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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에 대하여

[박영택의 전시장 가는 길]눈 내리는 겨울바다

박영택 |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권부문사진전(학고재, 1·12~2·27)

눈이 내리는 겨울바다다. 눈은 풍경을 지우면서 채운다. 기이하다. 겨울바다에 눈이 투항하듯 내리면서 그 바다의 적막과 서늘함과 아름다움은 완성된다. 차가운 바다로 눈이 섞여들어가 겨울바다의 풍경은 종료되는 것이다. 새삼 눈발이 거센 겨울바다 앞에 서 있는 착각이 인다. 그렇게 한 장의 사진은 보았던, 보았던 것 같은 풍경 앞에 나를 대면시킨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나와 바다뿐이다. 바다와 독대한 나는 그 바다를 더욱 편애한다. 사진은 그 편애를 독려한다.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올 겨울 풍경이 이 사진 앞에서 더욱 실감나는 것이다. 눈 내리는 바다는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부단히 지워가면서 격렬하게, 더러는 느리게 흔들린다. 눈이 내리는 것은 현재의 시간이고 그것은 찰나의 순간들이다. 눈은 망막에 보여지는 순간 이내 사라지고 흩어진다. 바다는 그 눈을 죄다 삼킨다. 해서 눈은 소멸되는데 사진 속 풍경에서 눈은 순간 정지되어 사라지기 직전의 마지막 모습을 잔영처럼 보여준다. 세상의 소음을 죄다 뭉쳐가며 수직으로 펑펑 쏟아지는 눈은 솜 같고 봄날 날리는 꽃가루 같고 덧없는 육신 같고 사라진 얼굴들 같다. 미칠 듯한 허무감이 눈과 함께 낙하한다. 눈 오는 바다 풍경은 흑백사진으로 재현되었다. 실재의 재현이면서도 동시에 그로부터 멀리 달아난다. 그것은 주명덕의 그 의도된, 일부러 시꺼멓게 만들어 나가 관념취로 물든 사진이나 역으로 온통 희뿌옇게, 가늠하기 어려운 모호한 회색톤으로 끌고나가 시선을 조바심나게 하는 민병헌의 사진,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듯, 자연 그 자체의 본래 모습을 드라마 없이 찍고자 했던 정동석의 컬러 사진 그 어느 사이에 위치해 있다. 컬러와 흑백의 중간쯤에 머무는 것도 같다. 관념과 있는 그대로 보려는 시선 그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