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지난주에 이화여대에서 ‘원자력과 민주주의’라는 집회가 열렸다. 사흘 동안 계속된 이 집회는, 내가 아는 한, 후쿠시마 참사 이후 한국에서 열린 가장 본격적인 원자력 관련 시민토론회였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역사적인 의의를 가진 집회였다. 적지 않은 사람이 참석해 중요한 정보와 지식을 나누고, 원자력 의존 시스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표현하고 공유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집회의 중요성을 주목하고 그에 상응하는 취재·보도를 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집회에서는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특기할 것은 현재 건설 중인 경주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에 관한 동국대 김익중 교수의 발표 내용이었다. 김 교수는 지난 몇 년간 이 방폐장 건설 현장을 주의 깊게 지켜본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이게 얼마나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공사인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원자력이나 방사능 문제에 관해 언론이 둔감한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원자력 마피아’라고 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익집단이 있고, 그 권력에 기생해 살아가는 전문가·학자·언론이 이 나라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하기는 아무리 양심적인 언론이라 하더라도 살아남자면 광고주와 권력으로부터의 압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후쿠시마라는 대참사를 목격했음에도, 원자력에 대한 언론의 무관심과 침묵이 계속된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지금 독립적인 연구자들의 견해로는 일본 국토의 절반 이상이 방사능으로 오염되었다. 이른바 ‘내부피폭’ 메커니즘, 즉 호흡이나 먹이사슬을 통한 방사성물질의 생체 축적·농축 때문에 앞으로 오랫동안 일본 땅에서 사람들이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되었음이 분명하다. 이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이 심각한 정신적·심리적 장애에 시달리는 것은 필연적이다. 일본이라는 국가는 지금 건강한 삶을 위한 기반을 크게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일본의 부유층과 중산층 다수가 이민을 결심하거나, 적어도 가족의 거주지를 해외로 옮겼거나 옮길 것이라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그래도 일본은 영토가 큰 나라이다. 만약 한국의 원전 한 곳에서라도 중대사고가 터진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자력 관련 문헌과 자료를 집중해서 읽어왔다.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가 지금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어느 날은 심각한 불안 때문에 잠을 설칠 때가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력을 가진 국가들, 즉 미국과 옛 소련과 일본에서 차례차례 중대한 원전 사고가 터졌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은 세계 최고의 원전 밀집 국가이다. 그리고 방사능 대량 유출 사고는 언제나 ‘예상을 초월한’ 원인으로 일어난다는 점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게다가 중대사고가 없어도 원전에서는 평상시에도 미량이지만 늘 방사능이 누출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의료통계학자 제이 굴드가 쓴 <내부의 적>이라는 책이 있다. ‘원자로 주변에서 지내는 생활이 치러야 하는 높은 비용’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책은 원자로 주변 50마일 내지 100마일 내 거주지역에서 암 및 기타 질환이 발생하는 비율이 타지역에 비해 현저히 높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굴드는 가동 중인 원자로에서 끊임없이 누출되는 저선량 방사능에의 일상적 노출로 인한 ‘내부피폭’으로 사람들이 치명적인 건강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미국 보건당국의 공식자료에 대한 꼼꼼한 검증을 거쳐서 명확히 입증했다. 원자력 당국은 늘 허용기준치 운운하며 미량의 방사능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지만, 방사능에 관한 한, 기준치라는 것은 의학적 근거가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원자력 시스템을 조속히 폐기해야 할 이유는 허다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원자력 시스템을 이대로 방치하면 인간생존의 자연적 토대는 물론이고, 사회적 기반 자체도 조만간 반드시 붕괴할 것이라는 점이다. 원자력을 그만두면 대안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안을 운위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즉, 우리의 생활이 원자력이라는 극단적으로 불합리한 에너지에 의존하면서까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해야 성립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우리가 과연 그런 생활을 긍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새로운 삶에 대한 근원적인 욕망과 상상력이다. 원자력 시스템을 폐기하는 것이 단순히 전력생산 시스템의 변경을 뜻하는 것일 수는 없다.
이화여대의 집회에서 문규현 신부가 들려준 감동적인 일화가 있다. 2003년 부안 방폐장 반대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던 당시, 자신의 전 재산에 해당하는 소를 판 돈을 운동에 보태달라고 찾아온 시골 할머니가 있었다. 홀몸으로 평생 막노동을 하면서 여섯 자녀를 키운 그 할머니는, 자기 자식들은 장성해 외지로 나갔지만, 남의 자식도 내 자식이라며 아낌없이 운동을 돕고자 했다. 좋은 삶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그것은 아마도 풀뿌리 민중사회에서 오래 계속되어온, 하지만 그동안 우리 대부분이 잊고 있었던, 상부상조와 공생공락의 전통으로 회귀해야만 획득 가능한 능력인지 모른다.
※‘수하한화(樹下閑話)’는 나무 아래서 나누는 한담.
