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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여행](4) 정선5일장

정선 | 글·사진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보들보들 봄나물이 소쿠리 한가득

정선5일장에 신토불이 상인 할머니들이 봄나물을 들고 나왔다.

한반도의 중추인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고을, 정선. 이곳에는 두 가지가 서 있다고 한다. 하나는 ‘산’이다. <동국여지승람>은 “정선에서 바라보는 하늘이란 마치 깊은 우물에 비치는 하늘만큼이나 좁다”며 정선의 가파른 산세를 말했다.

다른 하나는 ‘장’이다. 두메산골의 장터는 15년 전까지만 해도 물물교환이 이뤄졌던 곳이다. 끝자리가 2·7인 날마다 열리는 정선5일장에는 고랭지 산나물과 채소가 감질나게 비어져 나온다. 서울에서 차를 몰고 간다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 제천, 영월을 지나야만 다다르는 산골 정선. 한나절로 부족한 이 여정을 자동차 대신 기차에 맡긴다. 기차의 흔들림은 이내 어깨를 덩실대게 하는 정선아리랑의 장단으로 흥겹게 전해온다.

오전 7시50분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하루에 한 번, 서울에서 양평·원주·제천까지 중앙선을 따라 내려가다 다시 영월을 거쳐 정선 아우라지역까지 다다르는 열차 ‘정선선’이다. 마침 정선5일장이 열리는 날만 운행되는 특별열차에 올랐다. 읽고 싶은 책을 가져갔지만 이내 책을 덮고야 말았다. 강원도에 다다를수록 태백산맥이 쏟아놓은 산줄기가 열차로 쏟아지기 때문이다. 마치 포효하는 호랑이가 허리를 곧추세운 듯 산은 수직으로 서 있다. 한반도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국적인 ‘낯섦’과 경이로운 ‘절경’이 열차와 함께 내달린다.

정선선 열차의 즐거움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영월을 지나면서부터는 이름도 생소한 간이역이 요요히 얼굴을 들이민다. 서울에서 출발해 3시간 남짓 지난 후부터 ‘예미-민둥산-별여곡-선평-정선-나전-아우라지’역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낸다. 정선 일대의 광물을 바쁘게 실어 날랐을 기차역에는 이제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운좋게 3분간의 승·하차 시간이 주어지면 열차에서 급히 내려 바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해발 600m를 넘는 민둥산역에서는 동자승의 머리처럼 까슬까슬한 민둥산이 코앞에 펼쳐진다. 열차의 마지막 역인 아우라지역에서 구절역까지는 레일바이크가 운행된다. 정선의 명물 5일장에 가려면 정선역에서 내려야 한다. 서울에서 출발한 지 약 4시간 만인 오전 11시57분 정선군 정선읍에 다다랐다.

정선5일장은 정선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정선읍내에 펼쳐진다. 정선5일장 관광열차인 ‘아리아리열차’를 타면 5일장까지 연계되는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1966년 2월17일부터 열린 장은 끝자리 2·7일마다 선다. 면적 7600㎡의 시장 거리 양편으로는 호미·쇠고랑 등 농기구를 비롯한 각종 물품을 진열한 230개의 상점이 있고 길 가운데에는 160여개의 농산품 노점좌판이 늘어선다.

40년 넘게 정선5일장에서 장사를 한 최정숙 할머니(71)는 “서른하나부터 강냉이를 집에 심어가지고 쪼개지고 댕기미. 그때는 집집마다 농사지은 걸 이고 댕겼어. 장에서 농사지은 거 팔아 아들·딸 다 가르쳤어”라고 말한다.

최 할머니처럼 직접 농사를 지어 장에 나오는 상인에게는 ‘신토불이증’ 목걸이가 걸려 있다. 산에서 막 따온 두릅, 나물취, 곰취, 참나물, 신선초, 고사리 등 보슬보슬하게 고개를 내민 봄나물을 직접 맛볼 수 있는 상점도 즐비하다. 시장 한가운데에서는 정선아리랑 민요마당, 전통음식 체험, 마술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된다. 산나물 향기에 취하고 전통가락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5일장의 하루가 무르익는다.

오후에는 정선의 맥을 훑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폐선된 구절리역부터 아우라지역까지 운행되는 레일바이크를 타면 정선의 산, 들, 강을 모두 담아갈 수 있다. 편도 7.2㎞ 레일바이크에 오르면 석탄을 나르던 철로 그대로 터널을 지나고 강을 건넌다. 저 멀리 산봉우리에는 하얀 눈이 쌓이고 눈앞 길가에는 개나리가 만발한다.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풍경도 정선의 깊은 매력이다.

