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기자ㅣ경향신문
ㆍ카페 개설자 심해린씨
다음 카페 ‘김예슬 선언’을 개설한 ‘꿈꾸는린’은 이화여대생 심해린씨(경영 3·휴학)다. 심씨는 여러 대학의 학생들이 모여 사회적 실천과 고전 읽기를 하는 ‘대학생 나눔문화’에서 김예슬씨와 고민을 함께한 사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생을 걸고 피워올린 불씨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사그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카페를 만들었다. 지난주 ‘<김예슬 선언> 앞에 교수님들의 양심을 묻습니다’라는 대자보를 이대와 고려대에 붙이기도 했다. “설령 김예슬씨처럼 대학 기득권을 던지지는 못하더라도, 지지건 비판이건 본인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대로 말씀해주십시오. 그리고 진리라고 믿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지난 19일 만난 그 역시 자발적 퇴교를 고민하고 있었다.
- ‘김예슬 선언’은 어떤 의미인가.
“듣는 순간 심장이 찔렸다. 고통스러웠다. 며칠 동안 잠도 오지 않았다. 뜨거움을 느낀 이유는 우리 모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대학 문제는 우리 모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자리 문제와 교육 문제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많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희망도 느꼈다. 그 선언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았기 때문이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과 (선언의 의미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느낀 마음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텐데… 일상으로 돌아오면 속도와 압박, 경쟁에 묻힐 것이란 생각을 했다. 이대로 묻혀서는 안된다는 간절함에 카페를 만들었다. 카페에서 말하는 것도 저항이고, 듣고 생각하는 것도 저항이다. 무언가 상상하는 것도 저항이다.”
- 주변의 20대는 김예슬씨의 자발적 퇴교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나.
“우리는 한번도 자기 힘으로 구조를 바꿔보겠다는 상상을 못한 세대다. 길이 정해져 있었으니까. 시장과 국가와 대학 안에서…. 우리에겐 자신이 ‘잉여인간’이라는 무력감이 있다. 내 손으로 밥을 벌어먹을 수 없고, 언제까지 계속 달려야 되는지 불안하고, ‘나만의 이야기’가 없다는 억울함도 있다. 그런데 김예슬씨의 선언이 있은 뒤, 가슴이 뜨거워졌다, 용기가 생겼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으로 뭔가를 이야기한다는 게 깊은 울림을 줬다. 기득권을 버린다는 데 대해 ‘사회적 자살’이라는 표현도 있었다. 마음이 아팠던 건, 일부이긴 했지만, 꿈을 찾아 노력하는 이들을 욕되게 하느냐, 그래서 어쩌란 얘기냐…는 반응이었다.”
- ‘88만원 세대론’이 20대를 일정 부분 규정한 측면이 있다.
“20대에게 ‘짱돌을 들라’고 하는데, 손발 다 묶어놓고 짱돌 들란 말인가. 우리는 ‘88만원 말고 188만원 달라’는 게 아니다. 등록금 깎아달라는 것만도 아니고, 국가 복지로 맘 편히 살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대학과 기업과 국가 구조 속에서 한 줄로 세워지는 게 싫다는 거다. 어른들이 하는 말에 나를 내맡기는 게 아니라, 억압의 핵심을 스스로 알고,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찾고, 내 손으로 내 밥을 정직하게 벌 수 있는 삶을 꿈꾸는 거다.”
- 본인은 어떤 20대인가.
“21년간은 별다른 회의 없이 살았다. 나름대로 착한 딸이라 부모님이 만족하실 만한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입학한 뒤엔 학점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날 ‘내가 (부모님에 의존하는) 인큐베이터 인간인가? 내 삶을 헤쳐나갈 능력이 내 안에 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부모님도 나 때문에 희생하고, 나한테 매달리시고…. 그렇다고 내가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동아리 활동 하고, 책도 읽으면서 길을 찾았다.”
- 대학 교수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썼다.
“문제의 핵심이 교수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수님들은 단순한 직장인이 아니라 스승이다. 우리가 인생을 걸고 큰 물음을 던진다면, 그분들도 우리를 이끌어줘야 한다.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는 사정은 이해하지만, 최소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2008년 촛불집회 때가 생각난다. 집회 나가느라 수업을 빠졌더니 담당 교수님이 ‘그런 데 왜 가니’라고 했다. 대학생인데 진리를 추구할 자유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대학 총장은 ‘대학의 1차 고객은 학생이고, 궁극적인 고객은 기업’이라고 했는데, 대학이 취업고시 학원이라고 치자. 그러면 직장 못 구한 졸업생들은 리콜해야 하지 않나.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건 비겁하다.”
- 김예슬 선언 이후의 개인적 변화가 있다면.
“자기 삶을 던져 무엇인가 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예슬 언니가 잘 되길 바란다. ‘고졸 성공신화’가 아니라 더 높은 배움을 얻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같은 고민을 했던 대학생으로서, 진지하게 자퇴를 고민하고 있다. 대학을 떠나는 길을 택한다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못했던 일들을 하고 싶다. 존경받는 삶을 사는 분들을 만나 가르침을 구하고, 젊은이답게 신나게 놀아도 보고, 내 손으로 먹을 것도 길러보고 싶다.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 만날 땐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드리고 싶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다음 카페 ‘김예슬 선언’을 개설한 ‘꿈꾸는린’은 이화여대생 심해린씨(경영 3·휴학)다. 심씨는 여러 대학의 학생들이 모여 사회적 실천과 고전 읽기를 하는 ‘대학생 나눔문화’에서 김예슬씨와 고민을 함께한 사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생을 걸고 피워올린 불씨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사그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카페를 만들었다. 지난주 ‘<김예슬 선언> 앞에 교수님들의 양심을 묻습니다’라는 대자보를 이대와 고려대에 붙이기도 했다. “설령 김예슬씨처럼 대학 기득권을 던지지는 못하더라도, 지지건 비판이건 본인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대로 말씀해주십시오. 그리고 진리라고 믿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지난 19일 만난 그 역시 자발적 퇴교를 고민하고 있었다.
