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 시인
요즘 들판길을 걷다보면 사람도 없는데 라디오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새를 쫓으려고 논에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은 것이다. 농부들이 들판에 소리허수아비를 켜 놓은 것이다. 또 공갈대포 소리가 꽝! 하고 들려 놀라 걸음을 멈추게도 된다. 사람의 형상을 닮은 허수아비를 보고 있자면 사람 모양으로 만든 과자나 초콜릿이 떠올라 쓸쓸해지기도 한다. 길들은 어떻게 길을 갈까. 길은 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이나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를 빌려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게 아닐까. 길 중에는 이런 발들을 버리고 길이 아니었던 원시의 세계로 돌아가고 있는 길도 많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길의 발은 빗방울도 될 수 있고 방향 없이 난삽하게 부는 왜바람 한 소절도 될 수 있다. 길은 발이 많아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움직일 수 있는 것 같다.
길을 걸으며, 길이 가는 길을 대신 걸어주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막막함에서도 오고 쓸쓸함이나, 생기 있음에서도 온다. 길. 길이란 무엇일까. 길이 아닌 곳을 한 사람이 걸어가는 순간 그곳을 길이라 부를 수 있을까. 길을 내고 있다고는 볼 수 있으나 길을 걷고 있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길은 반드시 누군가를 앞에 둔다. 길은 뒤따름인 것이다. 그래서 길은 본래 겸손한 것 같다. 길의 속성이 그러하니 자연히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도 겸손해져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아닐까.
길을 걸으며, 길이 가는 길을 대신 걸어주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막막함에서도 오고 쓸쓸함이나, 생기 있음에서도 온다. 길. 길이란 무엇일까. 길이 아닌 곳을 한 사람이 걸어가는 순간 그곳을 길이라 부를 수 있을까. 길을 내고 있다고는 볼 수 있으나 길을 걷고 있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길은 반드시 누군가를 앞에 둔다. 길은 뒤따름인 것이다. 그래서 길은 본래 겸손한 것 같다. 길의 속성이 그러하니 자연히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도 겸손해져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아닐까.
강화도에는 나들길이란 걷기길이 있다. 나는 사단법인 나들길의 임원이 되어 난생처음 간부 직책을 맡았다. 비영리단체 사단법인 출범식 날 나는 축시를 쓰기도 했다. 강화나들길//길을 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길을 보려 하는 사람들/아, 길을 보려하다니/길을 보는 마음으로/길을 가려는 사람들/바퀴를 벗고/바퀴에서 내려/여기 모였다//가급적 중심을 버리고 외곽을 택해/자연이 외곽인 문명에서/자연이 중심이 되는 길/상처처럼 살아 있는 길/상처처럼 살아날 길/우리우리 심도심도(沁都心道)/강화나들길에 모였다.//길은 인류의 명줄임을/길은 한 문장으로 된 끝나지 않는 인류의 자서전임을/길은 인류의 노랫가락임을/알아,/기리려/머릿속의 숫자를 털고 찔레꽃 향 가득 집어넣을 사람들/마음줄로 그물코 짜며/여기 모였다/…/나들길에서/우리가 길의 평화를 배우고/우리가 길의 비영리를 배운다면/길은 기꺼이 현이 되어/길 위를 걷는 우리 생을 찬연히 연주해주리라./
시를 쓴 후 다시 나들길을 걸으며 내가 썼던 시가 참 수다스럽다는 생각이 왔다. 그냥 나들길 한발 한발이 미래의 천 편 만 편의 시인 걸 내 어찌 시 한 편으로 노래할 수 있겠는가라고 썼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도 되었다.
길 위에 서면 막스 피카르트가 <침묵의 세계>란 책에서 ‘침묵은 그 존재와 활동이 하나다’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나는 이 말을 자꾸 길에 적용시켜 보게 된다. -길은 그 존재와 활동이 하나다-라고. 길은 반드시 두 개의 기점을 연결하고 있다. 존재와 존재를, 장소와 장소를 연결해주는, 필히 연결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길의 운명 아닐까.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항상 두 기점 사이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는 길은, 존재 자체가 활동이라는 말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길은 세상에서 제일 큰 그릇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상 모든 것들이 길과 연결되어 있고, 다 길에 담겨 있는 것 같다. 길은 자신의 몸 밖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독특한 그릇이다. 여러 길 중 자연 담기 전용인 오솔길을 걷다보면 다른 길에 비해 유난히 겸손해진다. 이는 오솔길에 담겨 있는 자연이 우리를 순화시켜주고 껴안아주기 때문인 것 같다. 가급적 직선을 버리고 곡선을 택한 길, 담겨 있는 것들이 살아 수시로 변화하는 길이 오솔길인 것 같다. 오솔길은 지름길 버리고 에돌아 여정이 힘들기는 하지만 맘의 풍요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나는 이런 면에서 시를 생각의 오솔길이라 불러보고 싶다. 우리 생각이 오고 사라지는 형태는 참, 다양하다. 고속도로처럼 급히 결과를 향해 내닫는 생각도 있고, 오솔길처럼 천천히 오는 생각들도 있다. 획일화와 직선으로의 내달림을 잠시 접고 자신을 만나 만져보는 생각들이 혹 생각의 오솔길이고 시가 아닐까.
길을 걸으며 가끔, ‘직선은 인간이 만든 선이고 곡선은 신이 만든 선이다’라고 한 건축가 가우디의 말을 생각해보게 된다. 곡선이 없다면 인간의 상상력은 고갈되고 말 것이다. 곡선의 씨앗이 하트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탄생길에서 황천길까지 어디 직선길만 가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살다보면 생각의 곡선길, 생각의 오솔길을 우리는 수도 없이 만난다. 이런 곡선길이 있어 우린 마음의 길인 시를 만날 수도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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