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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의 똑똑똑

[김제동의 똑똑똑](4) 김용택 시인

정리 |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ㆍ“내 자식 귀하면 내 아이와 살아갈 아이들 관심 가져야”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서 서럽게 서 보셨는지요.// 해 저문 섬진강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김용택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일부

섬진강과 시인이 만나면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게다가 봄이라면? 잠이라도 줄여서 그곳에 가야 했다. 아쉽지만 시간 때문에 방배동 뒷산을 ‘접선 장소’로 택했다. 가벼운 트레이닝복과 운동화 차림이면 족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을 만나는 자리였기에. 가는 길에 평소 김 시인을 좋아하는 DJ 유라 누나(최유라)에게 자랑삼아 전화했다. “너 그거 알아. 예전에 김 선생 시로 내 남편을 잡았잖니?” “연애하려고 시를 읽었군요.” 시인은 어린아이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시를 썼으니 마음이야 ‘섬진강 매화꽃’이 아닐까.

김제동과 김용택(오른쪽)은 ‘촌놈’이다. ‘경상도 촌놈과 전라도 촌놈의 만남’에서 두 사람은 “아이들은 뛰놀며 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이 손을 붙잡고 아이들처럼 해맑게 웃고 있다. | 김영민 기자


- 선생님 책에 소개된 아이들 글을 읽다보니 자괴감이 느껴졌어요. 1학년 예은이 글 말예요. ‘나는 벚꽃을 보면 마음이 조용해집니다’라고 썼더군요. 마음이 환해졌죠.

“전 아이들에게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줬어요.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해 자연스럽게 글로 표현해요. 요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뭔가를 바라볼 시간을 주지 않잖아요. 자연도, 사물도, 사람도 바라보는 것부터 관계가 시작되는데 심지어 남편과 아내도 서로 바라보지 않는 세상이죠.”

- 저도 이젠 아내랑 자식 바라봐야 할 나인데 자꾸 술잔만 바라보게 되네요(웃음). 그런데 선생님 책인데 아이들 글에서 좋은 게 더 많았어요. 기분 안 나쁘시죠.

“그래요. 애들 글을 넣을까 말까 고민 많이 했어요(웃음). 아이들 글이랑 같이 놔두고 보면 내 글이 죽거든. 아이들은 계산을 안하는데 내 글엔 억지가 많이 들어가 있어요.”

- 자연을 벗삼아 뛰놀며 자란 아이들의 힘과 저력 아닐까요.

“그래요. 교육에서 중요한 건 교류와 접촉이죠. 자연과 인간이 어울리고 부딪히며 성장해야 하는데…. 정답을 가르쳐주고 외워서 그 틀에 맞게 쓰게 하다보니 아이들이 사람에 대한 배려를 모르고 자라고 있어요.”

그렇다. 나 역시 내 고향 경북 영천에서 보낸 유년의 기억이 내 삶의 8할이다. 이순신장군 놀이에 수사반장 놀이, 얼음조각배를 타고 비료포대로 눈썰매를 타던…. 칡뿌리 캐고 고기잡으러 쏘다닌 고향산천.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평생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김 시인에게 자꾸만 수렁 속으로 빠져가는 교육문제의 해결책을 물었다.

사회 전체적인 구조와 맞물려 있어서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어요. 우선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교장, 교감 승진제도를 바꾸는 거예요. 승진제도는 교사에게 관리가 되라고 강요하는 거죠. 그 자리를 교사출신 아닌 사람들에게도 개방해야 해요. 일단 이 문제만 해결해도 교직사회가 크게 변할 수 있어요. 또 교사를 교육하는 내용과 구조도 바뀌어야죠. 지금은 선생님 되려면 인격과는 상관없이 시험을 잘봐야 하잖아요.”

-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개혁을 하지만 점점 교육에서 희망을 찾기 어려워 보입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말하면서 계획 세워놓고 따른 적 있나요? 교육정책도 정권에 따라 5년마다 바뀌어요. 국가권력에서 독립된 교육 연구·수행기관이 필요해요. 또 빈부격차가 교육 양극화로 이어지면서 대물림 된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자 핵심이죠. 교육을 통해서 신분적 격차를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이야기죠. 잘사는 집은 자녀에게 관심이 많을테고, 어려운 가정은 자녀 교육에 소홀할 수밖에 없어요. 배려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커서도 사회에 적응하기가 상대적으로 더 어려워지겠죠. 내 자식이 귀하다면 내 아이들과 살아갈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교육 핵심은 교류와 접촉…정답 외워서 틀에 맞추니
아이들 배려 모르고 자라 - 김용택
▲비료 포대로 눈썰매 타고 자연을 벗삼아 보낸 유년이
내 삶의 8할이에요 - 김제동


문득 언젠가 방송을 하면서 만났던 소녀가 떠올랐다. 소녀는 피아노를 너무너무 치고 싶었지만 아이의 집 형편은 세끼 밥이 절실했다. 아이의 부모는 언제 길거리로 나앉을지 모르는 전형적인 도시 빈민이었다. 소녀는 양철판에 건반을 그려넣고 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건반연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더 슬픈 것은 그런 아이가 자꾸 늘어나고 있다는 거다.

