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 피에르 샤르트뢰즈(프랑스) / 글·사진 | 조운찬 선임기자 sidol@kyunghyang.com
1084년 프랑스의 신학교수 성 브루노(1035~1101)는 6명의 동료와 함께 ‘유럽의 심장’ 알프스로 향했다. 대주교가 되어달라는 지역 신자들의 바람을 뿌리친 뒤의 행보였다. 브루노 일행은 상트 피에르 샤르트뢰즈라는 알프스의 깊은 골짜기에 정착했다.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을 격리시켰다. 노동과 기도, 묵상. 그들은 침묵 속에서 생을 마쳤다. 세계의 수도원 가운데 규율이 가장 엄격하다는 봉쇄 수도원 카르투지오의 시작이었다.
지난 17일 찾은 카르투지오는 프랑스와 스위스의 접경인 알프스 심산유곡에 자리해 있었다. 해발 1300m의 고지에 위치한 수도원 앞은 협곡이다. 뒤로는 ‘그랑 솜(Grand Som·2026m)’이라는 알프스의 영봉이 솟아있다. 단풍으로 물든 협곡의 수림지대와 그랑 솜의 하얀 바위 봉우리가 빚어내는 색의 대비가 오묘하다.
카르투지오 수도원에는 브루노의 삶을 좇는 수도사 33명이 산다. 사제수사(신부) 20명, 평수사(노동수사) 12명과 ‘아빠스’라고 불리는 수도원 원장이 그들이다. 사제의 직분이 기도와 침묵이라면, 평수사는 수도원의 살림을 꾸려가며 사제의 활동을 돕는 게 주요 임무다. 사제들도 물론 채소가꾸기, 장작패기 등 의식주 해결을 위한 기초적인 노동은 한다.
카르투지온(카르투지오 수도사)에게 세상사는 관심 밖이다. 그들은 사방이 벽으로 갇힌 곳에서 세상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고 살아간다. 병이 걸리면 왕진 의사를 불러 치료한다. 수술 등 중병치료를 위해서만 예외적으로 외출이 허용된다. 죽으면 수도원 경내에 묻힌다.
1000년간 이어져온 카르투지오의 봉쇄 전통은 철벽요새만큼이나 굳건하다. 많은 순례객들이 수도원의 문을 두들겨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다. 이제는 안다. 순례자들이 카르투지오를 찾는 것은 수도사를 만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수도원을 엿보기 위함도 아니다. 그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카르투시온들의 침묵과 고독, 그리고 그들과 교감해 온 알프스의 자연이다.
적잖은 사람들이 카르투지오 수도원을 찾는다. 그러나 외부인과의 접촉을 허용하지 않는 봉쇄 수도원에서 순례자들이 카르투시안의 정신과 접속하기란 쉽지 않다. 수도원이 안타까워하는 순례자들을 위해 ‘방편’을 냈다. 수도원 입구에 순례자들을 위한 박물관을 세운 것이다.
카르투지오 박물관은 1957년에 문을 열었다. 수도원 건물을 개조한 것이다. 수도원은 2㎞ 북쪽 현재의 장소로 옮아갔다. 박물관에는 카르투지오 수도회 역사와 현황을 보여주는 전시관과 함께 과거 수사들이 사용했던 성당, 수도자 방 등이 보존돼 있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수도사의 일상을 엿볼 수 있도록 재현해놓은 생활공간이다.
카르투지오 수도원은 베네딕도 수도원과 마찬가지로 공동체 조직이다. 그러나 수도사의 삶은 철저히 독거(獨居) 형태로 이뤄진다. 수도사들은 ‘셀륄’이라 불리는 독립주택에서 혼자 산다. 셀륄은 두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1층은 노동의 공간으로 작업실, 장작보관소, 화장실이 있고 채소나 화초를 가꿀 수 있는 작은 정원이 딸려 있다. 2층은 기도와 휴식의 공간으로 침실, 기도실, 공부방과 함께 성모마리아를 모셔놓은 경당도 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지향과 소명은 침묵 안에 머물며 방 안에서의 고독에 응대하는 것이다.’ 경당 벽에는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정신을 보여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박물관 직원인 아마투치 앨리슨(22)은 수사들의 거처에는 이와같은 수도원 ‘규칙’ 조항들이 쓰여 있다고 전한다. 1000년 전 브루노 성인이 제정한 카르투시오의 규칙이다.
수도자들의 대부분의 삶은 셀륄에서 이뤄진다. 아침, 저녁 두번의 미사와 매주 월요일의 공동 산행 시간을 제외하곤 셀륄에서 나갈 수 없다. 음식은 감옥의 배식구와 같은 조그만 구멍문을 통해 제공받는다. 그것도 점심 한끼뿐이다. 아침식사는 없고 저녁은 빵과 음료수만 먹을 수 있다.
