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ㆍ강우일 주교 “세상과 함께하는 게 교회, 사회에 관심갖는 건 당연”
ㆍ이상돈 “종교 인구 많은데 윤리 낮아”
ㆍ김호기 “대통령 종교 행위 신중해야”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이상돈 교수(중앙대·법학)와 김호기 교수(연세대·사회학)가 그 네번째 자리에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66·제주교구장)를 초대했다. 한국천주교의 행정적 대표자인 강 주교와의 ‘대화’ 초점은 한국 근현대사와 천주교의 관계, 물질적으론 풍요하지만 어느 때보다 정신적 허기를 느끼는 시대에 천주교, 나아가 종교의 역할, 그리고 4대강 사업에 대한 천주교의 반대활동, 정교분리의 문제 등에 두어졌다. 강 주교는 교회의 역할로 “세상과 함께하는 교회”를 제시했다. 최근의 물신숭배주의, 구제역 사태 등과 관련해선 성경 속 바벨탑 이야기를 들어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성장제일주의를 경계하고 절제와 느림의 문화를 강조했다. 평소 제주에 머물고 있는 강 주교와의 ‘대화’는 지난 11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사무처에서 이뤄졌다.
김호기 교수(이하 김호기) = 먼저, 사제가 되신 지 37년인데 사제로의 삶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요.
강우일 주교(이하 강 주교)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허허. 회상해보면 20대 초반이었는데 아버님이 하던 사업에 어려움이 많아 집안이 일본으로 가게 됐습니다. 저는 이공계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죠. 그런데 시험을 보기 전에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뭔가 더 보람 있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억제할 수 없을 만큼 솟아올랐어요. 사제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특히 마태복음 6장의 말씀이 가슴에 강하게 울려왔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31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3절).
이상돈 교수(이하 이상돈) = 김수환 추기경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 추기경님과의 인연, 김 추기경님이 한국사회에 남긴 정신적 유산에 대해 한 말씀 주시죠.
강 주교 = 가족들이 6·25 피란 시절에 대구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는데, 그때 김 추기경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분이 가장 힘을 기울이고 신경 쓰신, 또 당신 스스로 매료됐던 것은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만날 때나, 강론할 때 늘 가슴 밑바닥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배려, 관심이 깔려 있었죠. 인간의 존엄성, 품위를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하셨습니다. 전통적 가톨릭 사고에서는 성(聖)과 속(俗)의 분리,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은 함께할 수 없다는 관념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분은 그것을 다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교회는 정말 인간의 품위나 존엄을 박탈당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교회가 멀지 않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상돈 = 김 추기경께서 1970~80년대에 그야말로 폭풍의 한복판에 계실 적에 주교께서 김 추기경님을 가까이 모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 주교 = 그렇습니다. 명동성당에 20년 있었지요.
김호기 = 추기경님의 선종 이후 전 사회적으로 뜨거운 추모의 물결이 일었습니다. 추기경님은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을 크게 일깨우고, 민주화의 상징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외람되지만 말년에 보이신 모습에 대해선 진보진영에서 일부 비판도 있습니다만.
강 주교 = 추기경님의 사고가 바뀌었다거나 해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일관되게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졌습니다. 어떤 분은 추기경님이 옛날과 달라지지 않았나 생각하는데, 전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김호기 = 근래 출간된 <한국 천주교회사>를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천주교는 우리가 만난 최초의 ‘서양’이자 ‘근대’ 중 하나였습니다. 천주교가 우리 역사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해왔다고 생각하는지요.
강 주교 = 한국 천주교는 세계 가톨릭 역사에서 아주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선교사가 들어오지 않고, 조선인들이 스스로 진리에 대한 탐구와 동경을 통해 천주교를 받아들였죠. 당시는 조선 왕조 체제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한계점에 서서히 도달하는 시점이 아니었나 합니다. 젊은이들은 새 세상을 찾고 싶은 갈망이 있었을 겁니다. 1세대는 지식인 계층이었는데, 박해로 순교를 하는 등 조선천주교는 한동안 어려운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인계층, 노동자와 농민, 여성들이 그 신앙을 계속 이어가면서 천주교는 조선사회의 경직된 상하구조 틀을 바꿔놓은 역할도 했습니다.
이상돈 = 얼마 전에 한국 교회는 사회사목 기능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셨고, 구제역 사태와 관련해 육식문화에 대한 반성을 강조하셨습니다.
