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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에 대하여

[여적]숲에 든 사람, 김재일

김택근 논설위원
최근 사찰생태연구가 김재일씨(64)가 지은 10권짜리 <산사의 숲>(지성사)이 출간되었다. 들여다볼수록 노작이다. 그런데 독자들에게는 ‘사찰생태연구가’라는 직함이 생소하다. 저자는 우리 생태계가 무참히 무너지던 1990년대 중반 자연의 비명을 듣게 되었다. 곧바로 생태기행에 나섰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사찰 숲이 우리 땅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생태 보루임을 확인했다. 사찰생태연구소를 차리고 산사의 숲을 찾아갔다. 사찰생태연구가는 이렇게 탄생했다.

처음에는 무심했으나 갈수록 예사롭지 않았다. 숲은 온갖 생명붙이들을 품고 있으니 또 다른 사찰이었다. 숲 속에 파묻힌 전각들은 건축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였다. 솦 속의 또 다른 숲이었다. 되도록 걸어서, 부처를 뵙듯이 공손하게 숲에 들었다. 강원도 고성 건봉사에서 해남 땅끝의 미황사와 바다 건너 한라산 관음사까지 찾아갔다. 숲 속의 날고 기는 짐승에서 이끼까지 관찰하여 기록했다. 그렇게 108개 산사의 숲 속을 다녀왔다. 꼬박 7년이 걸려 매듭을 지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의 절집은 산막(山幕)이요, 스님들은 숲지기였다. 저절로 이루어진 숲이든 사람이 심어 가꾼 숲이든, 숲은 거기에 사는 사람을 닮는다. 도시의 숲은 시민들을 닮고, 산사의 숲은 그 절에 사는 스님들을 닮는다.” 숲은 바람까지 정갈하게 빗질하여 사찰로 보내고, 사찰은 말씀을 숲 속으로 내보냈다. 속세와 피안, 고통과 구원, 미망과 깨달음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절과 숲에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동시에 들어 있다.

사찰생태연구가 김재일씨, 그는 지금 폐암 투병 중이다. 아니 병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다. 얼굴은 맑고 표정은 고요하다. 2004년께 이미 말기 판정을 받았지만 그동안 숲의 은혜를 입어 산사의 숲을 찾을 수 있었다. 숲 속에 들면 편안했다. 그러나 이제 병원으로부터 석달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동안은 숲에서 구원을 얻었고 이제 숲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불교는 숲에서 태어났다. 석가모니는 숲 속의 성자였고 초기 불교의 수행자들은 ‘숲 속에 머무는 이들’이라고 불렸다. 그에게 숲은 종교였다. 숲에서 모든 것을 얻었고 깨달았으니 이제 숲 속에 안기고 싶어한다. 그래서 수목장을 원한다. 지난날이 비록 곤했지만 그 끝이 향기로웠으니, 그는 산사의 나무처럼 고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