침묵은 수도원 최고의 행동강령이다. 동료 수사들에게 전할 말이 있을 때는 쪽지를 써서 상대의 개인 사물함에 조용히 넣어둘 뿐이다. 대화는 공동 기도 시간과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공동산행 때만 가능하다. 그들은 침묵을 위해 살고, 살기 위해 침묵한다. 그들에게 침묵은 단순한 과묵이 아니다. 고독할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침묵은 삶의 동반자이다. 그들은 침묵을 통해 영혼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자연과 신과 교감한다.
박물관에서는 아쉬운 대로 카르투시오 수사들의 삶의 편린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수사들의 체취를 느낄 수는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수도원으로 향했다. 2㎞ 떨어진 수도원까지 가는 길은 수백년 전나무들이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20분을 걸어올라가니 수도원이 나타났다.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싼 수도원은 ‘중세의 성(城)’이다. 수도원 입구에 들어서니 ‘침묵 지대’(Zone de Silence)라는 표지판이 발길을 잡는다. 굳게 닫힌 수도원의 출입문과 높은 담장은 이곳이 ‘봉쇄’ 수도원임을 실감시켜 준다. “데~엥 데~엥.” 종소리가 산중의 적막을 깨뜨린다. 저녁 기도를 예고하는 수도원의 종소리다.
우연히 수도원의 작은 문 하나가 열려 있는 것이 목격됐다. 호기심이 발동해 다가갔다. 흰 수사복을 입은 한 수사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라는 이방인의 질문에 뜻밖에도 “찍는 것은 괜찮지만 언론 보도는 말아주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놀랍다. ‘침묵’ 수도승이 입을 열다니. 이름을 ‘베노아’라고 밝힌 그의 나이는 칠십. 1964년 수도원에 들어왔다고 했다. 노인이 아니었다. 어린이의 해맑은 얼굴이었다. 그는 수도원에서 유일하게 외부인 접촉 등 대외업무를 맡고 있는 ‘문지기 수사’였다.
알프스의 카르투지온들을 세상에 알린 것은 한편의 영화였다. 2000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은 그들의 삶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대로 영상에 담아 화제를 낳았다. 2009년엔 한국에서도 방영됐다. 카르투지오 박물관의 앨릭슨은 “영화로 알려진 이후 수도원을 찾는 순례객이 30% 이상 늘었다. 올해만 5만명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알프스에 본부를 카르투지오 수도회는 세계 24곳에 수도원을 두고 있다. 전체 수도사는 450여명으로 많지 않다. 한국에는 2000년과 2002년 경북 상주와 충북 보은에 각각 남자수도원과 여자수도원이 설립됐다.
카르투지오는 작은 수도회다. 그러나 1000년 전 브루노가 정한 수도원의 규칙을 고치지 않고 지켜온 수도원이다. 카르투지오를 상징하는 휘장에는 ‘세상은 돌지만 십자가는 우뚝하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자기의 길을 고집하는 수도원의 정신, 그리고 1000년간 이어온 카르투지온들의 침묵이 가톨릭과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
<글·사진 | 조운찬 선임기자 sidol@kyunghyang.com>
지난 17일 찾은 카르투지오는 프랑스와 스위스의 접경인 알프스 심산유곡에 자리해 있었다. 해발 1300m의 고지에 위치한 수도원 앞은 협곡이다. 뒤로는 ‘그랑 솜(Grand Som·2026m)’이라는 알프스의 영봉이 솟아있다. 단풍으로 물든 협곡의 수림지대와 그랑 솜의 하얀 바위 봉우리가 빚어내는 색의 대비가 오묘하다.
카르투지오 수도원에는 브루노의 삶을 좇는 수도사 33명이 산다. 사제수사(신부) 20명, 평수사(노동수사) 12명과 ‘아빠스’라고 불리는 수도원 원장이 그들이다. 사제의 직분이 기도와 침묵이라면, 평수사는 수도원의 살림을 꾸려가며 사제의 활동을 돕는 게 주요 임무다. 사제들도 물론 채소가꾸기, 장작패기 등 의식주 해결을 위한 기초적인 노동은 한다.
해발 1300m 알프스의 산자락에 자리한 카르투지오 수도원. 이곳 수사들의 삶을 끌어가는 힘은 고독과 침묵이다.
1000년간 이어져온 카르투지오의 봉쇄 전통은 철벽요새만큼이나 굳건하다. 많은 순례객들이 수도원의 문을 두들겨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다. 이제는 안다. 순례자들이 카르투지오를 찾는 것은 수도사를 만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수도원을 엿보기 위함도 아니다. 그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카르투시온들의 침묵과 고독, 그리고 그들과 교감해 온 알프스의 자연이다.
