 낯설지 않은 한국에 사는 어떤 이들은 <인 디 에어>를 ‘치유 영화’(힐링 무비)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빙햄에게 남들이 생각하는 행복을 억지로 주입하지 않는 결말도 달콤 쌉싸래하다. 지구 인구 60억명이 그리는 행복은 60억개다.
<주노>로 호평받은 제이슨 라이트먼은 <인 디 에어>를 통해 전작의 성공이 우연이 아님을 입증했다. 그의 아버지이자 <고스트 버스터즈> 시리즈의 흥행 감독 아이반 라이트만이 제작자로 나섰다. <인 디 에어>는 최근 열린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덕분에 아카데미 특수를 기대하고 개봉일(11일)을 잡은 수입사가 당황하게 생겼다.
하지만 수상여부에 상관없이 <인 디 에어>는 볼 만한 가치가 있다. 현대인은 정주할 곳이 없으며, 불황을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이 남자의 삶에는 뿌리가 없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공중에서’란 뜻의 <인 디 에어>(원제 Up in the air)다.
뿌리 없는 삶을 사는 이 남자는 타인의 삶의 뿌리를 마지막으로 잘라내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 ‘직업 전환 카운슬러’가 공식명칭이지만, 사실 부하 직원의 얼굴을 보며 “넌 해고야”라고 말하길 꺼리는 보스를 대신해 해고를 통지하는 직업이다. 어려워 보이는 일이지만, 이 남자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프로다. 상대방을 절망으로 밀어넣되, 최대한 품위를 갖춘다.
남자는 1년에 300일 이상 미국 전역을 여행한다. 집이란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 가족은 전화로만 연결되는 존재다. 속 깊은 친구 대신 비행기 옆자리 승객과의 부담 없는 대화를 즐긴다. 12살 때 할머니가 홀로 양로원에 들어가는 걸 본 뒤 ‘사람은 혼자 죽는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텁텁한 기내 공기와 싸구려 기내식이 오히려 편안하다는 이 남자, 백 팩 하나에 들어갈 짐, 최소한의 대인관계만을 유지하는 이 남자가 유일하게 집착하는 건 비행기 마일리지다. 항공사 역사상 7번째로 1000만 마일리지를 모아 플래티넘 카드를 얻는 것이 남자의 당면 목표다.
다행히 목표가 눈 앞에 보이지만, 몇 가지 관문이 남아있다. 온라인 화상 해고 시스템을 개발한 신참내기(안나 켄트릭)가 나타나고, 결혼을 앞둔 여동생은 번거로운 선물을 부탁한다. 비슷한 삶의 태도와 방식을 가진 알렉스(베라 파미가)가 빙햄의 위로가 된다.
조지 클루니는 열연하지 않는다. 크게 웃거나 울지 않으며, 동작도 작다. 한국 연기파들의 ‘열연’에 익숙하다면, 꽤 무성의하게 보일 수도 있는 연기다. 하지만 그게 클루니의 매력이고, 이 영화에 어울린다. 차분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이성적이지만 차갑지 않다. 뿌리 뽑힌 삶, 목적지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현대인을 대표하는 빙햄이 스크린을 벗어나 살아 숨쉬는 게 느껴진다면, 클루니의 공이 크다.
빙햄은 삶의 무의미, 절연을 태생적으로 잘 견디지만, 남들도 그럴까. 빙햄이 만나는 이들, 즉 해고 대상자들은 천의 얼굴을 보인다. “내겐 자식이 있어요!”라는 하소연부터, “당신 그러고도 밤에 잠이 와?”라는 협박형까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해고 대상자들 대부분은 출연을 자청한 일반인이라고 한다.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은 촬영 당시 취업난이 극심했던 디트로이트와 세인트 루이스 지역에 구인광고를 냈고, 평범한 사람들은 생전 처음 보는 카메라 앞에서 해고 당시의 심정을 토로했다.
불황의 시대를 건너는 오늘 미국의 모습이 다큐멘터리처럼 담겼다. 대공황기를 다룬 영화를 제외한다면, 이렇게 많은 실직자가 등장한 할리우드 영화는 찾기 어려울 듯하다. 불황, 실직, 해고 등의 어휘가 낯설지 않은 한국에 사는 어떤 이들은 <인 디 에어>를 ‘치유 영화’(힐링 무비)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빙햄에게 남들이 생각하는 행복을 억지로 주입하지 않는 결말도 달콤 쌉싸래하다. 지구 인구 60억명이 그리는 행복은 60억개다.
<주노>로 호평받은 제이슨 라이트먼은 <인 디 에어>를 통해 전작의 성공이 우연이 아님을 입증했다. 그의 아버지이자 <고스트 버스터즈> 시리즈의 흥행 감독 아이반 라이트만이 제작자로 나섰다. <인 디 에어>는 최근 열린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덕분에 아카데미 특수를 기대하고 개봉일(11일)을 잡은 수입사가 당황하게 생겼다.
하지만 수상여부에 상관없이 <인 디 에어>는 볼 만한 가치가 있다. 현대인은 정주할 곳이 없으며, 불황을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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