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준 | 시인
춥다. 올겨울에 들어서 가장 추운 날씨가 계속되는 것 같다. 밤에는 수도꼭지가 얼지 않도록 조금씩 물을 틀어놓았는데 이 며칠은 낮에도 틀어놓고 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며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장작불을 지피며 따뜻한 아랫목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데 노숙자들은 어찌 견디고 있을까.
해고된 노동자들은, 강제 철거민들은, 제주도 강정마을은 밤새 무사할까. 힘없이 끌려간 사람들은, 감방에서 고생하는 시인 송경동은 목 디스크로 고생을 하고 있다는데, 부서진 뼈를 붙이기 위해 오른쪽 발뒤꿈치에 14개나 박아놓은 금속 핀도 제거해야 한다는데 걱정이 앞선다.
1월 초에 부산에 갔었다. 김수우 시인이 하는 백년어서원에서 강좌가 있었는데 조금 일찍 집에서 나섰다. 수감된 송경동 시인을 면회하기 위해서였다. 12시가 되기도 전에 구치소에 가서 면회를 신청하는데 누가 벌써 면회를 하고 갔단다. 하루에 한 번밖에 면회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사람 면회 많이 온다고 한다. 비록 면회를 못하기는 했지만 구치소 직원의 말을 듣고 조금 위안이 되기는 했다. 구치소 문을 열고 나와 저만큼 그를 가두어 놓은 한 평도 되지 않는 0.94평 독방을 눈짐작해본다. 늙은 벚나무가 있었고 은행나무가 살고 있는 풍경을 올려다본다. 연둣빛 새싹 은행잎이 손짓하기 전에는 나오겠지. 벚꽃이 꽃비를 뿌리며 봄바람을 부르기 전에 그의 당당한 두 발로 걸어 나올 것이야.
언젠가 내게 따지듯이 목소리를 높이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산속에서 사니 편하냐고, 그렇게 세상의 부조리를 외면하고 혼자 고고하게 살면 다냐고 악을 쓰며 대들던 그의 핏발선 두 눈을 기억한다. 나는 그때 뭐라고 대답했던가. 미안하다고 했던가. 아니면 나도 한때는 변혁을 꿈꾸며 실천한 현장운동가였다는 궁색한 변명을 했던가.
며칠 후 전화가 왔었지. 형 미안해 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래 언제 술 한잔하자 그랬는데. 그동안 용산으로, 기륭전자로, 희망버스로 온몸으로 뛰어다니며 온몸의 시를 쓰고 그 아픈 몸으로 말이야.
춥다. 비로소 겨울이 온몸에 전해온다. 춥기는 하지만 햇볕이 나와서 빨래를 했는데 널어놓은 빨래들이 꽁꽁 얼어서 딱딱해졌다. 강원도 어디였던가. 황태가 만들어지는 덕장, 얼었다 녹았다 명태들이 덕장에서 부풀어 오르기를 거듭하며 속살이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데 찬바람이 머릿속을 뚫는다. 아프도록 이런 명징한 감각이 살아 있는 겨울을 다시 맞이했다는 것, 고마워해야겠지. 해가 뉘엿거린다. 언 빨래가 말랐다. 흠흠 냄새를 맡아본다. 고실고실 겨울 햇볕냄새가 난다. 나도 부드러워질 것인가.
부드럽다는 것, 세상을 향한 눈과 마음과 손길이 따뜻해진다는 것이겠지. 조금씩 그 길로 향하는 한걸음의 발길을 내딛는 일이겠지.
해고된 노동자들은, 강제 철거민들은, 제주도 강정마을은 밤새 무사할까. 힘없이 끌려간 사람들은, 감방에서 고생하는 시인 송경동은 목 디스크로 고생을 하고 있다는데, 부서진 뼈를 붙이기 위해 오른쪽 발뒤꿈치에 14개나 박아놓은 금속 핀도 제거해야 한다는데 걱정이 앞선다.
나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얻은 목 디스크로 몇 년을 고생했었다. 실족으로 떨어져 갈비뼈가 6개 부러진 경험이 있어서 몸의 고통이 정신을 얼마나 옥죄는 것인지 알고 있다. 얼마 전 한국작가회의 회원작가들이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건설 반대를 위해 1번 국도를 따라 임진각에서 목포까지 걸었고 강정마을까지 갔던 일이 있다. 전라북도 정읍구간에 참여하며 걷다가 길가에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메타세쿼이아들을 보며 한동안 걸음을 멈췄다. 그 나무들은 굵은 몸통과 가지가 다 잘렸는데도 수많은 잔가지들을 내뻗고 있었다. 전깃줄 때문에 잘랐으리라. 내가 나에게 물었다. 저렇게 몸통이 잘리고 가지가 다 잘려도 나무는 삶이 다하는 날까지 멈추지 않는다. 가지가지 푸른 꿈을 꾸고 있는 저 부동심,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고.
1월 초에 부산에 갔었다. 김수우 시인이 하는 백년어서원에서 강좌가 있었는데 조금 일찍 집에서 나섰다. 수감된 송경동 시인을 면회하기 위해서였다. 12시가 되기도 전에 구치소에 가서 면회를 신청하는데 누가 벌써 면회를 하고 갔단다. 하루에 한 번밖에 면회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사람 면회 많이 온다고 한다. 비록 면회를 못하기는 했지만 구치소 직원의 말을 듣고 조금 위안이 되기는 했다. 구치소 문을 열고 나와 저만큼 그를 가두어 놓은 한 평도 되지 않는 0.94평 독방을 눈짐작해본다. 늙은 벚나무가 있었고 은행나무가 살고 있는 풍경을 올려다본다. 연둣빛 새싹 은행잎이 손짓하기 전에는 나오겠지. 벚꽃이 꽃비를 뿌리며 봄바람을 부르기 전에 그의 당당한 두 발로 걸어 나올 것이야.
언젠가 내게 따지듯이 목소리를 높이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산속에서 사니 편하냐고, 그렇게 세상의 부조리를 외면하고 혼자 고고하게 살면 다냐고 악을 쓰며 대들던 그의 핏발선 두 눈을 기억한다. 나는 그때 뭐라고 대답했던가. 미안하다고 했던가. 아니면 나도 한때는 변혁을 꿈꾸며 실천한 현장운동가였다는 궁색한 변명을 했던가.
며칠 후 전화가 왔었지. 형 미안해 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래 언제 술 한잔하자 그랬는데. 그동안 용산으로, 기륭전자로, 희망버스로 온몸으로 뛰어다니며 온몸의 시를 쓰고 그 아픈 몸으로 말이야.
춥다. 비로소 겨울이 온몸에 전해온다. 춥기는 하지만 햇볕이 나와서 빨래를 했는데 널어놓은 빨래들이 꽁꽁 얼어서 딱딱해졌다. 강원도 어디였던가. 황태가 만들어지는 덕장, 얼었다 녹았다 명태들이 덕장에서 부풀어 오르기를 거듭하며 속살이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데 찬바람이 머릿속을 뚫는다. 아프도록 이런 명징한 감각이 살아 있는 겨울을 다시 맞이했다는 것, 고마워해야겠지. 해가 뉘엿거린다. 언 빨래가 말랐다. 흠흠 냄새를 맡아본다. 고실고실 겨울 햇볕냄새가 난다. 나도 부드러워질 것인가.
부드럽다는 것, 세상을 향한 눈과 마음과 손길이 따뜻해진다는 것이겠지. 조금씩 그 길로 향하는 한걸음의 발길을 내딛는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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