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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의 똑똑똑

[김제동의 똑똑똑](7) 희망제작소 박원순 변호사

정리 |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ㆍ“역사의 바른 편에 서 있는, 지금 제 자리가 좋아요”

박원순 변호사의 다이어리는 흰바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했다. 일과는 오전 7시30분부터 한밤중까지 이어졌다. 스케줄 많고 바쁜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왔지만 이런 일정표는 처음이다. 가슴 포켓엔 볼펜이 한가득이고, 주머니란 주머니마다 서류뭉치와 메모쪽지로 채워진 복장은 바쁜 일상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처럼 매니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박 변호사껜 죄송하지만 그분이 더 바빴으면 좋겠다. 바쁘면 바쁠수록 세상이 희망적으로 변할 일들이 더 많을테니까. 종로구 평창동 희망제작소 내 두 평 남짓한 작업공간은 ‘희망의 헤드쿼터’였다.

김제동은 “개천에서 용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송사리로 남아 개천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박원순 변호사는 “혼자 용빼는 재주로 하늘로 올라가는 것보다 함께하는 것으로 힘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맞장구쳤다. 두 사람은 “세상에 뭘 하든 비판자가 생긴다”며 “비판을 받지 않으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없다”고 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미국에서는 어제 돌아오셨다면서요. 그런데 조찬모임까지 하시다니.

“저는 여독을 못 느껴요. 하도 많이 다니니까. 몸이 전자동으로 싹 바뀌죠. 요즘 전화기도 자동 로밍되는 것처럼 몸도 그래요. 하버드 갔더니 얼마 전에 제동씨도 다녀갔다고 하더군요.”

- 지난달엔 영국에도 다녀오셨죠? 너무 바쁘게 지내시는데 하나도 안 피곤해 보이세요.

“밤 9시가 넘어야 제 시간을 좀 가질 수 있는데 이때 e메일 확인하고 블로그나 자료정리도 좀 하고 그래요. 영국 갔다온 것도 빨리 정리해야 하는데…, 사회적기업 보려고 갔어요. 요즘 미국뿐 아니라 영국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공공의 목적을 비즈니스적인 방법으로 만들어내요. 정부 사업인 공공서비스를 민간단체가 생산하도록 한 거죠. 예를 들자면 홈리스를 정부가 다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들이 이들을 대상으로 자전거 수리기술을 가르쳐 자전거포를 열고 자활하도록 돕는 거죠. 시민단체는 지역과 주민에 훨씬 가까이 있으니 공공 서비스를 더욱 효율적으로 할 수 있고 지역민들의 바람도 충족시켜주기 쉬워요.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는 정부가 모든 것을 다 직접하고 간섭하려고 하잖아요. 벙커에서 비상회의하면 세상이 바뀌는 줄 알고…. 거꾸로 가는 셈이죠.”

- 그럼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은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이어야 하죠. 국민이, 시민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격려해 줘야죠.”

▲ “대학감옥 안갔으면 검찰총장 됐을지 모르지만
이런 정부하에서 잘나가면 이상한 거죠”
▲ 왜 다들 용꿈만 꿀까? 송사리로 남아서
개천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 김제동


박 변호사께서 갑자기 명함을 건네신다. 명함엔 ‘소셜 디자이너’라는 명칭이 새겨져 있다. 소셜 디자인? 생활과 사회와 사람을 바꾸는 디자이너라는 설명이다. 사람의 생각과 습관과 문화를 읽어내고 거기에 맞춰 무언가를 바꿔 상황을 업그레이드한다는 것. 이참에 나도 ‘스마일 디자이너’ ‘해피바이러스 디자이너’라고 새겨볼까.

-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을 민간이 해주는 것은 정부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잖아요. 그런 분을 지원해주고 독려해주면 좋을텐데 오히려 고소를 하네요.

“예수님은 고소 당한 뒤 처형까지 당하셨잖아요. 난 차라리 감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럼 이렇게 복잡한 일정들 신경 안써도 되고 규칙적으로 책 읽고 글 쓰면서 살 수 있는데. 오히려 감옥 보냈으면 했는데 돈도 없는 나한테 2억원이나 청구했잖아요.”

