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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의 똑똑똑

[김제동의 똑똑똑](20) 시인 정호승

정리 |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ㆍ“사악하고 불행한 시대… 그래도 믿음 버리면 안돼”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정호승의 시 ‘수선화에게’ 중에서.

‘울지 말라’고 했는데 울고 또 울었다. 외롭게 주저앉아 있던 내게 그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위로했다. 그 시구는 나에게 죽비소리였고, 따스한 어머니의 손이었다. 내가 사랑하고, 이 시대가 사랑하는 시인 정호승(60). 읽으면 저절로 마음이 따스해지는 시를 쓰는 그를 서울 봉은사 절마당에서 만났다. 시인을 만나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평소 가장 좋아하는 시인인 정호승 시인을 만났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인의 위로는 지쳐 쓰러질 것 같을 때마다 나를 일으켜주는 따스한 손길과 같았다. 직접 만나본 정 시인은 시와 똑 닮은 사람이었다. 정 시인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선생님, 뵙게 돼서 저 정말 영광이에요. 근사하게 양복 입으신 모습도 멋쟁이시고. 전 양복만 입으면 결혼식 가느냐고 물어봐서요. 자꾸 남들 결혼식만 가고 있어요.

“제동씨는 남 결혼식 가서 주로 어떤 역할을 하나요? 사회를 보나요?”

- 아뇨, 후배들 결혼식에 가서 사회보는 것도 그렇잖아요. 남 결혼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 결혼식이 중요하거든요.

“제동씨가 노총각에 속하나요?

- 사람들이 자꾸 그 부류에 넣으려고 해요.

“아녜요. 요즘은 그 개념이 없죠. 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랑 하는 게 중요해요. 결혼은 남녀 모두에게 굉장히 혁명적인 일이죠. 다른 사람의 재촉에 괘념치 마시고 누구랑 할 것인가만 생각하세요. 20년 전쯤 광화문에서 신문로 쪽으로 가다가 새문안교회 앞을 지나는데 설교 제목이 게시판에 붙어 있더라고요. ‘만남을 위하여 기도하라’. 그 말이 그때 굉장히 와닿았어요.”

▲ “시를 쓰고 나면 충만한 기쁨보다
진실 다했는지 성찰하게 돼요”
“나역시 앞뒤 다 잘려 내 뜻이 왜곡된 TV 속 모습을 볼 때면 손발 오그라들며‘저건 아니다’ 싶을 때가 있다.” -김제동


하긴 나도 ‘만남’을 위해 기도해 본 적이 없다. 아직 급하지 않다는 ‘말씀’. 그래도 일단 만나면 그녀를 위해 기꺼이 꽃이 되고 시가 될 수 있을 텐데…. 정 시인께서는 그 많은 당신의 시들을 다 외고 계실까?

“몇 구절 들으면 내 시라는 걸 알겠는데 확실하게 외우는 건 동시 1편, 시 1편이에요.”

- 그럼 선생님도 선생님 시가 시험지문으로 나오면 100점 못받으시겠네요.

“그렇죠. 시에 정답이 있겠어요? 신경림 선생께서도 당신의 시로 낸 국어문제를 풀어보니 너무 어려우셨대요. 저도 한 번 풀어보다가 몇 개 틀리는 바람에 그 다음부터는 풀 생각도 안해요. 상상력이 풍부한 학생은 틀리는 경우가 많죠.”

- 제가 선생님 시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수선화에게’였어요.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는 말, 산 그림자도 외롭다는 말. 전 촌에 살면서 산그림자가 마당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매일 봤는데 특별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전율이 느껴졌죠. 전 지금도 항상 그 구절이 맴돌아요. 한편으론 그 구절들이 고마웠어요. 아직 내게 문학소년 같은 감성이 남아 있구나 느껴져서 제 스스로가 대견스러웠거든요.

“그 시는 50대 초반에 썼어요. 당시에 제 친구 하나가 저를 붙잡고 외롭다고 하더군요. 집사람이나 자식, 친구, 직장에서도.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그건 당연한 거라고. 외로움이 인간의 본질인데 괴로워하면 곤란하다고. 인간이기 때문에 외롭고,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그런데 그 말 한마디가 결국 나 자신에게 한 말처럼 느껴지더군요. 그 말 때문에 그 시를 쓰게 됐죠. 결혼한다고 해서 외로움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새로운 외로움이 시작되죠. 당연히 견뎌야 하는 것이고요.”

