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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과의 대화

[고은과의 대화](4)양 세기의 달빛…나는 근세의 학식보다 고대의 신명을 더 믿는다네

고은

소설가·평론가 김형수 = 지난번에 호흡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한 시대의 지적 변화와 역동성의 현장을 제가 열쇠구멍 같은 틈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나 봅니다.

고은 = 우리는 지금 마주 앉았으나 이 자리는 실내가 아니네. 산야의 한 마루턱이 옳겠어. 그래서 ‘우리 차를 마실까, 술을 마실까’ 하는 오랜만의 회포에 맞는 분위기도 아니고, ‘북극의 북쪽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순진한 질의응답의 환경도 아닐세. 좀 더 두 세기에 걸친 신세타령을 할 필요가 있네.

김형수 = 두 세기를 주목하시는 이유는 지구의 어느 기슭에서 맞는 전환기적 감수성을 깨우기 위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고은 = 내가 숨쉬는 시대, 즉 동시대라든가 당대라든가 하는 자신의 삶의 시간 안에서 ‘현재’라는 존재감의 즉각성은 참으로 매혹적이야. ‘현재’라는 말은 ‘현재!’ 또는 ‘아, 나의 현재여!’라고 읊고 싶어지지. 그런데 현재란, 실은 이것처럼 종잡을 수 없는 것도 없어. 오리무중 같은 것이지. 이것이자마자 바로 그것이 되고, 이것이 어느새 저것이 되고 말지. 현재의 진정한 의미는 그래서 불가능한 것인지도 몰라. 고대 인도는 극소의 시간과 무한으로서의 시간을 다 터득하고 있었어. 찰나라는 것도 거기서 왔지. 1찰나가 0.013초에 해당하지. 이 현재의 1찰나가 곧 현재야. 인도의 찰나가 중국에서는 수유(須臾)이지. 지금이라고 말하면 바로 그것은 지금의 과거가 되는 것. 그래서 현재란 과거와 미래 사이의 한 생각(念)이고 하나의 환각이기도 해. 이런 의미 불능이지만, 그러나 시간의 제도 속에서 사는 인간의 척도로서는 과거는 현재들의 집적물임에 틀림없고 미래는 곧 오거나 차츰차츰 오거나 할 현재에의 가능성 아니겠는가. 여기에서 현재는 무한한 두 쪽의 쌍방향을 위한 모태이기도 하겠지. 서양 달력의 1월만 야누스가 아니야. 이럴 경우 현재만큼, 아니 내가 사는 어제오늘로서의 당대에 약간의 전망을 보탠 미래까지의 당대만큼 총합의 크기를 갖춘 것도 없어.

그림 임옥상 화백

▲의식·감성 영역을 벗어난 원초적 미지의 거기가 시의 궁극일 거야. 5차원의 어떤 산물을 꿈꾸는 일인 것이지.
김형수 = 현재란 과거의 일부이자 미래의 일부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돌아보면, 노동자 전태일의 죽음으로 열리고 노동자 김경숙의 죽음으로 닫혔다는 유신체제 말기의 고은 정신은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시였습니다. 그 시절에 ‘역사를 살자’라는 수사를 널리 회자시켰는데, 같은 맥락인 거지요?

고은 = 사실 내가 지난 세기 1970년대 후기의 한 벼랑서기로 문학과 역사를 하나의 동의어로 몰아붙일 때 그것은 광기이기도 했지만 실재적이기도 했어. 그것이란 서술 행위나 묘사 행위로서 문학의 기본이 과거 안에서만 서술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빌미를 삼았어. 이를테면 한 문장은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거의가 과거완료형이라는 것에 착안할 때 우리의 모든 현재는 이미 과거에 편입되고 말지. ‘나는 무엇 무엇을 하였다’로 쓸 수밖에 없는 과거 상태로 행위를 표현하는 것이 그것이지. 이따금 ‘…한다’라는 표기의 진행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일세.

김형수 = 유신체제가 저물어간 거리에서 <실천문학> 창간호를 샀어요. 무단이라는 이름으로 쓴 ‘벽시’를 읽고 얼마나 전율했는지요. 그 어둠 속의 목소리가 선생님의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한국문학이 봉제공장의 여공들에게도 사랑받던 시절입니다. 그러한 시를 통해 노동자의 신체도, 땀방울도, 숨소리도, 그림자도 다 역사일 수 있었어요.

