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엔터테인먼트부장
걸그룹 원더걸스의 신곡 뮤직비디오가 공개 하루 만에 유튜브 조회수 150만건을 돌파했다. 남성 아이돌그룹 2PM의 일본 공연티켓 10만장이 예매 1분 만에 매진됐다. 그룹 빅뱅은 ‘2011 MTV 유럽뮤직어워드’에서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을 물리치고 월드 와이드 액트상을 수상했다.
연일 들려오는 한류스타들의 뉴스는 한결같이 놀라운 소식뿐이다. 그 인기가 바람 만난 산불처럼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번져가고 있다.
연일 들려오는 한류스타들의 뉴스는 한결같이 놀라운 소식뿐이다. 그 인기가 바람 만난 산불처럼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번져가고 있다.
10여년 전인 1999년 초 기자는 일본 도쿄에 출장을 갔었다. 당시 한국에서 인기가 높던 걸그룹 S.E.S의 일본 진출을 위한 쇼케이스 취재차 간 거였다. 그때만 해도 일본에 알려진 한국가수는 조용필을 비롯해 현지에서 활동하던 김연자와 계은숙 정도.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프로듀서는 자신이 조련한 걸그룹을 앞세워 맨손으로 일본땅에 쳐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쇼케이스는 일본 젊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공항에 마중나온 광팬들도,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선 팬들도 없었다. 아직 소녀티가 가시지 않은 유진, 바다, 슈 등 세 멤버와 함께 도쿄 뒷골목 한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인터뷰했다. 이수만 프로듀서는 잠시도 쉬지 않고 도쿄의 레코드숍을 누비고, 일본 쇼비즈니스 관계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해댔다. 한마디로 그의 ‘열정’을 확인하고 돌아온 출장이었다. 이후 S.E.S는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달래면서 한·일 양국을 오가면서 활동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해체됐다. 그 당시 우리가 만든 댄스음악으로 이미 아이돌그룹 시장이 형성된 일본을 뚫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를 가졌던 게 사실이다.
그로부터 10여년 만에 K팝은 일본의 음악시장을 위협하는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수만 프로듀서 역시 보아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등을 성공적으로 일본시장에 안착시켰다. 이에 힘입어 이제 이름조차 거명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아이돌 그룹과 배우들이 일본시장을 휩쓸고 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아시아 각국은 물론 유럽까지 그 여세를 몰아가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계란으로 바위를 깬 것이다.
며칠 전 우연한 기회에 K팝 그룹들이 나오는 공연장에 갔다. 솔직한 심정은 두 시간 동안 그 공연을 보는 게 고문이었다. 이름만 바꿔 단 아바타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한 편의 SF영화를 본 느낌이랄까. 그룹들이 선보이는 ‘후크송’엔 노랫말이 실종됐으며, ‘퍼포먼스’ 또한 변별력이 없었다. 귀를 찢는 전자음을 들으면서 계란으로 바위를 깬 K팝의 진가나 감흥이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는지 발견할 수 없었다. 나이 탓인지도 몰랐다.
작금의 한국 가요시장은 한류의 성공에 취해 뭔가 기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신인 아이돌 그룹이 연습생을 거쳐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방송사들은 돈이 되는 한류 장사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일본 등지에서 방송사가 주최하는 한류콘서트를 경쟁적으로 마련하고, 가요순위 프로그램은 외국에 수출하기 위해 한류 아이돌 일색으로 꾸민다.
이러한 쏠림현상으로 한국 대중음악시장은 다양성이 실종됐다. 올해 유독 개성있는 신인가수를 찾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방 튀겨낸 팝콘처럼 풍성하지만 왠지 금세 질릴 것 같은 분위기다. 다행스럽게도 젊은 음악팬들 사이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나가수>나 <불후의 명곡>이 1970~80년대 노래들을 리메이크해 선보이고, <슈퍼스타 K>나 <위대한 탄생>에서는 기타를 메고 나온 젊은이들이 노래로 승부한다. 개점휴업 중이던 몇몇 중견가수들은 다시 자신들의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덕분인지 10대들이 기타에 관심을 보이고, 가창력이야말로 가수의 생명이라는 인식도 회복됐다.
사전적 의미의 노래는 ‘가사에 악곡을 붙인 형식으로 사상·감정 등을 표현하는 예술행위’다. 과연 사상과 감정이 배제된 퍼포먼스 위주의 콘텐츠만으로 한류를 이어갈 수 있을까. 아시아와 유럽, 미국에서 K팝을 주목하는 건 그네들이 갖고 있지 않은 폭발적인 에너지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에너지에 우리만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면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이제 소녀시대만으로는 안된다. 과거 비틀스와 에릭 클랩튼, 그룹 퀸이나 롤링스톤스 등 수많은 팝스타에 이 땅의 젊은이들이 열광한 건 그들의 퍼포먼스 때문은 아니었다. 우리도 이제 소녀시대나 빅뱅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만의 것을 만들어가야 한다.
노래는 씹다가 단물이 빠지면 버리는 추잉껌이 아니다. 당대를 사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그들과 함께 나이 들어갈 좋은 노래들이 있어야 한다. 이 땅의 중년들이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듣다가 문득 정동길을 걷고 싶은 충동을 느끼듯…. 노래에 ‘울림’을 허하자.
ⓒ 경향신문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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