- 그때 심정이 어떠셨나요.

“기분 안좋죠. 일반인도 아니고 국정원인데. 우리 희망제작소는 특별히 정부를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늘 창조적인 것을 위해 노력하는 곳인데 말예요. 그러다보니 갑자기 기업후원도 끊기고 어려워졌죠. 그런데 오히려 잘됐어요. 자발적으로 회원이 늘어 5000명에 이르거든요.”

- 국가가 개인을 고소하는 일이 흔합니까.

“거의 없는 일이라고들 하죠. 정부는 비판받기 위해 존재하는 건데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소송하는 상황이 웃기는 일이죠. 그런데 제동씨 혹시 감옥 가본 적 있어요?”

- 아뇨. 저 가기 싫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때 견학해 본 적은 있습니다. 촌에서 남의 오토바이 한번 타봤는데 오토바이 훔쳤다고 걸려서 경찰서에 갔죠. 그때 저에게 교도소 구경을 시켜주시더라고요. 한번만 더 잘못하면 이런데 와야 한다면서 학생이니까 봐준다고 하셨어요.

“나는 대학 1학년때 복역해봤어요. 학교에서 잘리고 5년 지나니까 복학하라는 통지가 왔더라고요. 나랑 김준규 검찰총장이랑 고교 동창인데 내가 그때 감옥 안가고 공부 열심히 했다면 지금쯤 검찰총장 됐을 수도 있겠죠? 아니면 스폰서 검찰 됐을까?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전 제자리와 바꾸기 싫어요. 역사의 바른 편에 서 있다는 그 느낌이 훨씬 행복해요. 가난하고 억울하고 힘든 사람들과 함께 있는 지금이 훨씬 좋습니다. 이런 정부 하에서 너무 잘나가면 그것도 이상한 거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산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나의 가장 큰 가치와 행복은 웃음이다. 사람들이 웃을 때 가장 행복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더니 박 변호사께서는 “당장의 방송 공간은 좀 잃었을지 몰라도 국민의 마음은 훨씬 얻었다”면서 “단순히 사람을 웃기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웃기는 사람이 됐다”고 과찬을 해주신다.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에는 무거움이 남아 있다.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사는 일들이 곡해되고 색깔이 덧씌워지는 세상이 됐을까. 참 답답하다.

- 변호사님의 정치적인 색깔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난 지금까지 그런 색깔 없이 살았어요. 좋은 일을 하고 살자는 게 내 의지인데 외부에서 나를 정치적인 존재로 자꾸 만드네요. 본의아니게 정치권이나 공직 물망에도 오르내린 적이 있잖아요. 한편으론 오해를 좀 받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아무 비난과 비판을 안받으려면 아무것도 안하면 되거든요. 뭘 하든 비판자는 생겨요. 저도 처음엔 왜 날 비판하고 미워하나 생각하면서 그들이 울컥 미워지기도 했는데 이제는 ‘저런 사람들도 있어야 나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겠구나’ 생각해요. 편해졌죠.”

- 파울로 코엘료가 트위터에 올려놓은 비슷한 메시지를 본 적이 있어요. 모든 사람이 너를 사랑한다면 그게 이상한 거다, 반드시 너에게 경고를 주고 깨우는 원수 한 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정치가 하도 국민들을 신물나게 하니까 지레 나쁜 것으로 규정지어진 측면도 없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정치예요. 그런 면에서 볼 때 누구나 광의의 정치색은 갖고 있는 건데 말이죠.”

▲ “커피당은 유권자 운동 이웃끼리 커피 마시며
후보·정책 정보 나누자는 것… 선관위서 표창받을 일이죠”
▲ 저마다 좋아하는 일하며 행복감 느끼는데
왜 색깔이 덧씌워지는 세상이 됐을까 - 김제동


지난 3월에는 ‘2010 유권자희망연대’가 제안한 커피당이 창당됐다. 진짜 정당은 아니고 소규모의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며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는 유권자 운동이다.

- 이번 커피당도 그런 유권자 활동으로 보면 되겠네요.