- 제가 대안학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소외된 아이들이 마음껏 놀면서 공부하게 하고 싶어서입니다.

“안 그래도 제 집사람이 제동씨가 대안학교 만든다는 기사가 난 걸 봤다더군요. 제동씨처럼 대중에게 영향력이 큰 분들이 중심이 되어 힘을 모을 필요가 있어요. 저도 노영심씨랑 대안학교 계획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학교 이름도 ‘가끔 열리는 학교’라고 정해봤는데….”

- 우하하. 정말 재미있네요. 제가 생각한 대안학교에서는 15분간 수업하고 45분간 노는 거예요. 노는 시간에 책들고 있으면 야단 쳐야죠. 원어민 강사가 애들한테 한글도 배우고…. 저야 뭐 선생님께서 도와주시면 정말 큰 힘이 될 거예요. 어차피 교장은 공모할 거니까 지원하실 거죠?

“대안학교에 관심을 갖는 부모들도 많아지고 있어요. 제도권의 교육이념과 목표는 오로지 서울대죠. 그래도 난 우리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걸 찾아서 할 수 있도록 가르치려고 노력했어요. 좋은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라고 가르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늙어가야 한다고 가르쳤죠. 그게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교육이지요.”

- 가끔 열리는 학교, 저도 좀 끼워주세요. 노영심씨는 음악 가르치고, 선생님은 글쓰기 가르치고, 저는 아이들과 함께 놀고, 가끔 가수 비도 데려가서 영어랑 춤 가르치라고 하고…. 정말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비 이야기 하다보니 갑자기 유라 누나 생각이 났다. 김 시인께 양해를 구하고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바꿔드렸더니 “프로그램을 매일 들어서 그런지 가족 같은 생각이 든다”고 인사를 건네셨다. 휴대폰 너머 누나의 웃음이 봄햇살처럼 넘쳐났다. 김 시인은 최근 펴낸 책에 사인을 하셔서 ‘유라 누나’랑 ‘아버님(조영남)’에게도 전달해달라고 하셨다.

▲빈부격차로 교육 양극화, 학력 대물림이 문제…
‘가끔 열리는 학교’ 계획도 - 김용택
▲글쓰기 김용택·음악 노영심… 15분 수업하고 45분 노는
‘대안학교’ 환상적이죠 - 김제동


- 교단 떠나신 지도 벌써 1년반 정도 되셨네요. 학교는 한번 가보셨나요.

“아니, 없어요. 괜히 다시 가려니 마음이 짠하더라고. 그런데 아이들이 날 금세 잊어버리는 게 좀 야속하긴 했어요. 지난 토요일에 친구 아들 결혼식장에 갔는데 내가 예뻐하던 녀석이 왔더라고요. 정말 반가워서 달려가며 이름을 부르는데 녀석이 그냥 덤덤하게 인사하고 가버리는 거예요. 섭섭해서 눈물이 핑 돌더군요. ‘에이, 괜히 예뻐했어. 괜히 아이스크림 사줬어.’ 이랬다니까요.”

- 아이들만 보시다가 이젠 어른들만 보시려니 좀 답답하시겠어요.

“아유, 말도 마요. 우리 기성세대들 보고 있으면 답답해요. 낡아 빠진 틀을 가지고 싸움질하고 이념이니, 좌우니 이러고 있는 모습이 넌더리가 나요. 우리가 해방 직후에 사는 사람들도 아니고. 국민들을 뭘로 아는 건지…. 국민들 생각까지 일일이 다 간섭하고 이리저리 훈수 두고…. 아직도 획일화된 이분법적 가치판단을 요구하잖아요. 우리편 아니면 완전히 말살하겠다는 것,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지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김 시인을 따라 일어섰더니 갑자기 나에게 ‘한 방’ 날리신다. “난 제동씨가 나랑 키가 비슷한 줄 알았는데 나보다 좀 크네.” “아니, 선생님, 저 그동안 많이 컸습니다.” 나도 ‘한 방’ 날렸다. “선생님, 눈이 작은 저랑 얼굴이 좀 닮으셨습니다.” 그 말에 웃으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눈을 크게 뜨신다. 또 당했다.

이꽃저꽃 다 피는 4월. 김 시인은 지리산 화개장터 위 연곡사에서 녹차를 만들 예정이란다. 묵을 방도 내준다며 나를 초대하셨다. 그래, 꽃구경 가야겠다. 김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간절하면 가 닿으리/ 너는 내 생각의 끝에 아슬아슬 서 있으니/ 열렬한 것들은 다 꽃이 되리/ 이 세상을 다 삼키고/ 이 세상 끝에 새로 핀 꽃 한 송이’- ‘꽃 한 송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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