집회에서는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특기할 것은 현재 건설 중인 경주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에 관한 동국대 김익중 교수의 발표 내용이었다. 김 교수는 지난 몇 년간 이 방폐장 건설 현장을 주의 깊게 지켜본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이게 얼마나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공사인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문제의 출발은 방폐장의 부지 선정 자체에 있었다. 즉, 문무왕릉 맞은편 해안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지하시설을 만들고 있는 이곳은 강한 지하수맥이 통과하는 자리다. 공사 중인 지금도 매일 수천t의 물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 콘크리트 공사를 강행·완료한다고 해도, 장차 대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장기적으로 수맥의 세찬 압력을 견뎌낼 수 있는 인공구조물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영구적으로 환경에서 격리시켜야 할 핵폐기물 저장시설을 이런 식으로 짓고 있다는 것은 실로 경악할 일이다. 이것은 무모하다기보다 불가사의한 행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지금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이것을 취재·조사·보도하면서 집요하게 추궁하는 언론이 없기 때문이다.
원자력이나 방사능 문제에 관해 언론이 둔감한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원자력 마피아’라고 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익집단이 있고, 그 권력에 기생해 살아가는 전문가·학자·언론이 이 나라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하기는 아무리 양심적인 언론이라 하더라도 살아남자면 광고주와 권력으로부터의 압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후쿠시마라는 대참사를 목격했음에도, 원자력에 대한 언론의 무관심과 침묵이 계속된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지금 독립적인 연구자들의 견해로는 일본 국토의 절반 이상이 방사능으로 오염되었다. 이른바 ‘내부피폭’ 메커니즘, 즉 호흡이나 먹이사슬을 통한 방사성물질의 생체 축적·농축 때문에 앞으로 오랫동안 일본 땅에서 사람들이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되었음이 분명하다. 이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이 심각한 정신적·심리적 장애에 시달리는 것은 필연적이다. 일본이라는 국가는 지금 건강한 삶을 위한 기반을 크게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일본의 부유층과 중산층 다수가 이민을 결심하거나, 적어도 가족의 거주지를 해외로 옮겼거나 옮길 것이라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그래도 일본은 영토가 큰 나라이다. 만약 한국의 원전 한 곳에서라도 중대사고가 터진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자력 관련 문헌과 자료를 집중해서 읽어왔다.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가 지금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어느 날은 심각한 불안 때문에 잠을 설칠 때가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력을 가진 국가들, 즉 미국과 옛 소련과 일본에서 차례차례 중대한 원전 사고가 터졌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은 세계 최고의 원전 밀집 국가이다. 그리고 방사능 대량 유출 사고는 언제나 ‘예상을 초월한’ 원인으로 일어난다는 점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게다가 중대사고가 없어도 원전에서는 평상시에도 미량이지만 늘 방사능이 누출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의료통계학자 제이 굴드가 쓴 <내부의 적>이라는 책이 있다. ‘원자로 주변에서 지내는 생활이 치러야 하는 높은 비용’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책은 원자로 주변 50마일 내지 100마일 내 거주지역에서 암 및 기타 질환이 발생하는 비율이 타지역에 비해 현저히 높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굴드는 가동 중인 원자로에서 끊임없이 누출되는 저선량 방사능에의 일상적 노출로 인한 ‘내부피폭’으로 사람들이 치명적인 건강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미국 보건당국의 공식자료에 대한 꼼꼼한 검증을 거쳐서 명확히 입증했다. 원자력 당국은 늘 허용기준치 운운하며 미량의 방사능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지만, 방사능에 관한 한, 기준치라는 것은 의학적 근거가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원자력 시스템을 조속히 폐기해야 할 이유는 허다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원자력 시스템을 이대로 방치하면 인간생존의 자연적 토대는 물론이고, 사회적 기반 자체도 조만간 반드시 붕괴할 것이라는 점이다. 원자력을 그만두면 대안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안을 운위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즉, 우리의 생활이 원자력이라는 극단적으로 불합리한 에너지에 의존하면서까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해야 성립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우리가 과연 그런 생활을 긍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새로운 삶에 대한 근원적인 욕망과 상상력이다. 원자력 시스템을 폐기하는 것이 단순히 전력생산 시스템의 변경을 뜻하는 것일 수는 없다.
이화여대의 집회에서 문규현 신부가 들려준 감동적인 일화가 있다. 2003년 부안 방폐장 반대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던 당시, 자신의 전 재산에 해당하는 소를 판 돈을 운동에 보태달라고 찾아온 시골 할머니가 있었다. 홀몸으로 평생 막노동을 하면서 여섯 자녀를 키운 그 할머니는, 자기 자식들은 장성해 외지로 나갔지만, 남의 자식도 내 자식이라며 아낌없이 운동을 돕고자 했다. 좋은 삶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그것은 아마도 풀뿌리 민중사회에서 오래 계속되어온, 하지만 그동안 우리 대부분이 잊고 있었던, 상부상조와 공생공락의 전통으로 회귀해야만 획득 가능한 능력인지 모른다.
※‘수하한화(樹下閑話)’는 나무 아래서 나누는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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