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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실크로드

[칭짱열차타고 티베트 가는길 ⑤-2] 티베트 시골 풍경

시리도록 푸른 티베트의 하늘, 영원하여라
[칭짱열차타고 티베트 가는길 ⑤-2] 티베트 시골 풍경
※ 여름휴가로 다녀온 티베트 열차 여행. 티베트로 향하는 세계 最高의 고원을 유유히 달리는 열차, 이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세간의 화제인 칭짱 열차의 모든 것을 CBS 김필원 아나운서가 생생하게 전한다. 기사를 읽는 동안 여러분은 이미 프런티어!

(글 싣는 순서) ① 칭짱열차는? / ② 칭짱열차 밖 비경 / ③ 칭짱열차에서 만난 사람들 / ④ 칭짱열차 음식 퍼레이드 / ⑤ 관광객의 천국 티베트 '라사'


킬리만자로 등반하듯 헉헉 대며 포탈라 궁을 다니고 나니 12시. 이제 점심시간인데 하루 종일 다닌 것처럼 피곤하다.

한국식당에서 야크고기를 먹었다. 삼겹살과 야크고기 각 1인분씩을 시켰는데 모둠야채를 합쳐서 둘이 먹고 남는다. 유통과정이 간단하고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고기와 야채, 과일이 하나같이 싱싱하고 맛있다. 그렇게 먹어도 만원이 안 나온다. 야크 고기는, 한국에서 200그램에 2만8천 원씩 하는 고급 토시살과 견주어 손색이 없다. 생고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라사는 더 매력적이다.

북반구의 초가을이니 라사의 햇살은 따갑도록 좋고 하늘은 눈 아프게 파랗다. 거기에 아침저녁으로 신선, 선선한 바람이 수시로 불어오니 여기 있으면 오래 살 것 같다.

그런데 라사 사람들의 옷차림은 남루한 편이다. 입고 있는 재킷들은 모두 등산용에 가깝다. 소위 백화점 스포츠 브랜드 col**ia, **thface…….하다못해 구걸소녀, 구걸 할머니도 이런 패션이다. 짐작한 대로 진짜는 아닌 것이지. 대로변에 이런 가짜를 파는 번듯한 상점들이 많이 보인다.

다음날 나는 라사의 외곽을 둘러보기로 했다. 가이드의 친구, 루디라는 청년이 아는 집이 있다고 했다. 경운기를 타고 마을로 들어가는데 펼쳐진 들판과 파란 하늘 카리스마 넘치는 산맥이 눈앞에 있어 더 즐겁다.

마을 입구에선 사람들이 보리타작을 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타작하는 모습은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었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곳의 집들은 한옥의 구조와 비슷하다. 좁은 마당을 들어서면 개가 묶여있고 외양간이나 두엄더미가 대문간에 정면에는 두칸내지는 세칸짜리 집이 있다.

처음 간 집은 이 동네의 중산층. 제일 큰방이 응접실이었는데 정면으로 불단이 보인다. 달라이 라마의 사진과 향을 피우는 곳. 들어와서 제일 먼저 그 단에 기도하는 것이 그들의 풍습. 수박과 차를 대접하는 인심 좋은 아낙네. 우리 숙모 같다.

옆칸은 부엌이다. 지푸라기와 흙덩어리가 함께 짓이겨 말라있는 둥그런 것을 집어 올렸더니어머머! 이거 야크 똥이란다. 겨울에 이걸 때는 거다.

아침에 먹는 빵의 일종인 ‘빠'를 만드는 가루단지도 보여주고 울 할머니 쓰시던 것과 비슷한 부뚜막도 보여준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아이만 있다가 헐레벌떡 어른이 돌아왔는데 낮에는 모두들 밭일을 하러 나간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다음 집으로 가는데 꽤 걸었다. 동네 주변은 온통 들판에 카리스마 풍부한 라인을 지닌 산.푸른 하늘……. 걷다가 보면 앞의 가이드가 묻는다. 'Are you OK.?' 내 숨소리가 점점 커지나 보다. 정말 다른 때 보다 숨이 더 찬건 사실이지만 공기도 좋고 기분도 좋으니 정말 오케이다.

두 번째 집은 이 동네에서 가장 형편이 어려운집. 여긴 한 칸짜리 집이다. 들어서는데 정면에 소파와 이부자리들이 보인다. 바깥에 웬 이부자리들? 나중에 가이드에게 듣고 보니 가족들이 밤에 이곳에서 잔단다. 방이 없어서 한뎃잠을 자는 것이다.

응접실겸 부엌은 컴컴하고 살림살이는 얼마 없었다. 소작을 붙일 땅도 제대로 가지지 못한 집이라는 가이드의 설명.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부랴부랴 들어와서 차를 대접한다. 어려워도 손님을 대접해주시려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라사에서의 마지막 저녁이 될 오늘. 가이드가 티베트 젊은이들의 인기가수 콘서트에 가잔다. 고마운 제안에 그러마고 했지만 역시 어제처럼 피곤하다.

찾아온 가이드를 그냥 보내놓고 호텔에 그냥 누웠는데 마사지를 받으란 전화가 온다. 잠시 후 손놀림이 아주 야무진 젊은 중국 여성이 방문했는데 100위엔을 주고받은 그녀의 마사지에 나는 반짝 힘을 얻었다. 티베트에서의 마지막 밤. 힘도 다시 찾았겠다, 이대로 있을 수 없다. 나가자.

어제 갔던 그 바에서 혼자 앉아 책을 읽으려는데 그 똑똑한 티베트 점원이 와선 한글 교재를 내민다. ㄱ(기역), ㄴ(니은).오리, 호수, 아기.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 수준의 한글교재.

한자라도 더 배우려는 그 청년이 갸륵해서 같이 한글공부를 해주고 있었는데 옆테이블의 중국 커플이 내 영어 발음을 따라하는 소리가 들린다. 라사에 있는 외국인 바에 가면 외국인들과 친구하기에 딱 좋다.

9월 7일 금요일.

오늘은 상하이로 가는 날이다. 라사 공항으로 가는 길. 여전히 우윳빛의 강은 구불구불 흐르고 산맥은 높다. 다음에 오면 하이킹도 하고 래프팅도 하자고 가이드와 약속을 한다. 다시 꼭 오게 되면 말이다.

라사에 있으면 나는 완전 새로운 세상에 있는 듯 했다. 사이먼앤가펀클의 노래 중에 scarborough fair라는 곡이 있다. ‘스카보로 시장에 가거든 말해주세요. 내가 그녀를 정말 사랑했었다고’

라사의 골목시장을 걷고 있으면 그 노래의 멜로디가 귀에 흐르는 듯 했다. 철저히 혼자인 채로 완전 새로운 곳에 떨어져 있는 듯 한 느낌. 일상에서 제대로 탈출한 것 같은 느낌.

이곳을 떠나서도 나는 압제 속에서도 꿋꿋한, 그리고 정직하고 성실한 티벳인들을 떠올렸다. 일제 강점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는 듯 한 그들의 꿋꿋한 미소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군화발로 꾸욱 누르고 있는 누군가의 압제에도 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관광객의 사치를 원 없이 누리고 온 라사이건만 나는 더불어 이런 마음도 갖게 되는 것이다.

'티베트 라사에 가거든 말해주세요. 그곳에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있다고'

※ 김필원 아나운서는 CBS 음악 FM(93.9 MHz) '김필원의 FM매거진'(월-일 06:00 - 09:00)을 진행하고 있다.




승인일시 : 2006-11-01 오후 5: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