“지방선거는 유권자 절반도 투표하지 않거든요. 국민의 무관심 때문에 정치가 망하고 있어요. 우리 지자체장이나 지방의회의 20%가 형사피의자로 입건돼 있다는 사실은 정말 창피한 일입니다. 커피당은 당수도, 당조직도, 강령도 없어요. 그저 동네 이웃들끼리 모여 커피 마시면서 후보자와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보를 나눠보자는 운동이에요. 오히려 선관위에서 지원받고 표창받아야 한다고 봐요.”

- 자신의 한 표를 포기하지 말고 투표로 말하자는 거네요.

“표 행사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거죠. 당일에 표를 찍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선거에 관심을 갖고 정보를 나누는 과정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표를 찍으러 올 리도 없거니와 정당한 표도 행사하지 못해요. 그런데 우리 선관위는 그런 걸 막고 있어 안타까워요. 트위터를 규제하는 것도 그렇고. 요즘 선관위를 보면 국민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아요. 시민들의 건강한 판단을 믿어야죠.”

방 입구엔 재미있는 패러디 사진이 붙어 있다. 영화 <300>을 패러디한 박 변호사의 사진이다. 나도 조만간 패러디 사진을 찍기로 했다. 근육이 좋은 사람이 워낙 각광받는 세상이다 보니 근육 없고 몸 안좋은 남자들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시대다. 늘어진 뱃살이 죄인가.

“예전에 김수환 추기경 살아계실 때 한 자원봉사자가 그랬어요. 저더러 김 추기경하고 함께 벗어서 달력 만들면 좋겠다고. 영화 <풀 몬티>처럼.”

- 야, 그거 만들었으면 완전 대박이었겠는데요. 자금 걱정 하실 필요 없었을 것 같아요. 아니면 저랑 같이 한번 벗으실래요?

얼마 전 ‘요즘은 더이상 개천에서 용나기 어렵다’는 글을 봤다. 한참동안 ‘왜 용인가?’하는 생각을 했다. 실은 나도 “개천에서 용났다”는 소리 많이 들었다. 경북 영천 촌동네 개구쟁이에서 TV에 나오는 사람이 됐으니 왜 아니겠나. 그런데 왜 다들 용꿈만 꿀까. 송사리로 남아서 함께 어깨동무하고 개천을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 모든 송사리가 용을 꿈꾸면 그 개천은 뭐가 되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과 희망을 나누는 것이 송사리가 되어 개천을 지키는 것 아닌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막연히 해본다.

“그래도 난 우리사회가 희망이 많다고 믿어요. 2000년에 아름다운재단 시작할 때만 해도 나눔이란 말은 별로 없었어요. 기부문화를 들꽃처럼 온 세상에 피어나게 하자는 게 목표였는데 그때랑 비교하면 지금 얼마나 많이 퍼졌나요. 그런 면에서 볼 때 너무 완벽한 사회보다는 할 일 많은 세상에 태어난 게 감사하지요.”

- 할 일 많으신 건 좋지만 집에서는 뭐라고 안하시나요.

“젊을 때부터 이렇게 살았으니까 일찍 집에 가게 되면 뭔 일이 있나 하고 이상하게 생각해요. 돈도 안 갖다주지, 늦게 가지, 1년의 3분의 1은 외국에 있지, 심지어 사무실에서 자는 날도 많아요. 2005년 스탠퍼드 대학에 있었는데, 혼자 갔기 때문에 무척 외로웠죠. 그때 김광석, 양희은씨 CD를 들으며 외로움을 달랬는데 그 노래들이 제 마음을 콕콕 찌르더군요. 제가 감성이 없는 사람이 아니란 걸 그때 느꼈어요.”

- 피천득 선생님 돌아가시기 전에 방에 가봤는데 잉그리드 버그먼 사진이 걸려 있더라고요. 소년 같은 감성을 가지고 계시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다음에 올 때는 변호사님도 좋아하는 여배우 사진 한장쯤 걸어두는 여유를 즐겨보시죠.

생뚱맞은 내 말에 그러마하고 대답하시는 그분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다. “절망도 있지만 희망의 단서도 많다”는 그분은 계속해서 희망의 씨앗을 뿌리겠단다. 그렇다. 하늘을 덮는 큰 나무도 모두 작은 씨앗 하나에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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