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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김석종/고영재

[고영재의 천관산 편지]쌀의 눈물

고영재|언론인

들녘에서는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그 황금빛 벌판은 언제나 넉넉하다. 농민들은 금빛 물결 앞에서 고단한 삶을 잠시 잊는다. 풍성한 가을은 농민들에게 보람이자 축복이다.

가을은 무서운 자연의 섭리 앞에 농민들이 고개 숙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자연은 결코 인간의 정성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농민들은 안도한다. 자연은 언제나 정직하다. 콩 심은 데는 콩이, 팥 심은 데는 팥이 어김없이 움튼다. 정성은 어김없이 알찬 수확의 기쁨으로 되돌아온다. 땅은 허황된 꿈을 허용하는 법도 없다. 그 무서웠던 비바람도 자연의 가르침이자 채찍이었음을 농민들은 잊지 않는다. 특히 수천년 민족의 생명줄을 지켜온 금빛 벼의 파도 앞에서 농민들의 가슴은 절로 벅차오른다.

예전엔 저승길에도 쌀을 뿌렸다. 이승을 떠나는 이에게 보내는 정성의 표현이었다. 농민들은 가장 듣기 좋은 소리로 ‘내 논에 물들어가는 소리’를 꼽곤 했다. 벼농사엔 자식 키우는 정성을 쏟았다. 쌀미(米)자에 담긴 비밀의 숫자, 88에 대한 해설이 결코 억지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그 귀한 쌀이 눈물 흘리는 세상이다 / 농민들이 아우성이다. 쌀값이 곤두박질한 터다/ 한 끼니 쌀값이 채 200원도 안된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그 귀한 쌀이 눈물 흘리는 세상이다. 농민들이 아우성이다. 쌀값이 곤두박질한 터다. 지난 5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집회에서 농민들은 정부가 비축미를 풀어 쌀값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상가격이 3만7000~4만원인 20㎏ 한 포대를 1만8000원에 팔아 햅쌀 값이 폭락한 터다. 한 포대 4만원이라도, 한 끼니 쌀값이 채 200원도 안된다(연간 한 사람이 소비하는 쌀은 80㎏ 이하로 떨어진 지 벌써 몇 년째다).

농정 당국은 제발 벼 재배를 줄이라고 안달한다. 쌀은 농민 대부분이 재배하고 농민 소득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헐값 정책이 농촌 해체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고도 불순하다. ‘기업농 육성’ 정책은 ‘작은 산술’이 빚어낸 빗나간 처방이다.

기업농 육성 정책은 농업의 특수성과 농촌의 현실을 무시한 논리의 산물이다. 생산성과 경쟁력에 바탕을 둔 기업의 잣대를 그대로 농업에 적용할 수는 없다. 기업과 농업의 속성은 어긋나는 터다. 당연히 문제와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다. 기업농 정책은 경쟁력의 저울대에 농민을 올려놓고 농민을 농경지에서 쫓아내려는 방책이다. 그것은 생각이 짧고, 잔인하다.

기업농 정책의 핵심은 영농규모를 키워 경쟁력을 높이는 데 있다. 물론 경지 면적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보통 논 100마지기(2만평)는 넘어야 농사깨나 짓는 축에 든다. 500마지기를 짓는 ‘기업농’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힘 좋은 농기계 덕분이다. 그 대신 농민들은 농사일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 적어도 논농사는 사람 농사가 아닌 기계 농사로 거의 완벽하게 재편됐다. 영세농이나 고령의 농사꾼이 설 자리는 없어졌다. 품삯 일꾼도, 품앗이도 거의 사라졌다. 농촌공동체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그 전통은 ‘화석’으로만 남아 있다. 정치판에서 입만 열면 외치는 ‘일자리 창출시대’에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진 셈이다.

농기계가 판치는 세상에 ‘신분이 낮은’ 논들은 따돌림을 당한다. 산골 천수답, 다랑이들이 그 대상이다. 그들 논배미들엔 육중한 농기계가 드나들기 수월찮다. 비싼 기계 작업시간만 축낼 따름이다. 잡초 더부룩한 묵정논이 늘어만 간다. 100만 정보가 훨씬 넘던 전국 논은 80여만 정보로 격감했다. 해마다 수만 정보씩 계속 사라지고 있다. 정부는 멀쩡한 논에 다른 작물을 심으라고 권장한다. 지원금을 줘가며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심으라고 꼬드긴다. 쌀농사는 철저하게 버림받고 있다. 논농사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치열한 통상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쌀이 여느 ‘상품’의 하나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산술을 좋아하는 당국자들에게 핑계거리는 많다. “가격 경쟁력이 없다. 자동차와 반도체를 팔아 번 돈으로 값싼 농산물을 수입해 먹는 게 남는 장사다.” 농업정책 주무부처조차 그 ‘산술’에 맞장구치며 내놓은 방안이라는 게 기업농이다.

기업농 정책은 그 근본 취지도 어긋났고, 추진과정도 빗나갔다. 당국은 농촌 살리기에 수십조원을 쏟아부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그 막대한 자금은 무거운 멍에가 되어 농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 탁상행정은 농민들을 빚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 사슬에서 벗어나려는 비극을 양산했다.

식량 위기는 인류 최대의 난제다. 식량은 가장 무서운 무기이기도 하다. 에너지 문제 역시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힘겨운 도전이긴 하다. 그러나 식량의 문제를 능가할 수는 없다. 에너지가 부족하면 차를 세워놓으면 된다. 그러나 식량이 입을 세워둘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국내에서 생산되는 식량으로는 석 달을 겨우 버틸 정도다. 유일한 자급자족 식량인 쌀을 그토록 천대할 처지가 결코 못된다.

쌀을 공산품과 같은 줄에 세워놓고 경쟁력을 판단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필요할 때 생산라인을 증설해 수요에 대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농촌은 정신적 양식의 곳간이라는 점도 지나칠 일이 아니다.

농촌은 문명의 위기에서 탈출해 피할 수 있는 마지막 피난처이기도 하다. 적어도 농촌은 삶에 지친 이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줄 포근한 안식처다. 사람들이 떠난 텅 빈 농촌 들판이라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어느 시인이 거기서 자연과 농촌을 노래할 것인가. 쌀을 살리는 것은 비단 농민을 살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쌀에 어린 섭리를 곱씹어 볼 일이다.

농촌에 뼈를 묻으려는 젊은이들이 아직 남아 있음은 희망이다. ㅇ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대학생과 고등학생, 두 아들을 둔 쉰한 살 가장이다. 소작논 33마지기를 포함해 45마지기 논 농사를 짓고 있다. 내후년이면 두 아들이 함께 대학을 다니게 될 것이다. ‘천만원 등록금’이 걱정이긴 하다. 빠듯한 살림에 학자금 융자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그는 농촌의 미래를 낙관한다. “인류는 머잖아 필연적으로 식량 문제에 맞닥뜨리지 않겠는가. 현재 농정의 실패는 역설적으로 농촌과 농민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믿는다. 뒷북치는 농정도 그 방향을 선회하지 않겠는가.”

농촌문제 답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자연의 섭리인가, 인간의 산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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