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ㆍ“슬픔의 노무현 보내고, 희망의 노무현 맞는 추모가 됐어요”
5월이다. 이 땅의 사람들 중 5월이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들이 많을 테지만 나 역시 그렇다. 별 볼일도 없던 촌놈, 가진 거라곤 마이크 잡는 재주밖에 없던 내 이름 앞에 지금은 많은 것이 놓여 있다. 깜냥도 되지 않는 내게 많은 분들이 무겁고, 과분하고, 부담스러울 정도의 사랑과 의미를 입혀주셨다. 굳이 따져보자면 2년 전 5월, 그날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내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그분이 떠난 그날. 나는 이젠 ‘슬픈 노무현’은 보내드리고 ‘기쁜 노무현’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래서 21일, 노란 바람개비가 마을어귀부터 사람들을 맞는 봉하마을을 찾았다. 6000명의 사람들 앞에서 ‘토크콘서트’를 열고 한바탕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심지어 머리에 물을 뿌리고 ‘아파트’까지 부르며 ‘오버’했다. 사람들은 크게 웃었다. 아저씨의 오랜 동지인 노무현재단 문재인 이사장(59)께서도 객석에 앉아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과장하자면 내 인생 최고의 무대였다.
-사실은 좀 고민했어요. 덥석 토크콘서트를 하겠다고 해놓고는, 묘역 앞에서 이래도 되나 싶었거든요.
“아니에요. 정말 좋았어요. 제가 20일 창원 추모제에 갔는데, 웃으면서 즐겁게 하자고 했는데도 자꾸 숙연해지는 거예요. 추모시도 낭송하고 이러니까 여기저기서 훌쩍이고. 그런데 오늘은 할 이야기 다 하면서 유쾌하게 웃고, 그러면서도 마음속에 중요한 메시지를 안고 갈 수 있잖아요. 이런 추모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5월이다. 이 땅의 사람들 중 5월이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들이 많을 테지만 나 역시 그렇다. 별 볼일도 없던 촌놈, 가진 거라곤 마이크 잡는 재주밖에 없던 내 이름 앞에 지금은 많은 것이 놓여 있다. 깜냥도 되지 않는 내게 많은 분들이 무겁고, 과분하고, 부담스러울 정도의 사랑과 의미를 입혀주셨다. 굳이 따져보자면 2년 전 5월, 그날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내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그분이 떠난 그날. 나는 이젠 ‘슬픈 노무현’은 보내드리고 ‘기쁜 노무현’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래서 21일, 노란 바람개비가 마을어귀부터 사람들을 맞는 봉하마을을 찾았다. 6000명의 사람들 앞에서 ‘토크콘서트’를 열고 한바탕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심지어 머리에 물을 뿌리고 ‘아파트’까지 부르며 ‘오버’했다. 사람들은 크게 웃었다. 아저씨의 오랜 동지인 노무현재단 문재인 이사장(59)께서도 객석에 앉아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과장하자면 내 인생 최고의 무대였다.
-사실은 좀 고민했어요. 덥석 토크콘서트를 하겠다고 해놓고는, 묘역 앞에서 이래도 되나 싶었거든요.
“아니에요. 정말 좋았어요. 제가 20일 창원 추모제에 갔는데, 웃으면서 즐겁게 하자고 했는데도 자꾸 숙연해지는 거예요. 추모시도 낭송하고 이러니까 여기저기서 훌쩍이고. 그런데 오늘은 할 이야기 다 하면서 유쾌하게 웃고, 그러면서도 마음속에 중요한 메시지를 안고 갈 수 있잖아요. 이런 추모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폭파 전문 특전사로 군 복무를 했어요. 당시 여단장이 전두환, 대대장이 장세동이었습니다.”(문 이사장)
“이런 분들에게 자꾸 국가안보를 말하면서 좌파 운운하는 것은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요.”(김제동)
지난 21일 봉하마을에서 열린 ‘김제동 토크콘서트’에 출연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오른쪽)이 활짝 웃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날씨도 정말 좋았어요. 비온다고 걱정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싶었는데 엄청나게 왔어요. 게다가 초반에 제동씨가 다 쓰러뜨렸잖아요. 원래 2주기 추모는 지난해처럼 슬퍼하고 분노하는 식이 아니라, 밝게 웃으며 희망과 새로운 세상을 향한 비전을 갖고자 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 머리로는 도저히 생각 못하는 새로운 발상을 제동씨가 보여줬어요. 전 오늘 문화적 충격, 큰 쇼크를 받았어요.”
