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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여행](3) 전남 구례~경남 하동 ‘꽃 피는 화개’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ㆍ섬진강 줄기따라 흐드러지는 봄·봄·봄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쌍계사 십리길.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두 손을 잡고 걸으면 백년해로한다 해서 ‘혼례길’로도 불린다. 사진은 지난해 촬영한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물길은 곧 꽃길이 된다. 섬진강가 ‘꽃 피는’ 봄마을 화개(花開). 섬진강의 봄은 지리산을 감싸고 하동에 둥지를 틀었다. 물 흐르는 곳마다 연초록 새잎이 돋고, 노란 산수유가 봉우리를 틔웠다. 섬진강 물길은 전남 구례에서 경남 하동까지 19번 국도를 따라 봄소식을 전한다.

화개의 봄은 4월이 절정이다. 이때쯤 화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변한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향하는 그 십 리의 길. 하늘과 땅이 온통 연분홍빛이다. ‘일제히 피었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벚꽃’이 화개동천을 물들인다. 바람이 설핏 불 때마다 꽃비가 길 위에 흩뿌려진다.

초입에 세워진 ‘한국의 아름다운 길’ 표지판은 벚꽃터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곳이다.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벚꽃은 피는 게 아니라 흐드러진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에스키모인들은 ‘희다’라는 말을 17가지로 표현한다고 한다. 화개동천 벚꽃길에서는 ‘아름답다’는 표현이 17개로도 모자라다. 오죽하면 이 길을 ‘혼례길’이라 불렀겠는가. 벚꽃비를 맞으며 청춘남녀가 걸으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했다. 그래서 4월이면 몸살을 앓으면서도 쌍계사 십리벚꽃길은 보러 간다.

최참판댁



벚꽃나무는 수령 70~80년의 아름드리다. 일제강점기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신작로를 내면서 마을 사람들이 직접 심은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이곳은 신라시대 때부터 지명이 화개였다. 그 이름처럼 벚꽃 말고도 곳곳에 온갖 꽃이 만발한다. 산수유는 노랗게, 매화는 새하얗게 지리산 자락을 물들인다.

지금 벚꽃은 봉우리를 맺고 있다. 4월 초순이면 일제히 꽃망울을 틔우고 봄의 교향곡을 연주할 터다. 벚꽃의 만개는 고작해야 열흘. 잠깐 동안 ‘환장하게’ 흐드러졌다 초연하게 진다. 일본사람들은 극도의 아름다움과 짧은 개화기간을 ‘덧없는 인생’에도 비유한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바람에 날리는 꽃 이파리를 보며 어찌 인생을, 사랑을, 노래하지 않고 견디겠는가”라고 읊었다.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쌍계사 벚꽃길에서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하동차(茶)’다. 신라 흥덕왕 3년 때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차 씨앗을 가지고 와 처음 심었다는 ‘차 시배지’가 바로 이곳이다. ‘지리산 녹차’의 명성이 괜한 것이 아니다. 벚꽃길 따라 주변은 온통 초록색 차밭이다. 찻집도 즐비하다. 전국의 차 애호가들이 ‘하동차’ ‘쌍계차’ ‘화개차’를 사기 위해 줄지어 찾아든다.

하동 녹차밭



벚꽃길은 쌍계사에서 끝난다. 단아한 천년 고찰이 봄빛 생동감을 입었다. 쌍계사에서부터 불일암이 있는 불일폭포까지는 약 2.4㎞. 남명 조식 선생이 ‘열 걸음에 한 번 쉬고 열 걸음에 아홉 번 돌아보면서’ 올랐다는 절경의 폭포다. 다람쥐도 사람을 따라 태연히 산책을 한다. 쌍계사는 굳이 봄이 아니어도 사철 아름다운 곳이다. 찾는 이도 끊이지 않는다.

화개의 일정에서 화개장터는 시작과 끝이다. 쌍계사를 돌아보고 벚꽃길을 걸어나오면 다시 화개장터다. 옛날 끝자리 ‘1·6일’ 5일장은 2000년대 들어 현대식 상설시장이 됐다. 옛 모습을 재현한 초가지붕과 기와지붕 아래 ‘없는 것 없는’ 장이 펼쳐진다.

조선시대 전국 7대 장에 속했던 화개장터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곳이었다. 지금도 전라도 사람들이 하동 사람들과 섞여 물건을 판다. 과거 구례의 풍성한 농산물과 남해·하동의 싱싱한 해산물이 모여들었다면 요즘에는 약초가 대세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가 이곳에서 피어났고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가 이 장터에서 싹텄다.