강 주교 = 그리스도교 교회 교리의 가장 핵심은 ‘강생의 신비’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돼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죠. 죄많은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서 세상에 사람으로 직접 뛰어들어오셨다는 겁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끌어안고 함께 걸으신다는 것이죠. 교회도 세상 구석구석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과 함께 걸어야 합니다. 잘못된 길이면 항의도 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광우병 등은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것, 하느님이 인간에 주시는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김호기 = 근현대 사상은 종교에서 이성으로, 이성에서 삶으로, 그리고 다시 욕망으로 큰 흐름을 이어왔습니다. 지금 인류는 ‘욕망의 시대’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고 봅니다. 그 욕망의 대상이 바로 ‘돈’(물신숭배주의)과 ‘몸’(외모지상주의)에 집약돼 있습니다. 가치와 정신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는 이 시대에 종교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강 주교 = 요즘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가 많이 떠오릅니다. 인간의 탐욕에 대한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죠. 오늘날 우리 인간은 우리 기술로 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착각에 빠져든 것 아닌가 합니다. 이대로 가면 인간이 스스로의 기술에 걸려 넘어지고, 바벨탑을 쌓던 이들이 흩어져 버린 것처럼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인간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착각, 다해도 좋다는 착각에서 빨리 깨어나고, 좀 더 겸허해지고, 욕심을 절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상돈 = 우리는 종교 인구는 많지만 사회 전체의 윤리와 도덕기준은 종교 인구가 적은 나라보다 떨어져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또 경제적으로 풍요해졌지만 삶은 더 각박해지고 사회구성원 사이의 갈등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에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는 비판이 있는데, 물론 한 정권의 책임만은 아닐 것입니다.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치유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강 주교 = 한국만이 아니라 세상이 대동소이합니다. 다만 한국사회가 다른 나라와 다른 것은 남들이 200년 걸린 것을 우린 30년 만에 해치웠다는 것이죠. 이는 우리에게 부를 가져오긴 했지만, 한편으론 국민 모두가 발전,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 아래 뭔가 일을 빨리빨리 해서 벌어야 된다는 관념을 가지도록 한 것 같습니다. 그 바탕엔 개발하면 발전이고, 발전이면 좋고 선한 것이라는 생각이 거의 이데올로기화되어 있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개발이나 발전·성장을 우선하다 보니 윤리적으로 맞지 않는 일까지도 정당화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오지 않았나 합니다. 국가가 발표하는 수치상으로는 수출도 잘되고 하는데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단적인 증거가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는 것이죠. 이를 성장의 대가라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먼저 개발은 발전이고, 발전은 선이라는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문제가 축적되고 사람들의 불행이 쌓이면 폭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좀 더 천천히, 느림의 문화, 가난하게 사는 것을 참을 줄 아는 문화를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이상돈 = 작년 봄에 주교회의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이 생명가치를 중대하게 훼손한다’고 결의했습니다. 한국천주교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주교회의가 정부의 특정 정책을 그렇게 규정하고 반대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입니다. 호응하는 국민들도 많지만 종교가 세속적 사안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강 주교 = 교회 안에서도 주교님들이 왜 정치적 문제에 발언하고, 입장을 발표하나 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가 사회에 관심을 갖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다면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요. 가톨릭교회가 적극적으로 사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발표하면서입니다. 교회의 사회사목은 한국 교회가 늦은 것이지, 세계적으로는 이미 널리 해온 것입니다.
김호기 = 최근 수쿠크법(이슬람채권법) 논란이 있었고, 대통령이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에 대한 논란도 있었습니다. 정교분리가 새삼 사회적 관심으로 떠올랐는데, 어떻게 보는지요.
강 주교 = 정치와 종교 간의 분리 문제에선 정치가 윤리적으로 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갈 때는 종교가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종교가 감놔라 배놔라 해선 안됩니다.
이상돈 = 우리 헌법에도 정교분리는 명확히 돼 있습니다. 대통령이 사적인 자리가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 특정 종교를 드러내는 것은 곤란하다고 봅니다.
김호기 = 대통령 같은 공인은 공적인 자리라면 다른 종교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좀 더 사려깊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최근 제주도의 현안 가운데 하나가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입니다. 평화는 군사력이 아니라 평화 그 자체로 획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닐는지요.
강 주교 = 처음 해군에서 기지 건설을 이야기할 때는 우리의 무역선을 보호하기 위한 함정들이 정박하는 기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상당한 군비가 집중되는 규모로 단순한 기지 차원이 넘는다는 생각입니다. 제주도는 4·3사태로 3만명 이상이 희생된 곳으로 제주도민 중 희생자와 연결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김대중 정권 때 조사위원회가 발족됐고, 노무현 정권 때 보고서가 나왔습니다만 도민 가슴 밑바닥에는 국가로부터 내 가족이 학살당했다는 한이 맺혀 있습니다. 그런 것은 감안하지 않고 어느날 갑자기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합니다. 기지가 들어설 마을은 자연환경이 아주 아름답고, 또 평화로운 곳입니다. 도민들은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남기를 원하는 겁니다.