-이제 봉하마을은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아요. 아까도 들어오는데 보니까 할아버지와 아빠, 엄마, 아이까지 3대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다리더군요. 비장함도 아니고, 누구를 지지하니 마니도 아니고, 그저 가족들이 함께 대화 나누고, 그렇게 모일 수 있는 것. 그런 매개가 되는 대통령을 가지고 있는 건 퍽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동씨가 그분들을, 각기 다른 세대를 한데 묶고 움직이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걸 시작하게 됐어요?”
-시작한 지 2년 됐는데, 저에게 ‘많은 시간을 갖도록 도움을 주신 분들’ 덕분에 이 콘서트가 성사됐어요. 흐흐흐. 여야를 막론하고 늘 코미디거리를 제공하는 여러 분들 덕에 이 자리에 오게 됐어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전 진지한 건 잘 못하는데 웃으면서 하는 건 좋더라고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이라는 책도 있잖아요. 그게 효과도 훨씬 크죠. 정색하는 것보다 상대를 더 무력화시키거든요.”
-아저씨가 살아계셨다면 이런 공연하고, 다들 모여 노는 것 싫어하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묘역을 꾸민 개념도 그런 거예요. 묘역에 너럭바위를 얹어 놨는데, 그건 아이들도 올라가 장난치고 놀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설계했어요. 임옥상 선생이 만든 흉상의 기본 개념도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다가가 사진 찍고,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을 담은 거예요.”
-대통령님과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에 뵈신 거죠? 어떠셨어요? 주변에 계셨던 분들 중에 가장 오랫동안 함께 지내오신 건데….
“제가 그분을 처음 뵈었을 때 노무현법률사무소를 하고 계셨어요. 당시 부산에서 가장 젊은 변호사였는데 대화를 나눠 보니 소탈해 권위의식이라곤 전혀 없었죠. 우리하고 같은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첫날 뜻이 맞아서 바로 사무실을 같이하게 됐지요.”
▲ “집필 중인 ‘문재인의 운명’, 野통합 보탬되길”
▲ “사저에서 권 여사 위해 ‘특별한 토크 콘서트’…
“세월이, 그 사람이 편하게 해주는 것 같다”며 많이 웃어주셨지요”
- 김제동
-책 쓰신다고 하시던데 언제 나오나요?
“한 4분의 3 정도 썼는데 진도를 못 내고 있어요. 바쁜 때랑 맞물려서. 원래는 2주기에 맞춰 내려고 했거든요.”
-어떤 내용인가요?
“대통령과의 인연, 추억, 참여정부 때의 이야기들을 담았어요. 우리가 1주기 때 <운명이다>라는 제목으로 대통령 자서전을 펴냈죠. 남은 이들도 참여정부 때를 되돌아보면서 기록하고 증언하고 성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내가 가장 대통령님을 오래 겪었으니 나부터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권유가 있었어요. 조만간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나올 겁니다.”
-운명이란 제목이 의미심장해요.
“노 대통령께서도 유서에서 운명이란 말씀을 하셨고 자서전도 그 제목으로 펴냈죠. 생각해보면 제 삶의 길목에서 노 대통령을 만났고 그분을 만난 것이 제 삶에서 결정적인 변곡점이 되어서 이후 제 삶을 이끌어왔어요. 변호사를 천직으로 생각했는데 청와대도 가게 됐고, 결국 지금 노무현재단 이사장까지 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님이 ‘사람 사는 세상’을 많이 이야기하셨는데 현실은 참 먼 것 같아요. 특히 젊은이들에겐 너무 힘든 세상인데, 살아계신다면 젊은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셨을까요?