화개장터 입구



벚꽃과 화개장을 찾고도 ‘이야기’의 갈증이 남았으면 드라마 <토지> 세트장에 들른다. 화개장터와 5㎞ 정도 떨어진 악양면 평사리에 최참판댁 등 한옥 14채가 세워졌다. 평사리에서 싹터 경남 일대와 만주, 일본까지 뻗어나간 소설 <토지>의 물줄기를 만날 수 있다. 천방지축 어린시절의 서희가 뛰어놀았음 직한 별채 마당과 연못가에는 매화가 활짝 폈다. 벚꽃과는 또 다른 고혹적인 봄의 자태다. 세트장 언덕에서 비옥한 붉은땅 하동벌판을 내려다본다. 코끝이 찡한 흙내음과 꽃향기가 강바람에 실려 온다. 기분 좋은 봄의 멀미가 아찔하게 인다.

■ 쌍계사 벚꽃길 기차여행

벚꽃은 열흘 남짓 일제히 폈다 지기 때문에 벚꽃 여행마다 인파가 몰린다. 특히 벚꽃이 피는 기간 쌍계사 앞길은 매우 혼잡하다. 열차를 이용하면 여독이 덜할 터. 코레일관광개발(www.korailtravel.com)에서 KTX 벚꽃길 여행상품과 무궁화호 여행상품을 운영한다. KTX 상품은 용산역에서 타고 정읍역에서 내린다. 전용 차량으로 구례를 거쳐 하동 쌍계사 십리벚꽃길까지 갈 수 있다. 섬진강 물길을 따라 19번 국도를 탄다. 화개장터를 돌아본 뒤 돌아오는 길에는 정읍 산외한우마을에서 한우를 맛본다. 4월24일까지 매일 출발하는 당일코스 상품이다. 6만5000~7만9000원.

무박 2일 상품도 있다. 용산역에서 오후 10시45분 무궁화호를 타고 이튿날 오전 3시45분 순천역에 내린다. 전용차량으로 구례역을 떠나 하동 쌍계사 십리벚꽃길을 둘러본 뒤 오전에는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을 관람한다. 오후에는 곡성역에서 레일바이크를 즐길 수 있다. 4월15일까지 매주 금·토요일에 출발한다. 9만5000원. 문의 1544-7755

개인 여행자는 하루에 두 번 하동역까지 운행되는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약 6시간 걸린다. 직행버스는 서울에서 하동까지 하루에 6번 다닌다.

약 5시간. 호젓하게 벚꽃을 즐기고 싶다면 새벽~아침 시간에 찾을 것. 시간이 허락되면 섬진강을 따라 80리나 이어지는 하동 ‘토지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 ‘벚꽃 열차’엔 사월의 추억이 차곡차곡

벚꽃이 만개하는 기간은 고작 열흘 남짓. 짧게 피었다 지기 때문에 전국 벚꽃 관광지는 4월 한달 심한 몸살을 앓는다. 교통체증도 심하다. 열차를 이용한다면 봄꽃 여행이 한결 가뿐하다. 코레일관광개발이 전국의 벚꽃 명소까지 ‘벚꽃열차’를 운행한다.

진해군항제

진해군항제가 열리는 4월1일부터 10일까지 ‘통통통 뮤직카페트레인’이 운행된다. 열차에서 DJ가 직접 음악방송을 진행하고 벨리댄스 등의 이벤트도 마련된다. 오전 7시40분 서울역을 출발해 오후 1시쯤 목적지인 진해역에 도착한다. 진해군항제 기간에는 해군사관학교와 해군통제사령부 방문이 가능하다. 해군사관학교에서는 군악단연주회가 열리고 구축함·전투함 등도 일반에 공개된다. 오후 5시에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를 타면 오후 10시에 서울역에 도착한다. 5만9000원. 식사비 불포함. KTX를 타고 부산역에 내려 전용차량으로 진해군항제를 들르는 상품도 있다. 통영 어시장과 이승만 별장을 둘러볼 수 있다. 8만9000~9만5000원.

경포벚꽃축제

4월 8·9일에만 진행되는 무박 2일 코스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해 정동진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다. 정동진역에서 전용차량으로 이동해 강릉 커피농장체험과 경포벚꽃축제를 즐길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는 원주역을 거쳐 청량리역에 도착한다. 7만9000원.

경주 벚꽃여행

신경주역에 KTX가 정차한다. 한결 빨라진 여행길이다. 오전 9시에 서울역에서 KTX를 타면 2시간30분 만에 신경주역에 도착한다. 천마총, 양동마을, 첨성대, 안압지 등을 둘러보는 당일 코스는 9만9000원. 황룡사지구, 월성지구, 불국사지구 등 경주의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는 1박2일 코스는 19만9000원이다. 문의 코레일관광개발(www.korailtravel.com), 1544-7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