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지독하게 음험하고 아름다운 스펙터클블랙 스완 Black Swan 감독 대런 애로노프스키/ 출연 내털리 포트먼, 뱅상 카셀, 위노나 라이더, 밀라 쿠니스 발레는 잔혹한 예술이다. 아주 짧은 동작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발레리나들은 기나긴 시간 동안 스트레칭을 하며 자신의 근육을 원래의 그것보다 더 길게, 강인하게 훈련시켜야 한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 등근육이 하나하나 잘게 쪼개진 채 저마다 미세하게 떨리며 찰나의 동작을 뒷받침하는 걸 목격할 수 있다. 엄청난 육체노동, 지독한 신체적 고통을 감내하고서야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이 세계의 무시무시한 본질을 전달한 영화로는 마이클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의 <분홍신>(1948)이 유일했다. 그리고 60여년이 흘러 대런 애로노프스키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것도 자해, 마약, 나르시시즘, 무자비한 야심, 살인, 파괴적인 섹스와 함께. <블랙 스완>은 지독하게 음험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파고든다. 발레리나 니나(내털리 포트먼)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시간이 이대로 흘러가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힌 채 몰래 자해하고 사소한 절도를 저지르고 악몽을 꾼다. <백조의 호수> 공연을 앞두고, 발레단의 예술감독 토마스(뱅상 카셀)는 오랫동안 프리마돈나의 자리를 지켜왔던 발레리나 베스(위노나 라이더) 대신 니나를 새로운 백조/흑조로 캐스팅한다. 생애 첫 번째 주역, 니나는 스타덤의 압박 속에서 점점 더 불안정해진다. 게다가 발레단에 새로 입단한 릴리(밀라 쿠니스)는, 니나처럼 정교한 테크닉을 구사하진 못하지만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관능적인 매력을 뿜어낸다. 토마스는 은근히 니나와 릴리를 비교하며, 니나가 흑조를 연기할 만큼 열정적이거나 유혹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몰아붙인다. 니나는 이 세계의 모두가 자신을 해치고 음해한다는 감각에 시달리며 끔찍한 분열로 치닫는다. <레슬러>에서 몸뚱이 하나만으로 삶을 일궈나가는 사내들의 땀내를 그려낸 대런 애로노프스키는, 레슬링과 발레라는 상극의 세계가 보여주는 기이한 신체적 유사성을 지적한 바 있다. “나는 실제로, 예전에 레슬러와 발레리나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를 구상한 적이 있다. <레슬러>와 <블랙 스완>은 어떤 면에서 두개로 쪼개진 하나의 이야기다.” 그는 <블랙 스완>을 통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스펙터클, ‘발레-스릴러’를 창조해낸다. 공포와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세계, <레퀴엠>과 다리오 아르젠토의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그나저나 왜 제목이 <블랙 스완>이냐고? 발레 <백조의 호수>를 본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백조보단 역시 흑조다. 글 김용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