고은 = 인간은 자궁 속에서부터 역사가인지 모르지. 사마천과 기번 그리고 신채호만이 역사가가 아닌 이 엄청난 사실 이쪽에서 말일세 그려. 그런데 산문의 경우와는 다른 차원에서 시는 ‘하리라’ ‘할 것이다’ 따위 미래 지시의 비장한 표현의 극적인 효과를 노리는 바가 없지 않으나 대부분의 시적 표현 형식도 과거완료형의 안전성에서 놀기 십상이지. 물고기가 물속에서 노는 것처럼. 그래서 과거와 끊어라! 라고 외치는 저 처연한 명제에 홀딱 반하다가도 그것이 한갓 추억 속의 구호가 되는 경험도 없지 않아.

김형수=어느 시기에 ‘역사로부터 돌아오라’고 외치셨는데, 그 역시 현실로서의 역사 행위를 비판하신 게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현실을 도그마화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라 보았습니다.

고은 = 문학과 역사의 동의성 부여는 고백하자면, 그 당시 현실에의 저항으로서의 의미가 역사의식 또는 역사감의 정당성에 부합한다고 여기는 데서 생겨났어. 즉 현실의 길은 역사의 길에 끝내 접어들고 만다는 것이었지. 그런 나머지 인간의 모든 표현은 이미 그것이 삶의 현재에 임하는 행위임에도 과거라는 역사 행위에 이르는 셈이었어.

▲우리는 지금 과거라는 삶의 역사를 파괴하고 있는지 몰라.
시몬 베유는 이를 두고 가장 큰 범죄라고 했어.

김형수 = 현재가 과거를 탄생시키기도 하고, 또 미래를 소멸시키기도 하는 그런 감격적인 역사 현장이라는 것을 21세기의 서울은 잊은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근대의 범람’에 지친 걸까요?

고은 = 특히 긴 세월로서의 농업사회를 산 이래의 우리에게도 지난 20세기까지의 과거라는 문화 질량 안에는 온갖 당대의 사조와 경향들이 쌓여 온 것 아닌가. 고대 중세는 그만두고라도 근세의 고전주의, 낭만주의, 자연주의, 사실주의, 모더니즘 그밖에도 수많은 유파의 개성들이 근대 범주를 넘어서서 감당하기 힘든 해일처럼, 아니면 난폭한 점령군 선발대처럼 밀어닥침으로써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선택할지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었지.

김형수 = 30년의 세월로 300년을 따라잡는 질풍노도의 시대였으니까요.

고은 = 지난날 과거지향으로서의 수구적인 유교의 추원보본(追遠報本)이나 어린 아이조차 애늙은이로 점잖빼기-젊지 않은 노릇-에 길들여지는 봉건 풍토의 그 논어 만독(萬讀), 맹자 만독이나 추고(訓話) 그리고 군사부(君師父)에의 맹종과는 또 다른 타자의 동서남북에 노출된 새 외래 문물로서의 과거 또한 벅찬 시련의 현장이었어. 이광수의 톨스토이 시늉의 숭배가 계몽기 명성으로서 굴절이 되거나 그 뒤를 정지용의 시에 ‘카페 프란스’ 운운의 모더니즘으로서의 감각 장식이 재치 있게 끼어든 것들은 그렇다치고 더 낮은 수준의 서구문학 감정이입의 행태도 숨길 수 없었어.

김형수 = 근대성의 개척자가 아니라 학습자라고 표현하신 적도 있는데요.

고은 = 서구문학이라 해도 그야말로 근대화 곧 서구화의 등식대로 근대문학이 온 것이 아니라 거의 시대 초월의 여러 가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작위적으로 와 버렸어. 그래서 단테도 T S 엘리엇하고 한자리에 앉아 있어도 무방했지. <돈키호테>가 먼저인지 <일리어드>가 먼저인지는 별 의미가 없는 공시적 수용 대상이었으니까.

