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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로]농산물은 공공재다

강광석 | 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상반기 물가상승률이 3위를 기록했는데 주범이 농산물값 폭등이랍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농산물값이 예외품목 없이 폭락한 6월 중순에도 물가가 4% 올랐는데 농산물값이 폭등한 지금도 4% 정도 올랐다고 하니 말입니다. 최근 정부가 물가관리 경제장관회의라는 것을 했습니다. 물가를 잘 관리하지 못해 혼난 장관들이 대통령의 명을 받고 1주일마다 회의를 한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청사에서 회의를 하지 않고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했습니다. 이른바 ‘푸성귀 물가 잡기 대책회의’인 셈입니다.

배추값이 보름 사이 2배 오르고, 상추가 3배, 열무가 2배, 오이와 호박이 3배 이런 식입니다. 농산물 생산·수급 예측 시스템을 정밀하게 보완하고 외식업소 가격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가격안정모범업소에 지원을 확대하는 계획을 대책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많이 배워 똑똑하다는 장관들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밥값이 아까운 것들뿐입니다.

설령 생산·수급 통계를 정확하게 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습니다.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킬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통계는 그냥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식당 음식가격을 잡기 위해 값싼 밥집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기름값을 싸게 받는 주유소에 국민 세금으로 소득을 지원한다는 말과 같은데 어느 국민이 동의하겠습니까? 그냥 언론용 끼워팔기 대책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농산물값 폭락과 폭등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6월 배추와 대파, 조생종 양파 가격이 폭락해 밭을 갈아엎는 농민이 많았습니다. 밭을 갈아엎는 트랙터의 기름을 면세유로 지원했을 뿐 정부가 한 일은 없습니다. 이 정부는 농산물값 폭락 대책은 없고 폭등 대책만 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 배추 한 포기에 1만5000원 할 때 정부가 한 일은 중국에서 배추를 수입한 것입니다. 올해 돼지고기값이 뛰니 무제한 무관세로 수입한다는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소값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계란값이 한 개에 100원도 안 할 때, 제주도 감자가 밭에서 썩어갈 때 그들은 뒷짐만 지고 있었습니다.

농산물값이 떨어지면 자유시장경제를 하고, 농산물값이 오르면 국가계획경제를 합니다. 농민은 알아서 주린 배를 채워야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허기진 배는 수입 농산물로 채우는 꼴입니다. 이제는 농업에 대한 관점이 근본적으로 변해야 합니다. 농산물은 공공재라는 인식이 문제 해결의 시작입니다. 농민과 소비자가 농산물이라는 매개로 만날 때 주요 중개자는 밭떼기 상인이나 농산물 홈쇼핑이 아니라 국가여야 합니다. 마치 전기와 물, 철도와 공항을 국가가 관리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시장주의에서 국가관리주의로 무게 중심이 단계적으로 계획성 있게 옮겨져야 합니다. 농민들은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받고, 소비자들은 풍부한 농산물을 적정가격에 사서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 식생활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주요 농산물에 대한 국가수매제를 실시해야 합니다. 간단한 것이고 예산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고춧가루를 예로 들면, 국민들이 1년 동안 먹을 고춧가루양을 미리 예측해서 적정 재배면적을 책정합니다. 농민들에게는 생산비에 근거한 적정가격을 제시하고 계약재배를 합니다. 농협이 계약을 대행하면 됩니다. 농협과 농민단체, 정부가 수매가격 책정위원회를 공동으로 구성하면 됩니다. 전체 물량의 30% 정도만 계약재배를 하면 그 물량으로 정부는 시장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정부 수매가격이 시장 기준가격이 되고 정부 보유물량이 전체 시장가격의 안정장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정부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 아닙니다. 고춧가루처럼 저장성이 좋은 농산물이나 주요 곡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품목에 따라 기준량을 정해놓고 매년 3%씩 단계적으로 수매물량을 늘려가는 방식입니다. 가격 등락폭이 큰 채소는 계약재배 물량이 많아야 합니다. 날씨에 따라 단기간 생산량 진폭이 크기 때문입니다. 수매가격 책정위원회는 매년 물가인상률 정도를 농산물 가격에 반영하면 될 것입니다.

농업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입니다. 국제 곡물가 상승과 이상기후 등으로 식량위기가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요 농산물에 대한 국가수매제가 WTO 협정에 위배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사실 WTO 이전부터 다 실시한 정책들입니다. 선진국이 실시하고 있는 최저가격보장제는 국가수매제의 변형입니다. 정책입안자의 철학이 문제이지요. 자유시장주의는 저잣거리 귀퉁이에서조차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농업에 대한 국가관리주의가 글로벌 스탠더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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