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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에 대하여

[낮은 목소리로]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강광석 | 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9월6일까지 6만8000원 하던 나락값이 하루 만에 1만원 떨어졌습니다. 9월7일 정부는 2009년산 나락 5만t을 긴급 공매했습니다. 5만원에 구입한 나락을 2만3500원에 팔았습니다. 시중에 20㎏ 쌀 한 포대에 2만5000원 하는, 특별 한정판매라고 소비자를 유혹하는 쌀이 2009년산입니다. 정부는 수입쌀 80㎏을 6만원에 팝니다. 원가 11만원짜리입니다. 2009년산과 수입쌀을 섞어 팔면 금상첨화이지요. 장사하는 사람들이 모를 리 없습니다. 싼 정부미와 수입미를 부자들은 먹지 않습니다. 그게 가슴 아픕니다.

물가 인상의 주범으로 농산물이 공개 수배되고 농민들은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쌀이 본보기로 당하고 있습니다.

농민이 일갈하기에 조금 부담스럽지만, 물가를 잡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환율을 내리거나 금리를 인상하거나, 시기와 조건에 따라 이 둘을 유기적으로 배합해야 합니다.

정부는 고환율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습니다. 747 공약을 억척스럽게 관철하기 위해,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보장하기 위해 환율을 인상했지만 돌아온 것은 서민 물가 상승이었습니다. 밀, 콩, 옥수수의 국제 시세가 지난해 대비 평균 40% 인상되었습니다. 라면값, 사료값이 다른 나라보다 많이 인상되었습니다. 환율 정책의 실패 때문입니다.

시중에 풀린 다량의 유동자금을 조절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금리 인상입니다. 시장에 있는 돈을 한국은행 금고로 가져오는 가장 유력한 방법입니다만 이게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문제는 가계대출입니다. 약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대출은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입니다. 내수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극히 고용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조그마한 충격도 흡수할 힘을 잃어버린 가계에 금리 인상은 사형선고와 같습니다.

정부의 친기업 정책으로 대기업 금고는 돈으로 넘치지만 고용은 늘지 않고 서민은 벼랑끝으로 몰렸습니다.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듣기 좋은 말로 비정규직을 양산하며 주가를 올렸지만 그 열매는 외국인 투자자가 대부분 차지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또 4470억달러에 달하는 양적완화를 단행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좋은 복사기로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유일한 나라, 미국의 통화 팽창은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부를 것이며 비대해진 금융자본은 이 돈으로 다시 주식과 선물 시장을 장악할 것입니다. 원유가, 곡물가, 금값은 줄줄이 인상될 것입니다.

국내 농산물 가격이 오른 것은 사실입니다만 국제 시세 상승폭보다는 작습니다. 모든 농산물 가격이 오른 것도 아닙니다. 포도는 한 상자에 1만5000원 합니다. 사과, 배 가격이 올랐다고 난리들입니다만 농가 입장에서 생산량은 지난해의 절반 수준입니다. 하루 세끼 밥을 고봉으로 먹어도 쌀값은 서울 지하철 1구역 요금보다 쌉니다. 지하철 요금을 150원 올려도 세상은 멀쩡하지만 쌀값이 100원 오르면 난리가 납니다. 비료값이 한번에 30% 올라도 조용했던 정부가 쌀값이 조금 오르니 마치 서민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낌없이 다해온 정부처럼 호들갑을 떱니다. 지금 쌀값이 10년 전 쌀값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고진하게 농사만 하는 형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대로는 버티지 못한다는 말이었습니다. 형님은 소 30마리를 10년 넘게 길렀습니다. 지금은 소가 사료를 먹는 것이 아니라 사료가 소를 먹는다고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도 하기 전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약속했습니다. ‘뼛속까지 친미·친일을 할 사람’이니 미국산 갈비까지 수입했습니다.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서 광우병소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보고 눈물을 흘렸답니다. 미국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자신의 과오에 대한 참회의 눈물이었겠죠. 전체 농가소득 총액 1, 2위가 쌀과 한우입니다.

쌀 가격은 10년 뒤로 후퇴했고 수입 쇠고기는 전체 시장의 60%를 장악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은 ‘농민들은 앞으로도 계속 죽으세요’라는 말과 같습니다.

작금의 농산물 값 폭락과 폭등의 널뛰기 현상은 정부의 시장 맹신에 대한 경고요, 식량위기의 전조입니다. 정부의 농산물 시장에 대한 개입과 조절, 통제에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농민들에게는 생산비가 보장되고 국민에게는 적정한 가격에 농산물을 풍부하게 공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주요 농산물에 대한 국가수매제가 한 방법입니다. 정부와 국민, 농민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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