적잖은 사람들이 카르투지오 수도원을 찾는다. 그러나 외부인과의 접촉을 허용하지 않는 봉쇄 수도원에서 순례자들이 카르투시안의 정신과 접속하기란 쉽지 않다. 수도원이 안타까워하는 순례자들을 위해 ‘방편’을 냈다. 수도원 입구에 순례자들을 위한 박물관을 세운 것이다.
카르투지오 수도원 입구에 설치된 ‘침묵지대’ 표지판.
카르투지오 수도원은 베네딕도 수도원과 마찬가지로 공동체 조직이다. 그러나 수도사의 삶은 철저히 독거(獨居) 형태로 이뤄진다. 수도사들은 ‘셀륄’이라 불리는 독립주택에서 혼자 산다. 셀륄은 두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1층은 노동의 공간으로 작업실, 장작보관소, 화장실이 있고 채소나 화초를 가꿀 수 있는 작은 정원이 딸려 있다. 2층은 기도와 휴식의 공간으로 침실, 기도실, 공부방과 함께 성모마리아를 모셔놓은 경당도 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지향과 소명은 침묵 안에 머물며 방 안에서의 고독에 응대하는 것이다.’ 경당 벽에는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정신을 보여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박물관 직원인 아마투치 앨리슨(22)은 수사들의 거처에는 이와같은 수도원 ‘규칙’ 조항들이 쓰여 있다고 전한다. 1000년 전 브루노 성인이 제정한 카르투시오의 규칙이다.
수도자들의 대부분의 삶은 셀륄에서 이뤄진다. 아침, 저녁 두번의 미사와 매주 월요일의 공동 산행 시간을 제외하곤 셀륄에서 나갈 수 없다. 음식은 감옥의 배식구와 같은 조그만 구멍문을 통해 제공받는다. 그것도 점심 한끼뿐이다. 아침식사는 없고 저녁은 빵과 음료수만 먹을 수 있다.
침묵은 수도원 최고의 행동강령이다. 동료 수사들에게 전할 말이 있을 때는 쪽지를 써서 상대의 개인 사물함에 조용히 넣어둘 뿐이다. 대화는 공동 기도 시간과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공동산행 때만 가능하다. 그들은 침묵을 위해 살고, 살기 위해 침묵한다. 그들에게 침묵은 단순한 과묵이 아니다. 고독할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침묵은 삶의 동반자이다. 그들은 침묵을 통해 영혼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자연과 신과 교감한다.
박물관에서는 아쉬운 대로 카르투시오 수사들의 삶의 편린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수사들의 체취를 느낄 수는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수도원으로 향했다. 2㎞ 떨어진 수도원까지 가는 길은 수백년 전나무들이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20분을 걸어올라가니 수도원이 나타났다.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싼 수도원은 ‘중세의 성(城)’이다. 수도원 입구에 들어서니 ‘침묵 지대’(Zone de Silence)라는 표지판이 발길을 잡는다. 굳게 닫힌 수도원의 출입문과 높은 담장은 이곳이 ‘봉쇄’ 수도원임을 실감시켜 준다. “데~엥 데~엥.” 종소리가 산중의 적막을 깨뜨린다. 저녁 기도를 예고하는 수도원의 종소리다.
우연히 수도원의 작은 문 하나가 열려 있는 것이 목격됐다. 호기심이 발동해 다가갔다. 흰 수사복을 입은 한 수사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라는 이방인의 질문에 뜻밖에도 “찍는 것은 괜찮지만 언론 보도는 말아주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놀랍다. ‘침묵’ 수도승이 입을 열다니. 이름을 ‘베노아’라고 밝힌 그의 나이는 칠십. 1964년 수도원에 들어왔다고 했다. 노인이 아니었다. 어린이의 해맑은 얼굴이었다. 그는 수도원에서 유일하게 외부인 접촉 등 대외업무를 맡고 있는 ‘문지기 수사’였다.
알프스의 카르투지온들을 세상에 알린 것은 한편의 영화였다. 2000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은 그들의 삶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대로 영상에 담아 화제를 낳았다. 2009년엔 한국에서도 방영됐다. 카르투지오 박물관의 앨릭슨은 “영화로 알려진 이후 수도원을 찾는 순례객이 30% 이상 늘었다. 올해만 5만명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알프스에 본부를 카르투지오 수도회는 세계 24곳에 수도원을 두고 있다. 전체 수도사는 450여명으로 많지 않다. 한국에는 2000년과 2002년 경북 상주와 충북 보은에 각각 남자수도원과 여자수도원이 설립됐다.
카르투지오는 작은 수도회다. 그러나 1000년 전 브루노가 정한 수도원의 규칙을 고치지 않고 지켜온 수도원이다. 카르투지오를 상징하는 휘장에는 ‘세상은 돌지만 십자가는 우뚝하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자기의 길을 고집하는 수도원의 정신, 그리고 1000년간 이어온 카르투지온들의 침묵이 가톨릭과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
<글·사진 | 조운찬 선임기자 sid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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