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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에 대하여

[낮은 목소리로]반FTA 촛불을 드는 이유

강광석 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강진에서 촛불집회를 여러 차례 진행했습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비준되기 전에도, 비준된 다음에도 했습니다. 촛불집회를 시작했을 때 우리가 걱정한 것은 날씨가 추워 몇 사람이나 올지, 혹시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오지나 않을 것인지가 아닙니다. 이 협정이 미국의 이익과 맞닿아있는 것이라는 사실 자체입니다.

어떤 이는 짐짓 평론가다운 분석으로 정부와 여당이 비준안을 무리하게 처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당내 혼란과 반대여론의 확산, 내년 총선과 대선 등 정치일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참여정부 시절, 지난 오천년 역사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람과 세력이 정권을 운영한다는 시절에도 미군기지는 평택으로 이전했고 이라크에 우리 군을 파병해야 했습니다. 세계 민중투쟁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광우병 쇠고기 반대시위도 결국 미국의 이익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도 지역민의 피맺힌 반대 호소에도 불구하고 소개전처럼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미국의 힘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에 민주주의 정권이 서는가, 독재정권이 서는가는 관심 밖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처럼 뼛속까지 친미정책을 추진하는 사람만이 선택받을 수 있습니다. 한·미 FTA의 독소조항, 농업부문 피해, 극단적인 양극화, 미국식 경제정책의 폐해 등은 어쩌면 사족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하기 시작한 이래 60년 동안 단 한 번도 되돌려진 적 없는 미국의 이익에 맞서 승리한 최초의 국민투쟁을 만들어보자.” 결국 협정은 비준되었고 앞으로 닥칠 국민의 고통은 또 우리가 감내해야 할 몫이지요. 우리는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이고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1980년 광주학살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가를 전 국민이 아는 데는 근 10년이 걸렸습니다.

151명의 사진이 경향신문에 실렸습니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상을 수상한 사람들이 아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입니다. 민의를 대변한다는 사람들이 민의를 대변해서 찬성했는지는 모릅니다. 대의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국민들이 직접 투표하고 결정할 수 없으니 대신 우리의 뜻을 반영해 국정을 책임지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짱짱한 반대여론이 있음에도 그들은 자랑스럽게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몇몇 농촌지역 국회의원의 얼굴도 보입니다. 그들도 농업부문 피해가 막심함을 인정하고 농민 대부분이 반대하고 있음을 압니다만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큰 틀로 국가적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엄하게 꾸짖을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자기 지역 유권자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은 것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우리를 배신하고 지역 유권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이 지역민의 의견을 밟아버리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선출된 권력을 통제할 방법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잘 뽑으랬잖아’ 하지만 지금의 결과를 통제할 수단을 제시하진 못합니다. 중요한 국가 정책 사안에 대해 지역민의 의견과 입장을 항시적으로 전달하고 더 나아가 국회의원의 결정행위를 통제할 유권자위원회를 운영하는 것이 한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

지역 유권자의 의견을 무시한 국회의원에게 4년 뒤에 보자고 다짐해도 그가 남은 임기 동안 망쳐버린 나라를 되돌릴 방법은 없습니다. 내년에 다시 전라도는 ‘그래도 민주당’으로, 경상도는 ‘우리가 남이가 한나라당’으로 앞뒤 없이 몰려가서는 나라의 미래가 없습니다.

비준안이 통과된 날 문자를 하나 받았습니다. ‘이 일을 어찌합니까’입니다.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저들이 국회문을 걸어 잠그고 저들만의 잔치로 통과시켰다면 다음 국회에서 우리가 국회문을 걸어 잠그고 협정 폐기법안을 상정해 처리해야 합니다. 다음 대선 때 한·미 FTA를 폐기하겠다는 정권을 세워 원천무효를 선언해야 합니다. 이 낙망한 상황에서 좌절하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저들이 진짜 바라는 것은 우리가 포기하고 좌절해서 절대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각인시키는 것입니다.

먹먹하고 막막하고 멍멍합니다만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시대의 중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얼마 전 읽은 소설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권력은 자신들의 정의를 위해 법을 만들고 백성은 자신들의 정의를 내려놓고 밥을 찾는다.’ 백성이 밥을 구걸하는 순간, 저들은 백성이 밥을 구걸할 법을 만들어 그것이 얼마나 우리를 위한 법인가를 선전할 것입니다. 우리가 법을 만들 권력을 갖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밥을 구걸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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