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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

[손홍규의 로그 인]우리 시대 시인

손홍규 소설가


시인인 선배가 동창 모임에 갔다. 문학동아리를 함께했던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한마디로 그들 모두 한때는 문청이었다. 성인이 되어 갖는 동창 모임이란 묘한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서로의 얼굴에서 옛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도 지나온 세월의 간극을 쉬이 인정하지 못하는 경계심 같은 것들 말이다. 선배도 그런 친밀함과 낯섦을 동시에 느끼면서 모임에 섞여들어 갔다. 으레 그렇듯 누군가 선배에게 뭐 하느냐고 물었던 모양이다. 동창들의 시선이 선배에게 쏠렸다. 선배가 시인이라고 답하자, 그이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더는 묻지 않았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이는 끌탕을 하듯 혀를 차기도 했다. 모임이 무르익었을 무렵 무협소설 작가가 뒤늦게 도착했다. 선배의 동창들은 환호하며 작가를 맞이했다. 수입은 얼마나 되느냐, 책은 잘 나가느냐 등등 장풍 같은 질문이 무협 작가에게 쏟아졌다. 질문세례가 한바탕 지나간 뒤 누군가 선배에게 뭘 해 먹고 사느냐고 조용히 물었다. 선배는 대학 강사라고 답했다. 나지막이 대답했는데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좌중의 시선이 선배에게 쏠렸다.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더불어 질문이 쏟아졌다. 수입은 얼마나 되느냐, 언제 교수가 되느냐 등등. 장풍에 얻어맞은 선배는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한때 문청이었던 사람들 사이에서마저 시인보다는 대학 강사라는 직함이 더 흥미로운 화제임을 깨달은 선배는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을 안고 귀가했다. 나는 귀가하는 선배의 축 처진 어깨를 본다. 과거의 시인들도 그처럼 귀가했을 것만 같다.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을 품고 자신의 작은 방으로 돌아가 램프 아래 가느다란 손으로 펜을 쥐고 그이들은 인간을 썼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