심해린
“듣는 순간 심장이 찔렸다. 고통스러웠다. 며칠 동안 잠도 오지 않았다. 뜨거움을 느낀 이유는 우리 모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대학 문제는 우리 모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자리 문제와 교육 문제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많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희망도 느꼈다. 그 선언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았기 때문이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과 (선언의 의미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느낀 마음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텐데… 일상으로 돌아오면 속도와 압박, 경쟁에 묻힐 것이란 생각을 했다. 이대로 묻혀서는 안된다는 간절함에 카페를 만들었다. 카페에서 말하는 것도 저항이고, 듣고 생각하는 것도 저항이다. 무언가 상상하는 것도 저항이다.”
- 주변의 20대는 김예슬씨의 자발적 퇴교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나.
“우리는 한번도 자기 힘으로 구조를 바꿔보겠다는 상상을 못한 세대다. 길이 정해져 있었으니까. 시장과 국가와 대학 안에서…. 우리에겐 자신이 ‘잉여인간’이라는 무력감이 있다. 내 손으로 밥을 벌어먹을 수 없고, 언제까지 계속 달려야 되는지 불안하고, ‘나만의 이야기’가 없다는 억울함도 있다. 그런데 김예슬씨의 선언이 있은 뒤, 가슴이 뜨거워졌다, 용기가 생겼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으로 뭔가를 이야기한다는 게 깊은 울림을 줬다. 기득권을 버린다는 데 대해 ‘사회적 자살’이라는 표현도 있었다. 마음이 아팠던 건, 일부이긴 했지만, 꿈을 찾아 노력하는 이들을 욕되게 하느냐, 그래서 어쩌란 얘기냐…는 반응이었다.”
- ‘88만원 세대론’이 20대를 일정 부분 규정한 측면이 있다.
“20대에게 ‘짱돌을 들라’고 하는데, 손발 다 묶어놓고 짱돌 들란 말인가. 우리는 ‘88만원 말고 188만원 달라’는 게 아니다. 등록금 깎아달라는 것만도 아니고, 국가 복지로 맘 편히 살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대학과 기업과 국가 구조 속에서 한 줄로 세워지는 게 싫다는 거다. 어른들이 하는 말에 나를 내맡기는 게 아니라, 억압의 핵심을 스스로 알고,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찾고, 내 손으로 내 밥을 정직하게 벌 수 있는 삶을 꿈꾸는 거다.”
- 본인은 어떤 20대인가.
“21년간은 별다른 회의 없이 살았다. 나름대로 착한 딸이라 부모님이 만족하실 만한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입학한 뒤엔 학점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날 ‘내가 (부모님에 의존하는) 인큐베이터 인간인가? 내 삶을 헤쳐나갈 능력이 내 안에 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부모님도 나 때문에 희생하고, 나한테 매달리시고…. 그렇다고 내가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동아리 활동 하고, 책도 읽으면서 길을 찾았다.”
- 대학 교수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썼다.
“문제의 핵심이 교수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수님들은 단순한 직장인이 아니라 스승이다. 우리가 인생을 걸고 큰 물음을 던진다면, 그분들도 우리를 이끌어줘야 한다.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는 사정은 이해하지만, 최소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2008년 촛불집회 때가 생각난다. 집회 나가느라 수업을 빠졌더니 담당 교수님이 ‘그런 데 왜 가니’라고 했다. 대학생인데 진리를 추구할 자유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대학 총장은 ‘대학의 1차 고객은 학생이고, 궁극적인 고객은 기업’이라고 했는데, 대학이 취업고시 학원이라고 치자. 그러면 직장 못 구한 졸업생들은 리콜해야 하지 않나.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건 비겁하다.”
- 김예슬 선언 이후의 개인적 변화가 있다면.
“자기 삶을 던져 무엇인가 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예슬 언니가 잘 되길 바란다. ‘고졸 성공신화’가 아니라 더 높은 배움을 얻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같은 고민을 했던 대학생으로서, 진지하게 자퇴를 고민하고 있다. 대학을 떠나는 길을 택한다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못했던 일들을 하고 싶다. 존경받는 삶을 사는 분들을 만나 가르침을 구하고, 젊은이답게 신나게 놀아도 보고, 내 손으로 먹을 것도 길러보고 싶다.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 만날 땐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드리고 싶다.”
'산다는 것에 대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동 에세이]아이들을 살리는 길 (0) | 2010.05.03 |
---|---|
김예슬씨 “거대한 적 ‘대학·국가·자본’에 작은 돌을 던진 것” (0) | 2010.04.21 |
‘대학 거부’ 선언 김예슬씨를 만나다 (0) | 2010.04.21 |
다음 카페 ‘김예슬 선언’에선 무슨 일이… (0) | 2010.03.24 |
길 잃은 88만원 세대 온몸으로 ‘저항 선언’ (0) | 2010.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