김형수 = 토속이 권위를 잃는 순간 서양의 것은 옛것도 새것이 되고, 떠나야 할 것도 돌아와야 할 것이 되었군요. 그 많은 문화기호들로 한국은 얼마나 비만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은 = 강의 하류는 온갖 크고 작은 지류의 내들을 다 받아들인 종합의 탁류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로서는 근대문학의 꿈 많은 타자 체험 안에서 혼란을 떼어낼 수 없었지. 저 시원의 분수령의 물방울 하나하나로 시작한 작은 실개천이 시냇물로 그리고 그 너비가 벌어져가는 상류의 강물, 중류의 강물을 거쳐 하류에 이르는 여러 흐름의 국면 충족이나 국면 전환도 생략한 채 한꺼번에 하류라는 범람 위에 떠다니게 되었지. 참 서울 마포라는 한강 하류의 한 거점의 이름은 그 강물 위쪽 강원도 정선 일대의 삼(麻)을 뗏목 물길을 통해 실어다가 집산하는 포구인 마토 삼포목 장(場)에서 생겨난 것이라 하지 않나. 강 위의 것이 강 아래의 것과 맞닿아 있었지. 그런데 우리 현대문학에서의 권위 있는 손님들을 보면, 서구문학에서 괴테의 18세기와 보들레르의 19세기는 숙질간이 아니라 사촌이나 제종간의 맞촌수였지.

김형수 = 강은 흐르다 다른 물줄기가 끼어들면 더 넓은 강이 되면서 이름을 바꾸는데, 상류·중류도 없이 하류가 된다는 건 참 기형적인 순리 이탈입니다.

고은 = 이런 당대를 허겁지겁 살아오는 동안 우리가 문학 안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지적 생활 속에서 너무 많은 과거의 유산 군림으로 시집살이를 톡톡히 해낸 것이네. 현대성이라는 것, 모더니즘이라는 것에 들어있는,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과거성이라는 것 그리고 역사적이라는 것의 문화 완료적인 요소들이 당장의 현재화와 구별될 수 없었어.

김형수 = 서양의 과거들 밑에서 시집살이를 했다는 비유는 참으로 절묘합니다. 지금도 모든 게 주장이고 모든 게 주장이 아닌, 목하 백가쟁명의 시대가 된 것은 그런 후유증이 아닌가 모르겠어요.

고은 = 함무라비 법전과 나폴레옹 법전이나 구시대의 대륙법과 영국법의 위화도 그래서 우리 근대의 여러 사회 규범에 제멋대로 작동되었는지 몰라. 어제오늘까지도 그 힘이 막강한 한국사 실증사관 계열, 그 연원은 독일의 랑케 사관이었지. 전형적인 서구 중심 사관인데 그 랑케의 제자가 일본 동경제대의 역사학을 열었어. 그 독일사학의 제자가 바로 식민지 경성제대 사학 교수로 건너왔지. 거기서 식민지 시대와 해방 분단 시대의 한국사학 주류가 굳어진 것이지. 이는 단재사관이나 그 밖의 역사 서술이나 연구의 입장과는 또 다른 ‘정통성’으로 자처한다네.

김형수 = 그런 일이 있었군요.

고은 = 아무튼 지난 세기로서의 20세기가 그 후기로부터 오늘의 21세기 첨단 문명에 이르는 동안 어느새 우리가 살아온 것과는 다른 것들에 둘러싸인 환경이 되었어. 그래서 과거란 외국이다 하는 속담 이쪽에서 당대의 첨단에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는 전(前)시대적 정서나 관습은 첨단으로부터 낡은 세대 또는 타자화의 세대로 내몰리기도 하겠지. 우선 활자문명의 주변화가 가속화되고 있어. 이에 비해 영상이나 전자문명의 무혈점령 같은 현실에서는 현실이 가상현실에 압도당하고 있기까지 하네 그려.

김형수 = 활자의 전성시대가 지나갔다는 것, 전자문명의 중흥기가 왔다는 것, 현실이 가상현실에 압도당하고 있다는 것은 인지가 되나 그것이 문자의 위기로 오해되는 것은 경계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가상현실은 고도의 추상 언어를 만나지 못하면 쉽게 부서질 것입니다. 영상매체는 개념을 취급하기 어렵잖습니까.

고은 = 하지만 이런 자제되지 않는 팽창은 그 자체의 숙명인 끊임없는 교체와 변동의 단명에 의해 지극히 유동적인 것이 아닌가 해. 오늘의 호들갑은 곧 어제의 쓰레기가 되는 것 말이야. 이제 고전 무효의 시대야. 인간의 수명은 길어지는데 문명의 수명은 갈수록 짧아지지. 자본주의의 시장 욕망의 영원한 갈증 때문이야. 공급이 수요를 지배함으로써 수요라는 소비자는 밤낮을 모르게 시장의 탐욕에 의해서 혹사당하게 되지. 이동전화의 진화 좀 생각해 봐.

김형수 = 현실이 폭력적으로 군림할 때 그 현실을 극복하는 높은 역사의식의 공급이 절실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끝을 알 수 없는 ‘미완성적 허기’의 문명을 어디까지 따라가야 하는지….

