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다는 것에 대하여

[기고]희망버스 송경동 “난 한 명의 승객이었을 뿐”

송경동 | 시인

· 민주언론시민연합 ‘2011 제13회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 수상 소감문

상 이름처럼 정말 ‘특별한 상’을 받게 됐다. 가서 받을 수도 없는 상이다. ‘희망버스를 제안하고 추진한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이어서 ‘격려하고 석방을 촉구하는 뜻’에서 내게 ‘특별상’을 수여했다고 한다.

고맙고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상은 내 개인이 받아서는 안 되는 상이다. 특히나 그것이 희망버스와 관련된 거라면 더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희망버스는 승객들 한 사람 한 사람들이 한 사람씩의 살아있는 미디어처럼 움직였던 수많은 말과 표현의 버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희망버스는 튀니지와 이집트 등 아랍을 휩쓴 새로운 혁명의 중요한 언로였고 무기였던 소셜미디어의 힘이 큰 축을 담당했던 뉴미디어운동의 한 전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은 트위터를 통해 고립은 고사하고 전 세계적 투쟁의 중심이 되어 이제 막 깨어나고 있던 미국의 월가 시위 점령단에게 연대와 투쟁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실제 희망버스에서는 월가 시위가 있기 전, 2차에서부터 1%에 맞선 99%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기하고 있었다. 한순간 85호 크레인은 한국 사회 노동자 민중의 절망의 상징에서, 한국 사회 진보의 중앙관제탑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맞선 용역깡패들과 매번 100여 개 중대에 이르던 전근대적인 공권력의 탄압은 이런 첨단의 소통과 수평적 언로들 앞에 곧잘 무기력해지곤 했다.

한편 이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 모순의 중심이 무엇인지도 확연해졌다. 십수년간 자행된 사회적 집단 학살에 다름 아닌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에 대한 분명한 전선이 형성되었다. 이제 그 누구도 공장과 일터에서의 민주주의와 분배, 정의의 실현을 빼고 다음 시대를, 다른 사회운영원리를 설명하긴 힘들 것이다. 희망버스 승객들은 수많은 ‘말’을 통해 그건 ‘나쁜 짓’임을, ‘옳지 않은 일’임을 밝혀두었다. ‘말’로 밝혀둔 진실을 이제 현실 속에서 더는 후퇴하지 않을 단단한 물리적 구조들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거기 나도 한 명의 승객이었을 뿐이다. 꿈꾸는 듯한 비현실적인 글들 몇 편을 보탠 철부지 ‘깔깔깔’이었을 뿐이다.

구래의 ‘언론’ 영역에 국한하더라도 기억되어야 할 사람들과 일들이 많다. 희망버스조차 없었을 때, 크레인농성 100일차를 지키고 외롭던 크레인을 밝게 만들어주고, 이후 늘 희망버스의 밑그림이 되어 주었던 <파견미술팀>, 김주익 열사가 절망했던 129일 밤을 김진숙이 버틸 수 있도록 아름답고 따뜻한 빛을 가지고 내려갔고, 이후 희망버스의 빛이 되어준 ‘독립미디어 활동가들’, 전국의 해고노동자 자녀들의 이름과 학년과 주소를 확인해 그들 모두에게 ‘희망의 책’을 우편으로 보내주던 너무도 아름다운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모임> 사람들, 용산과 기륭, 4대강에 이어 저 먼 부산까지 오가며 또 한 권의 기록적인 사진집 『CT85』를 만들어주고 내내 희망버스의 잠들지 않는 눈이 되어준 <최소한의 변화를 바라는 사진가들>과 보름 만에 이 헌정사진집을 만들어 준 출판사 <아카이브>, 역시 보름 만에 희망버스 탑승객들의 글 모음집을 만들어준 출판사 <후마니타스>, 그리고 5차 당시 부산국제영화제에 맞춰 1,500인의 영화인 선언을 만들어내고, 세계 5개 국어로 된 홍보 브로셔를 만들어냈던 사람들, 그리고 이 모든 예술가들이 모여 진행했던 ‘85개의 소금꽃 작업실’ 등등.

사실 희망의 버스 과정에서 ‘특별하게’ 상을 받아야 할 사람들과 일들이 너무 많다. 2차 때 전국에서 올 사람들을 기다리며 한진 가족대책위 분들이 접었던 1만 개의 ‘희망의 배’ 역시 어떤 언론 작업 이상으로 훌륭한 진실의 전달 활동 아니었을까? 이 모든 이들과 일들을 기억해주는 상이라고 생각해본다.

사실 이런 부분과 관련해서 기성 언론에 불만이 많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기성 언론들의 문화적 감시안은 철저히 제도적이거나 상업적인 곳에 갇혀 있다. 거리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호흡하는 살아있는 말들, 표현들, 행동들은 전혀 반영이 안 된다. 그 많은 새로운 공동체적, 미학적 기미들은 집회시위를 다루는 사회면이나 사진 기사에 가끔 한두 줄 반영되고 말 뿐이다. 이런 언론의 편식증이 조금은 바뀌기를 바라는 뜻도 이 ‘특별상’에는 깃들어 있을 거라고 맘대로 생각해본다.


<이 소감문은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전달받아 게재합니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