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다는 것에 대하여

[낮은 목소리로]인간이 만든 ‘독’에 죽어가는 지구

강광석 | 전농 강진군정책실장

우수, 경칩이 지난 지 한참 되었습니다. 우수가 되었다고 얼었던 땅이 다 녹지는 않고 경칩이 되었다고 총소리 듣고 출발하는 육상선수처럼 개구리들이 다 튀어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바야흐로 4월 중순이 지나야 개나리 노란빛이 더 선명해지고 진달래 꽃망울이 입을 더 앙당무는 시절을 맞이합니다. 양력 4월 중순에 내리는 비를 어른들은 ‘보리살비’라 부릅니다. 보리는 대개 음력으로는 3월 그믐, 양력으로는 4월 말이나 5월 초에 이삭이 팹니다. 열매가 고개를 내민다는 건데요, 그전 10일간이 영양분이 제일 많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겨우내 가문 들판에 비가 내리니 이 비가 보리의 살이 되는 보리살비입니다.

그런데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방사능비가 온다고 동네가 쥐죽은 듯 조용합니다. 머리카락 몇 남지 않은 어르신들은 머리 빠진다고 집에 일찍 들어가시고, 마늘에 웃거름 주고 돌아오는 아주머니는 평소에 안 쓰던 수건에 모자까지 썼습니다. 아침에 오이를 실어나르는 운송업자는 우의를 입고 일을 합니다. 낯선 풍경입니다. 한겨울 눈이 와도 반팔 차림으로 일하는 사람이니까요. 지붕 덮개가 없는 트랙터는 아예 논 갈기를 포기하고 창고에서 쉬고 있습니다.

정부는 괜찮다고, 사람에게 해가 없다고 발표하지만 텔레비전에서는 가능하면 비를 맞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비를 맞아도 상관없는데 맞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인지, 인체에 해가 없으나 많이 맞는 것보다는 적게 맞는 것이 낫다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휴업하는 학교가 있다는데 아이들은 유치원에 갔고, 어머니는 고추 모종 하우스에서 오이 하우스로, 집에서 밭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들판을 누볐을 것입니다. 아이를 가진 집사람은 오늘도 비를 맞으며 일을 했을 텐데 복잡한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청정·안전’ 원전신화 무너져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게 관리한다는 일본에서,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다는 원전이 사고를 냈습니다. 원전은 안전하지도 깨끗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원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해체해 세상에 내보이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사고 대처가 정말 최선일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안전하다고, 불행 중 다행으로 바람이 반대쪽으로 분다고 말하던 정부가 방사성물질을 바다에 빠뜨리기 위해 태백산맥에 인공으로 비를 내리게 하는 계획을 세웠다니, 이 정부의 발표도 믿을 것이 못됩니다. 사실 원전에 대해 정부가 선전하는 청정과 안전은 효율과 생산성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가장 싼, 가장 손쉬운, 비용 대비 생산성이 가장 높은 에너지 생산방식이 원전입니다.

일본은 원전 관리의 책임을 민간기업에 맡긴 지 오래입니다. 민영화와 규제 완화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나라에 강요했던 국제적 표준입니다. 전력, 통신, 수자원 관리 등은 절대로 민간에 맡겨서는 안되는 국민생활의 주요 부분입니다.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시장이 결정하고 지배하는 것이 최고의 선이라는 신자유주의 정신은 아름다운 별 지구를 재앙의 별로 만들고 있습니다. 도쿄전력이라는 회사가 민간기업일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싼값으로 국민의 목숨을 민간기업에 팔았습니다.

자연에 있는 모든 물질은 지구의 동식물들이 이미 적응했고 적응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물질을 만든 것은 인간이고 이제 그 가공의 물질이 인간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버섯은 자신이 만든 독으로 자신을 보호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만든 독으로 자신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광우병, 진화의 생명법칙 무시

광우병을 일으킨 변형 단백질 프리온은 수십억년 지구 역사상 채 100년이 안 되는 시간에 탄생한 신물질입니다. 지구의 역사가 만든 진화의 생명법칙을 무시하고 채식동물인 소가 동물의 뼛가루를 먹고 병에 걸리니 이것이 광우병입니다. 그 어떤 동물도 프리온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요오드, 세슘이라는 방사성물질은 지구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신물질입니다. 현재로서는 이 물질에 적응해 살아갈 수 있는 동식물은 없습니다. 많이 먹으면 죽고 적게 먹으면 산다는 기준치 이상과 이하만 있을 뿐입니다. 비는 그치고 또 우리는 하늘을 보고 언제 또 비가 올지 걱정할 것입니다. 4월 중순 단비를 먹고 자란 쑥과 냉이와 상추와 봄배추를 안전하다고 국민들 식탁에 내놓아야 할지 난감합니다. 비를 맞아도 되는지, 빗물을 받아 농사를 지어도 괜찮은지 걱정하는 이때 군동면 금곡사로 가는 길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