고은 = 나의 당대라는 것도 조선 후기의 자연부락에서 시작해 이제 CNN 날씨 예보에도 소개되는 세계 몇 대 도시 중의 하나인 서울의 과밀인구 속의 인간이란 한 모래알이나 익명의 소도구로 있게 되었어.

김형수 = 그래서 비행기를 타는 것도 ‘이동한다’가 아니라 ‘이동하는 기계에 갇힌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시각을 비롯한 오관이 공간을 통과해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어느 지점에서 어느 지점으로 옮겨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은 = 하늘도 이전의 하늘이 아니야. 산천도 이전의 산천이 아니야. 인간 하나하나의 근원인 고향도 없어져가지. 추석 귀성객 몇 천만이라는 대이동의 드라마는 고향의 무리가 아니라 고향 상실의 무리일 것이야. 이제 고향조차도 공간 속에 있지 않고 농경시대의 어린 시절을 지닌 노인들의 희미꾸레한 시간 속에 잠겨 있을 뿐. 고향의 정서도 아파트 단지의 핵가족으로 세밀화되어 버렸어. 오촌 팔촌 따위가 없어졌어. 아니 핵가족으로부터도…. 원룸 시대가 아닌가.

김형수 = 산을 넘고 강을 건너던 나그네는 소멸되고, 마네킹이어도 상관없고 사람이어도 상관없는 사물로서의 풍경만 존재하는 현실이 끔찍합니다. 지난밤에 마주친 바퀴벌레에게 오피스텔과 아파트는 무슨 차이가 있겠는지요?

고은 = 여기까지 살아오는 동안의 두 세기 속에 명멸한 풍경들은 풍경들끼리도 서로 낯모르는 경우가 많다네. 뭐랄까, 이런 단절은 과거나 살아온 이전의 지혜들과의 단절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어. 나는 근세의 학식보다 고대의 신명(神明)을 더 믿는다네. 그것은 내가 해석이나 논리를 푸대접하는 반면 주술에의 혈연성에 내 정신의 촉각을 두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 옛날 옛적 비단이나 무명 옷감도 짜지 못하던 선사시대의 삶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행성이 가지고 있는 무진장의 힘과 밀접하게 닿아 있었지. 오늘날 인터넷 사용의 민첩함 이상으로 그런 힘을 활용했어. 대서양 몇 천㎞의 고향을 찾아가는 뱀장어나 한반도 동해안 오지의 산골 시냇물까지 기어이 찾아오는 북대서양 연어의 장엄한 귀향 여로 역시 그런 지구 환경의 작용에 통달한 자연의 지혜겠지. 두뇌의 좌뇌 개발 이전의 그것이지.

김형수 = ‘고은 등단 50주년 심포지엄’ 때 “고은의 자취는 신작로도 이정표도 없이 황야를 가로지른 한국 야성사의 도전과 고독 속에 기록되어야 한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 장엄한 정신을 일깨우는 시가 ‘부활’입니다. 동해안 바닷가에 빨래처럼 널린 오징어들에게 다시 살아나서 해조음을 들으라 하시던 절창의 포효를 오늘 다시 듣습니다.

고은 = 그래서 나는 진짜배기 시는 오차원의 어떤 산물이라고 꿈꾸는 일에 찬동한다네. 말하자면 의식이나 감성의 영역을 벗어난 원초적 미지, 거기가 시의 궁극일 것이야. 나 자신의 시간 1차원이나 공간 3차원의 그 한계 밖의 우주적 자유란 현대문명의 기계 놀이로부터 너무 멀어. 언어도 기껏해야 이 4차원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어. 역사의 현 단계란 우리가 너무 기계장치에 대한 통제능력이 점점 없어진다는 사실을 중요한 문제로 삼아야 하겠네.

김형수 = 21세기가 자주 신화적 상상력에 매혹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구비문학의 한 장르로서 신화가 아니라 분석적 사고의 방해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천재의 영감으로 우주의 깊숙한 비밀에 접근해가는 사유형식으로서 신화 말입니다.

고은 = 아무튼 우리는 지금 과거라는 살아온 삶의 역사를 파괴하고 있는지 몰라. 과거의 파괴가 가장 큰 범죄라고 시몬 베유라는 헌신의 처녀가 말한 적이 있어. 오늘의 현실은 역사망각의 직접성과 눈 먼 정보생산으로 인간 자체가 불가능해 가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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