ㆍ이상돈 “종교 인구 많은데 윤리 낮아”
ㆍ김호기 “대통령 종교 행위 신중해야”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가운데)가 서울 중곡동 성당에서 이상돈(오른쪽), 김호기 교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김문석 기자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이상돈 교수(중앙대·법학)와 김호기 교수(연세대·사회학)가 그 네번째 자리에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66·제주교구장)를 초대했다. 한국천주교의 행정적 대표자인 강 주교와의 ‘대화’ 초점은 한국 근현대사와 천주교의 관계, 물질적으론 풍요하지만 어느 때보다 정신적 허기를 느끼는 시대에 천주교, 나아가 종교의 역할, 그리고 4대강 사업에 대한 천주교의 반대활동, 정교분리의 문제 등에 두어졌다. 강 주교는 교회의 역할로 “세상과 함께하는 교회”를 제시했다. 최근의 물신숭배주의, 구제역 사태 등과 관련해선 성경 속 바벨탑 이야기를 들어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성장제일주의를 경계하고 절제와 느림의 문화를 강조했다. 평소 제주에 머물고 있는 강 주교와의 ‘대화’는 지난 11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사무처에서 이뤄졌다.
김호기 교수(이하 김호기) = 먼저, 사제가 되신 지 37년인데 사제로의 삶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요.
강우일 주교(이하 강 주교)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허허. 회상해보면 20대 초반이었는데 아버님이 하던 사업에 어려움이 많아 집안이 일본으로 가게 됐습니다. 저는 이공계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죠. 그런데 시험을 보기 전에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뭔가 더 보람 있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억제할 수 없을 만큼 솟아올랐어요. 사제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특히 마태복음 6장의 말씀이 가슴에 강하게 울려왔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31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3절).
이상돈 교수(이하 이상돈) = 김수환 추기경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 추기경님과의 인연, 김 추기경님이 한국사회에 남긴 정신적 유산에 대해 한 말씀 주시죠.
강 주교 = 가족들이 6·25 피란 시절에 대구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는데, 그때 김 추기경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분이 가장 힘을 기울이고 신경 쓰신, 또 당신 스스로 매료됐던 것은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만날 때나, 강론할 때 늘 가슴 밑바닥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배려, 관심이 깔려 있었죠. 인간의 존엄성, 품위를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하셨습니다. 전통적 가톨릭 사고에서는 성(聖)과 속(俗)의 분리,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은 함께할 수 없다는 관념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분은 그것을 다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교회는 정말 인간의 품위나 존엄을 박탈당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교회가 멀지 않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상돈 = 김 추기경께서 1970~80년대에 그야말로 폭풍의 한복판에 계실 적에 주교께서 김 추기경님을 가까이 모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 주교 = 그렇습니다. 명동성당에 20년 있었지요.
김호기 = 추기경님의 선종 이후 전 사회적으로 뜨거운 추모의 물결이 일었습니다. 추기경님은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을 크게 일깨우고, 민주화의 상징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외람되지만 말년에 보이신 모습에 대해선 진보진영에서 일부 비판도 있습니다만.
강 주교 = 추기경님의 사고가 바뀌었다거나 해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일관되게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졌습니다. 어떤 분은 추기경님이 옛날과 달라지지 않았나 생각하는데, 전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김호기 = 근래 출간된 <한국 천주교회사>를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천주교는 우리가 만난 최초의 ‘서양’이자 ‘근대’ 중 하나였습니다. 천주교가 우리 역사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해왔다고 생각하는지요.
강 주교 = 한국 천주교는 세계 가톨릭 역사에서 아주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선교사가 들어오지 않고, 조선인들이 스스로 진리에 대한 탐구와 동경을 통해 천주교를 받아들였죠. 당시는 조선 왕조 체제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한계점에 서서히 도달하는 시점이 아니었나 합니다. 젊은이들은 새 세상을 찾고 싶은 갈망이 있었을 겁니다. 1세대는 지식인 계층이었는데, 박해로 순교를 하는 등 조선천주교는 한동안 어려운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인계층, 노동자와 농민, 여성들이 그 신앙을 계속 이어가면서 천주교는 조선사회의 경직된 상하구조 틀을 바꿔놓은 역할도 했습니다.
이상돈 = 얼마 전에 한국 교회는 사회사목 기능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셨고, 구제역 사태와 관련해 육식문화에 대한 반성을 강조하셨습니다.