레일바이크 종착역인 아우라지역은 정선아리랑 기원설화 근거지인 정선군 북면 여랑리 아우라지 나루터 인근에 있다. ‘아우라지’는 물살이 빠르고 힘차 남성성(양수)을 지닌 오대산 쪽의 ‘송천’과 물살이 느리고 젖빛인 여성성(음수)를 띤 태백산맥의 ‘골지천’이 ‘어우러진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아우라지에서 떠내려 보낸 뗏목은 영월에서 묶여지면서 커지고, 기나긴 한강을 따라 송파나루를 거쳐 마포나루에 다다르게 된다.

뗏목을 타고 가던 사공과 나물 캐던 이 지방 처녀가 주고받은 그리움은 정선아리랑의 중요한 노랫말을 잉태시켰다. 특히 강을 따라 흘러가버린 바람둥이 총각 사공을 연모하다 물에 빠져 죽은 여랑 처녀의 한은 아우라지 나루터에 동상으로 세워졌다.

레일바이크로 정선의 맥을 훑었다면 정선의 혼을 담아갈 차례다. 5일장날 오후 4시30분이면 어김없이 정선 문화예술회관에서 <정선아리랑극> 상설공연이 펼쳐진다.정선아라리 특유의 유장한 가락과 구성진 사투리가 다양한 현대음악과 만나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내고야 만다.

오후 5시49분. 정선의 명물을 모두 안은 채, 열차는 다시 서울을 향해 몸을 돌렸다.


길잡이/
매일 오전 7시50분 서울 청량리역에서 정선으로 가는 열차가 출발한다. 코레일관광개발에서는 4월부터 11월까지 끝자리 2·7일인 정선5일장에 맞춰 정선아리랑관광 특별열차인 ‘아리아리열차’를 운영한다. 왕복교통, 정선5일장 관람, 레일바이크 타기, 풍경열차 타기, 아라리촌 민속마을 관람, 대관령 양떼목장 견학 등 다양한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중앙고속도로 제천IC에서 나와 영월을 거쳐 정선에 들어오거나 영동고속도로 원주IC에서 나와 평창을 거쳐 정선에 들어선다. 6가지 종류의 당일 여행 패키지로 운영되는 ‘아리아리열차’의 비용은 코스에 따라 어른 2만9000~7만9000원이다. 자세한 정보는 코레일관광개발 홈페이지(www.korailtravel.com)를 참고하면 된다. 1544-7755

재래시장만큼 그 지역의 풍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도 없다. 코레일관광개발이 열차를 타고 재래시장을 둘러볼 수 있는 관광상품을 선보였다. 재래시장까지 음악전용열차인 ‘통통통 뮤직카페트레인’이 운행된다. 열차 1량을 뮤직스테이지로 리모델링해 DJ와 가수가 공연을 하고 승객이 춤도 출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 각종 이벤트를 즐기다보면 어느새 여행지에 도착한다.

음악 열차 타고 방방곡곡 재래시장으로

● 광천 재래시장투어 : 홍성군 광천읍 토굴새우젓시장까지 열차가 운행된다. 광천토굴새우젓은 포구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새우를 적당한 온도에 맞춰진 토굴에서 즉시 저장해 발효시켜 맛과 향이 우수하다. 열차는 서울역에서 출발, 광천역까지 운행되며 김좌진 장군 생가지 등 홍성의 구석구석과 광천재래시장을 돌아보는 하루 일정이다. 11월까지 매월 둘째주와 넷째주 화·토요일에 출발한다. 4만9500원.

● 제천 한방열차 : 열차를 타고 한방의 도시 충북 제천에 간다. 시끌벅적 활기 넘치는 제천풍물시장에는 메밀쌈 부침개, 황기찐빵 등 한방 약재와 약초를 넣어 만든 주전부리가 가득하다. 제천 한방엑스포단지에서 한방 족욕을 즐기고 청풍문화재 단지에서 수려한 청풍호반의 풍경을 감상한다. 5월1·5·21일 서울역에서 제천역까지 운행되는 하루 일정. 4만9500원.

● 고성 재래시장 : 경남 고성 재래시장은 전국 우수재래시장상을 2년 연속 수상한 곳. 공룡엑스포를 개최하면서 재래시장 상품권을 발행해 시장 활성화에 기여했다. 열차는 서울역에서 창원역까지 운행되며 전용 차량으로 거제도, 외도, 고성 재래시장, 당항포를 돌아보는 1박2일 일정. 5월6일 하루 운행한다. 12만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