- 말씀을 듣고 있으려니 코끝이 찡해져서 눈물이 나요. 선생님의 시가 다른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데 선생님은 선생님의 시를 어떻게 보세요?

“저는 한 번 읽고 말아요. 혹시 오자는 없나 이러면서. 영향보다는 내가 이걸 제대로 썼는지, 나의 진실을 다했는지 하는 성찰같은 게 먼저 와요.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벅차오르는 충만한 기쁨이 있어야 하는데…. 다음에 시를 쓰면 좀 더 잘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죠. 이번에도 마찬가지고요.”

그 경지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 역시 TV에 나오는 내 모습을 볼 때 그런 느낌을 갖는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랄까? 앞뒤 다 잘리고 특정 부분만 편집되어 내 뜻이 왜곡될 때면 저건 아니다 싶을 때도 있다.



“얼마전 화면에서 제동씨 모습을 봤는데 참 좋은 얼굴이에요. 특히 안경 벗으면, 감동이 있는 얼굴이죠. 제가 화순 운주사에 있는 석불을 참 좋아해요. 그 석불은 기존 절에서 볼 수 있는 단정하고 잘생긴 느낌의 얼굴이 아니라 거의 마모된 얼굴인데 거기서 굉장히 큰 감동이 와요. 물론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제동씨 얼굴에서 굉장한 감동이 느껴졌어요.”

- 흠. 오해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다행입니다. 제가 소심해서 곧바로 운주사로 달려가거든요.

“하하. 나이가 들면 노파심이 많아진대요. 운주사에 와불이 두 분 계신데 얼굴이 거의 마모됐어요. 내가 그걸 봤을 때가 40대 중반이었는데 그 얼굴이 내 얼굴 같더라고요. 깎일 대로 깎이고 고통받을 대로 다 받은 그 얼굴, 모든 것을 버리고 앉아 있는 그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그 부처님 앞에서 일체감도 느껴졌죠. 그래서 그 앞에서 사진도 한장 찍고 그때부터 불교에 대한 책도 찾아 읽고, 제 시에 불교적 이미지가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제동씨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사시잖아요. 앞으로도 그러실 거고….”

결국 김제동의 얼굴은 ‘마모된 부처님 얼굴’이라는 얘기다. 정 시인은 육체의 얼굴은 가면 같은 거라며 위로하시지만 나도 때로 장동건의 얼굴로 살고싶을 때가 있다. 안 그런가?

- 선생님 시 중에 모두 엎드려 미사 드리는 것 같다는 시구 있잖아요. 비닐하우스성당. 생각나세요? 선생님 시에 늘 여러 종교가 함께 등장하잖아요. 미사와 와불, 기독교에 관련된 내용도 있고요. 전 종교가 기독교인데 교회에 가 본 지는 오래됐고, 산에 다니다보니 절에 더 많이 가는 것 같아요. 가끔 술 많이 먹으면 집 앞 성당 성모마리아 상 앞에서 울기도 하고. 절에 가면 마음 편하고 그래요.

“저도 절에 가면 편해요. 저 역시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는데 부석사나 운주사 등 절에 갈 땐 부처님 앞에서 삼배해요. 처음에 절을 한 데가 부석사 무량수전 아미타불 앞이었어요. 남들 따라 절을 했는데 처음엔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그 마음이 성당의 장궤대에서 무릎꿇고 기도할 때랑 비슷해요. 우리가 얼마나 오만한가요. 누군가에게 엎드릴 수 있다는 게 좋아요. 감사한 일이죠.”

- 저도 집에서 108배를 할 때가 있는데 까닭 모르게 눈물이 나요. 내 무릎을 꿇고 내 몸을 바닥에 댄다는 데서 느끼는 감동이죠.

“전에 인사동에서 얼굴이 마모된 불두를 샀어요. 제 책상 앞에 있던 십자고상 옆에 함께 뒀지요. 외로우실 것 같아서 두분이 친하게 지내시라고.”

