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목소리로]농민 울리는 비료값

강광석 | 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며칠 있으면 3월입니다. 벌써 한 해 농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고추 모종은 하우스에서 잘 크고 있습니다. 논과 밭에 퇴비를 뿌리는 농민들도 있습니다. 보리를 간 농민들은 1차 웃거름을 주었습니다. 농기계 수리 센터에서 트랙터와 관리기를 손보는 농민들도 늘었습니다. 친환경 우렁이농법 신청도 마무리되었습니다.

아직 겨울 뒤끝인지라 마을회관은 붐빕니다. 후보자들 자신이 직접 쓴 것 같지 않은, 출판기념회에 동원되었을 책들이 나뒹굴고 명함이 수북이 쌓여 한 인물이 다른 인물을 보고 마냥 웃습니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이곳 시골에도 거센 정치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 말하는 민주통합당 후보와 ‘이제는 과거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 말하는 통합진보당 후보 간의 각축이 볼 만합니다. 마을회관들을 돌아다녀본 후보자들에게 요즘 공부바람이 불었답니다. 비료 공부입니다. 농민들이 마치 구호를 외치듯 비료값 문제를 성토하고 있습니다. 쌍욕이 난무하고 농협을 두둔하는 놈들이 있으면 잡아 족칠 기세입니다. 터질 것이 터졌습니다.

비료업체가 가격 담합으로 부당이익을 챙겼습니다. 농민들은 비료를 일반 농약상에서 구입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농협에서 삽니다. 지역농협은 비료를 농협중앙회를 통해 가져옵니다. 이것을 농민들은 계통구매라 부릅니다.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의 구매 물량을 일괄 파악한 뒤 비료업체들을 모아 입찰을 합니다. 공개입찰 방식입니다. 필요한 제품을 정해놓고 가장 싸게 공급할 수 있는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격과 물량을 담합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그렇게 해서 비료업체들이 1조6000억원을 부당하게 챙겼습니다. 농민들이 1조6000억원을 손해 봤다는 것입니다. 2011년에는 가격 담합 사실을 조사한다는 소식을 접한 업체들이 자율 경쟁으로 전환하면서 입찰 가격이 전년보다 21% 낮아졌습니다. 결론적으로 농민들은 비료를 시장가격보다 21% 비싸게 구매했다는 것입니다. 1년 비료 시장 규모는 5000억원 정도입니다.

더욱이 농민들이 놀란 것은 농협중앙회가 운영하는 자회사가 부당입찰에 참여했다는 사실입니다. 국내 비료시장의 약 42%를 장악하고 있는 남해화학이라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성장을 거듭해 주가가 뛰고 임원들 성과급을 지나치게 올려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은 적이 있는 회사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농협중앙회가 발주한 입찰에 농협중앙회 소속 회사가 가격담합을 주도해 과징금을 제일 많이 받았는데도 농협중앙회는 이것을 몰랐다고 합니다. “몰랐다고 합니다”라고 마을에서 어른들께 말씀드리면 바로 “이런 개 같은 새끼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008년쯤으로 기억합니다. 한 포대에 5800원 하던 요소가 한꺼번에 1만1000원으로 뛴 적이 있습니다. 정부가 화학비료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서울로 말하면 500원 하던 지하철 요금이 하루 아침에 광고도 없이 1000원으로 인상된 것입니다. 해마다 비료값은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난해에는 비료값이 조금 내리더라고요. ‘하, 이런 일도 있구나’ 농민들은 놀랐지요. 지금 알고 보니 비료값 담합 사실이 조사되고 지난해에는 정상 입찰 방식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해 비료값이 또 올랐습니다. 농민들이 많이 쓰는 복합비료는 1만2000원에서 1만7000원으로 뛰었습니다. 비료업체가 부담하게 될 과징금 828억원을 보충하기 위해 일괄적으로 가격을 올린 것이라고밖에 해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이런 일이 비료에만 있는 것인가 농민들은 의심합니다. 농협을 통해 구매하는 농약이 일반 농약상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비싼 것이 혹시 가격 담합 때문인지, 비닐과 사료가, 농기계가 그런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지난 15년 동안 은밀하게 이루어진 가격 담합으로 농민들은 1조6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손해 보았는데 정부 과징금은 828억원입니다. 과징금은 국고로 환수될 뿐입니다. 농민들이 본 손해액은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농민회를 중심으로 비료값 담합에 대한 집단 소송인단 모집이 진행 중입니다. 농민들에게 십시일반 1만원씩 내자고 합니다. 전국적으로 호응이 뜨겁습니다. 어떤 후보는 피해액 1조6000억원 전액 몰수 후 농민 환원을 주장해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비료값 반값을 공약으로 제시한 후보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비료 보조금을 부활하겠다는 것입니다. 농자재값 원가 공개법을 제정하겠다는 후보도 있습니다. 다 좋은 말입니다. 실현이 문제이지요. 가격이 떨어져 울상인 농민, 생산비가 올라 고생하는 농민들의 심정을 누가 알아주나요. 올해도 어김없이 대파값, 양파값, 배추값은 폭락했습니다. 농민들은 ‘비료가 쌀이야’라고 말씀하십니다. 먹는 쌀은 떨어지고 뿌리는 쌀은 올랐습니다. 쌀쌀맞은 바람에도 3월은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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