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종 선임기자
농부 박문기(63·캐리커처)는 전북 정읍시 입암면 진등마을에 산다. 국립공원 내장산에서 이어지는 삼신산 자락이다. 삼만평이나 되는 그의 광활한 들판은 지금 황금색 벼이삭의 물결로 출렁거린다.
평생 고향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토종 농사꾼’이다. 유기농이니, 무공해 친환경 농법이니 하는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 그저 하늘과 땅의 절기와 순환에 맞춰 거름을 내고, 써레질을 하는 전래 농법, 전통 방식대로 씨 뿌리고 거뒀다. 그는 “사람과 뭇생명이 먹는 농산물에 농약 같은 독을 뿌리는 것은 천지만물에 죄짓는 짓”이라고 했다.
그의 농업은 ‘뿌리 깊은’ 민족의 첫 농사, 조선상고사와 깊이 연결돼 있다. <맥이> <대동이> <본주> <숟가락> 등 상고사 관련 연구서와 역사소설을 아홉권이나 펴낸 ‘들판(재야)’의 역사학자다. 얼마 전에는 우리 문자의 뿌리와 역사를 밝히는 <정음선생>을 펴냈다. 개천절과 한글날을 지나며 그를 만난 이유다.
평생 고향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토종 농사꾼’이다. 유기농이니, 무공해 친환경 농법이니 하는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 그저 하늘과 땅의 절기와 순환에 맞춰 거름을 내고, 써레질을 하는 전래 농법, 전통 방식대로 씨 뿌리고 거뒀다. 그는 “사람과 뭇생명이 먹는 농산물에 농약 같은 독을 뿌리는 것은 천지만물에 죄짓는 짓”이라고 했다.
그의 농업은 ‘뿌리 깊은’ 민족의 첫 농사, 조선상고사와 깊이 연결돼 있다. <맥이> <대동이> <본주> <숟가락> 등 상고사 관련 연구서와 역사소설을 아홉권이나 펴낸 ‘들판(재야)’의 역사학자다. 얼마 전에는 우리 문자의 뿌리와 역사를 밝히는 <정음선생>을 펴냈다. 개천절과 한글날을 지나며 그를 만난 이유다.
농장 맨꼭대기, 삼신산 기슭에는 환인과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조선 등 개천 이래 ‘동이족’ 역대 창업주 신위를 모신 ‘온조우(溫祖宇)’가 서 있다. 북서쪽 백두산을 향하고 있는 전통 한옥이다. 한때 이곳에 민족 상고사를 가르치는 ‘동이학교’를 열었다. 일제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민족사를 바로잡겠다는 뜻이었다. 지금은 좀더 새로운 ‘창업’을 위해 쉬고 있다.
소위 신식 교육은 국민학교(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다. 대신 어릴 적부터 동네 유학자들에게 ‘문자’(한학)를 배웠다. 강증산과 탄허 스님의 고향답게 정읍 입암에는 뛰어난 스승들이 많았다. 어머니 최영단도 그의 스승이었다. 그는 특별한 환경에서 공부하면서 모든 문자에는 세상 이치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말 그대로 문리(文理)가 트이더란다. “기운을 뜻하는 기(氣)자, 정신을 뜻하는 정(精)자에는 쌀 미(米)자가 들어있다. 사람의 기운이나 정신이 모두 쌀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문자의 근원에 대한 탐구는 그의 관심을 맥(貊)과 동이(東夷) 등 민족 상고사까지 끌어올렸다. 우리 옛 민족인 동이는 중원을 주름잡던 거대 세력이었다. 대륙을 호령하며 말 달리고 큰 활(大+弓=夷)을 쏘던 대동이 민족사는 장엄하고 통쾌했다.
그에게 특히 눈길을 끄는 건 ‘한자(漢字)’에 대한 ‘파격적’인 인식이다. “한자는 중국에서 차용한 외래문자가 아니라 우리 동이족 고유의 문자다. 세종께서 지으신 ‘훈민정음’은 백성들이 문자를 천지자연의 바른 소리(정음)로 읽도록 하기 위해 만든 국민교과서다.”
일단 일반의 통념과 기존 학계의 정설을 뒤집을 만큼 도발적이고 흥미롭다. 그는 한자가 우리글이라는 근거로 옛 조선의 문화풍속을 내세웠다. 집 가(家)자에 돼지 시(豕)자가 들어간 것은 집안에서 돼지를 키웠던 우리 민족의 풍습에서 유래했다. 아직도 전라도와 제주도에 풍습이 남아있다. 논 답(畓)자도 중국에는 없다. 세상에서 우리 민족이 가장 먼저 시작한 콩, 쌀, 숟가락 문화는 많은 한자에 그대로 남아있다.
문자의 뜻과 입모양, 발음도 한자가 우리글임을 방증한다. 호흡(呼吸)의 경우 우리 발음으로는 날숨과 들숨의 느낌이 분명하다. 중국인들은 ‘흐쓰’라고 발음해 소리가 다 밖으로 나가버린다. 사람의 입이 하나가 되는 모습인 합(合)은 ‘허’로, 출입(出入)은 ‘츄로’로 모두 입이 열린다. 일자일음(一字一音) 원칙에도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투수(投手)는 네 소리인 ‘터우서우’로 공을 던지는 느낌이 없다. 주은래(周恩來)는 다섯 소리인 ‘저우언라이’라고 읽는다.
그렇다면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무엇인가. 그는 훈민정음 어디에도 한자, 한글이라는 말은 없다고 대답했다. 본래 언문(諺文)은 문자의 발음을 바르게 표기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훈민정음 서문을 ‘우리나라 문자말의 음절이 중국에서는 달라 문자로서는 서로 시원하게 통하지 아니할세라’라고 풀이한다. 한글학자들이 ‘문자’를 ‘한자’로, ‘중국에 달라’를 ‘중국과 달라’라고 잘못 해석하면서 훈민정음의 뜻이 왜곡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 어느 나라 말이든 발음대로 다 표기할 수 있는 가장 과학적 우리 문자에서 말글(한글)과 글말(한자)은 새의 양 날개, 수레의 양 바퀴와 같다고 했다. 훈민정음 창제 때부터 두 문자는 상호보완의 관계였다. 따라서 말글과 글말을 함께 써야 완벽하게 말하고, 그 뜻을 확실히 알 수 있다. 한쪽 날개, 한쪽 바퀴를 버린 한글전용정책과 한자원음주의 때문에 대다수의 국민이 문자맹인이 되었다고 탄식했다. 사실 그의 주장을 귀담아 들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요즘들어 몇몇 동조하는 학자가 있다는 게 위안이다.
그는 “오늘날 농사는 농약의, 역사는 왜곡의, 문자는 무지의 ‘맹독’에 깊이 중독돼 있다”고 말했다. 천자문 등 요즘의 한자 교육 열기를 보면서 우리 문자와 함께 민족혼의 생명력이 되살아나길 바라고 있다. 올 가을 추수를 마치면 문자가 만들어진 원리인 우리 풍속을 토대로 한문을 쉽게 익힐 수 있는 <정음천자문>을 쓸 계획이다. 농사가 제일 중요한 직분이라고 말하는 그는 늘 ‘밥숟가락이 부끄럽지 않게’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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