강 주교 = 그리스도교 교회 교리의 가장 핵심은 ‘강생의 신비’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돼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죠. 죄많은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서 세상에 사람으로 직접 뛰어들어오셨다는 겁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끌어안고 함께 걸으신다는 것이죠. 교회도 세상 구석구석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과 함께 걸어야 합니다. 잘못된 길이면 항의도 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광우병 등은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것, 하느님이 인간에 주시는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김호기 = 근현대 사상은 종교에서 이성으로, 이성에서 삶으로, 그리고 다시 욕망으로 큰 흐름을 이어왔습니다. 지금 인류는 ‘욕망의 시대’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고 봅니다. 그 욕망의 대상이 바로 ‘돈’(물신숭배주의)과 ‘몸’(외모지상주의)에 집약돼 있습니다. 가치와 정신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는 이 시대에 종교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강 주교 = 요즘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가 많이 떠오릅니다. 인간의 탐욕에 대한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죠. 오늘날 우리 인간은 우리 기술로 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착각에 빠져든 것 아닌가 합니다. 이대로 가면 인간이 스스로의 기술에 걸려 넘어지고, 바벨탑을 쌓던 이들이 흩어져 버린 것처럼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인간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착각, 다해도 좋다는 착각에서 빨리 깨어나고, 좀 더 겸허해지고, 욕심을 절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상돈 = 우리는 종교 인구는 많지만 사회 전체의 윤리와 도덕기준은 종교 인구가 적은 나라보다 떨어져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또 경제적으로 풍요해졌지만 삶은 더 각박해지고 사회구성원 사이의 갈등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에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는 비판이 있는데, 물론 한 정권의 책임만은 아닐 것입니다.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치유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강 주교 = 한국만이 아니라 세상이 대동소이합니다. 다만 한국사회가 다른 나라와 다른 것은 남들이 200년 걸린 것을 우린 30년 만에 해치웠다는 것이죠. 이는 우리에게 부를 가져오긴 했지만, 한편으론 국민 모두가 발전,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 아래 뭔가 일을 빨리빨리 해서 벌어야 된다는 관념을 가지도록 한 것 같습니다. 그 바탕엔 개발하면 발전이고, 발전이면 좋고 선한 것이라는 생각이 거의 이데올로기화되어 있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개발이나 발전·성장을 우선하다 보니 윤리적으로 맞지 않는 일까지도 정당화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오지 않았나 합니다. 국가가 발표하는 수치상으로는 수출도 잘되고 하는데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단적인 증거가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는 것이죠. 이를 성장의 대가라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먼저 개발은 발전이고, 발전은 선이라는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문제가 축적되고 사람들의 불행이 쌓이면 폭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좀 더 천천히, 느림의 문화, 가난하게 사는 것을 참을 줄 아는 문화를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이상돈 = 작년 봄에 주교회의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이 생명가치를 중대하게 훼손한다’고 결의했습니다. 한국천주교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주교회의가 정부의 특정 정책을 그렇게 규정하고 반대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입니다. 호응하는 국민들도 많지만 종교가 세속적 사안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강 주교 = 교회 안에서도 주교님들이 왜 정치적 문제에 발언하고, 입장을 발표하나 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가 사회에 관심을 갖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다면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요. 가톨릭교회가 적극적으로 사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발표하면서입니다. 교회의 사회사목은 한국 교회가 늦은 것이지, 세계적으로는 이미 널리 해온 것입니다.
김호기 = 최근 수쿠크법(이슬람채권법) 논란이 있었고, 대통령이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에 대한 논란도 있었습니다. 정교분리가 새삼 사회적 관심으로 떠올랐는데, 어떻게 보는지요.
강 주교 = 정치와 종교 간의 분리 문제에선 정치가 윤리적으로 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갈 때는 종교가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종교가 감놔라 배놔라 해선 안됩니다.
이상돈 = 우리 헌법에도 정교분리는 명확히 돼 있습니다. 대통령이 사적인 자리가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 특정 종교를 드러내는 것은 곤란하다고 봅니다.
김호기 = 대통령 같은 공인은 공적인 자리라면 다른 종교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좀 더 사려깊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최근 제주도의 현안 가운데 하나가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입니다. 평화는 군사력이 아니라 평화 그 자체로 획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닐는지요.
강 주교 = 처음 해군에서 기지 건설을 이야기할 때는 우리의 무역선을 보호하기 위한 함정들이 정박하는 기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상당한 군비가 집중되는 규모로 단순한 기지 차원이 넘는다는 생각입니다. 제주도는 4·3사태로 3만명 이상이 희생된 곳으로 제주도민 중 희생자와 연결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김대중 정권 때 조사위원회가 발족됐고, 노무현 정권 때 보고서가 나왔습니다만 도민 가슴 밑바닥에는 국가로부터 내 가족이 학살당했다는 한이 맺혀 있습니다. 그런 것은 감안하지 않고 어느날 갑자기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합니다. 기지가 들어설 마을은 자연환경이 아주 아름답고, 또 평화로운 곳입니다. 도민들은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남기를 원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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