정 시인의 최근작 시집에 ‘결빙’이라는 작품이 있다. ‘순간은 뜨겁다/ 꽝꽝 얼어붙은 겨울강/ 도도히 흐르는 강물조차/ 일생에 한 번은/ 모든 흐름을 멈추고/ 서로 한몸을 이루는/ 순간은 뜨겁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역설인가. 그렇게 껴안으며, 미워하지 않으며 살아야겠다. 정 시인의 시 덕분에 앞으로 얼어붙은 강을 보고도 뜨겁게 껴안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겠다. 시에게 고맙고, 시인에게 고맙다. 내 삶의 숨구멍 같은 존재다.

▲ “지금이 KTX 타고 가는 삶이라면
40년 전은 배로 건넌 목가적 시대”
“아이도 예뻐할 수 없게 만드는 시대… 빨라지고 삭막해진 세상이 인간관계도 단절시키는 것 같다.” -김제동


“가까이 지냈던 분 중 육신의 형처럼 생각했던 분이 정채봉 시인이에요. 그분이 떠난 지가 내년이면 10년인데 3, 4년쯤 지났을 때 참 보고 싶더라고요. 서울 동숭동의 ‘샘터’에 근무했으니까 혜화역에 내리면 바로 찾아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죽었으니까 내가 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없잖아요. 죽음은 보고싶을 때 볼 수 없는 게 죽음이거든요. 지금 내 작업실은 부모님 집이에요. 그런 생각 때문에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조금이라도 더 자주 보자 싶어서 작업실을 옮겼어요.”

- 시에도 그런 내용을 쓰셨더라고요. 어머니한테 말씀하는 내용 중 유난히 죽음에 관해 많이 이야기하신 것 같아요.

“그렇죠. 죽음은 남녀노소 누구나 자기 삶의 화두예요. 인생의 화두가 사랑이듯, 같은 의미로 인생의 화두가 죽음인 거죠. 죽음은 바다의 파도같아요. 파도가 밀려와서 절벽에 부딪치면 파도가 사라지지만 그렇다고 바다는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터키 에페소라는 도시에 갔는데 로마시대에 225만명이 살았던 곳이래요. 유적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고 인간만 사라진 거죠. 그런데 인간이 사라졌을까요? 영속성의 한 선 속에서 점을 하나씩 찍고 지나가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떻게 보면 인간은 연약한 존재지만 어떤 의미에선 굉장히 위대한 존재인 것 같아요.”

- 그 속에서 갈등이 일어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떨 땐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느껴지다가도 어떨 땐 그런 믿음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느껴지더라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시대를 열심히 살아야죠.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리면 안돼요. 믿음을 버리면 지구가 사라질 걸요? 전 70년대에 20대를 살았잖아요. 그때 어둠 때문에 완전히 호떡처럼 눌려서 살았다고 해야 할까.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면 어둠이 존재해요. 먼 역사를 봐도, 우리 현대사를 봐도 다 어둠의 순간이 있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 왜 어둠이 있느냐면 밝음을 위해서죠. 별을 지향하지만 별은 어둠이 존재해야 빛나요. 한 신부님이 하신 말씀인데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증오도 필요하다’는 거죠. 아마 2020년, 2030년을 사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밝아진 시대를 살지 않을까요?”

정 시인은 이야기를 하다말고 주위를 둘러보시더니 “참 많이 변했다”면서 웃었다. 그러면서 “70년대에 봉은사에 올 때는 뚝섬에서 나룻배를 타고 다녔는데 그 당시 법정 스님이 역경사업을 하고 계셨다”면서 “지금이 KTX 타고 가는 삶이라면 40년 전은 배타고 강을 건너던 목가적 시대였다”고 회상하셨다.

- 가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지만,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시간이 좀 더 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요. 만나고 돌아오는 시간도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죠. 전 대구에 연고가 있는데 예전엔 가면 반드시 하루를 잤어요. 그런데 요즘 대구는 당연히 하루 만에 다녀오는 코스예요. 속도가 인간적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 같아요.”

- 빨라지고 삭막해지면서 많은 것을 끊어버렸어요. 요즘 아기들 참 예쁜데, 아이만큼 예쁜 꽃이 없는데 아이를 예뻐하면 경계의 대상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사악하고 불행한 시대이기도 하죠. 내가 어떤 여고생과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혹시나 나를 위협적인 존재, 불안한 존재로 여길까 싶어 눈도 제대로 들지 못해요. 그래야 상대가 편안함을 느낄 거 아녜요. 안타깝지만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거예요. 보다 성숙된 사회로 나가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