“그분이 정치인생 내내 강조했던 비전과 핵심이 그거였죠. 사람 사는 세상이란 건 가난하고 배우지 못해도, 소외된 사람들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고, 누구나 당당하게 인간적 존엄성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이야기하거든요.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 대해 배려하고, 연대하고, 잘못된 제도를 개선하는 일들에 참여하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거죠. 늘 그런 당부를 해 오셨고 그걸 말씀하고 싶으셨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변호사님께서 지금 준비하시고, 계획 중이신 게 있으실 텐데요.
“장기적으로는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노무현정신의 가치를 계승, 확산, 발전시키는 것이죠. 그게 재단의 목적이기도 하고요. 정치적인 국면에서 이야기하자면, 당장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 있잖아요.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과제가 절박하고, 그러기 위해선 국민들에게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하죠. 그 희망을 주려면 야권이 통합하거나 연립정부 같은 방안을 통해 하나로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해요. 시민사회가 논의에 참여해서 중재역할을 하기도 하고 장도 마련해줘야죠. 저는 도움이 된다면 그런 역할, 야권통합과 시민사회운동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아니지만 생전에 노 대통령을 뵌 적이 있긴 하다. 재임시절 청와대에 행사가 있어서 들어갔던 때다. 그때 대통령께선 나에게 그러셨다. “<느낌표>하고 <아시아아시아>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아시아>는 내가 진행한 게 아니었다. 워낙 얼어 있던 바람에 그 자리에선 말도 못했고, 나중에 뵙게 되면 따질 작정이었다. 그런데 결국 여쭤보지 못했다.
-특전사 출신이시라면서요? 양복 입으시는 스타일이 특전사 군복 입는 식이에요. 군대 계실 땐 주특기가 뭐였죠?
“기본적으로 산악점프 전문 부대였고, 대외적인 주특기는 폭파였어요. 고교시절에 정학도 받고 대학 와서는 구속, 제적되면서 문제가 많았는데 군대에서는 상복이 터졌어요. 군대 가니까 이런저런 상을 주면서, 사람들이 공수부대 체질이라며 말뚝 박으라더군요.”
-들을수록 타고난 군인정신으로 무장하신 분이네요. 그런 분을,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들이 좌파라고 하는 세상이네요. 이게 완전 코미디죠.
사실 토크콘서트 전에 사저를 방문해 30분 정도 권양숙 여사를 뵈었다. 나는 집앞에서 펼쳐지는 콘서트에 못 나오시는 권 여사를 위해 3분의 1 정도를 그분 앞에서 풀어놨다. 일종의 예행연습이었던 셈이다. 시답잖은 내 이야기에 권 여사께선 많이 웃어주셨다. 난 덮어놓고 고자질과 푸념부터 시작했다. “윤도현씨 정말 비겁하고 나빠요.” 그랬더니 권 여사께선 “두 분이 사이가 안 좋으세요?”라며 놀란 듯 물으셨다. “저랑 같이 방송하잖아요. 그런데 의리 없이 자기 혼자 CF를 세 개나 찍었어요.” 턱없고 황당한 내 푸념에 권 여사께선 한참을 웃으셨다. 그러면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재미있어요?”라며 연방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하셨다. 다행히 표정도 예전보다 밝아지신 듯했다. 권 여사는 “세월이, 그 사람이 나를 편하게 해주는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하시다가도, 바깥을 바라보며 “이렇게 많이들 오셨는데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해서 어떡하나” 하고 걱정스러워하셨다. 또 “저녁을 대접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면서 쑥떡을 권하셨다. 나는 “걱정 마세요. 공연 전에 저 원래 아무것도 안 먹어요”라고 대답하면서 쑥떡을 무려 7개나 집어먹었다. 나오는 길에 비서관들은 “이렇게 웃으시는 모습을 정말 오랜만에 뵌다”고 귀띔해줬다. 괜히 뭉클했다.
그 누군가가 나로 인해 웃을 수 있고, 잠시 행복할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다. 그럴 때마다 이 일을 정말 잘 시작했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든다. 나 하나 망가뜨려서 여러분들이 웃을 수 있다면…. 그래, 이건 내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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