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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의 음악편지

[이종민의 음악편지]새날 새 세상을 위한 조상훈의 ‘비나리’

이종민 전북대 교수·영문학

“칼의 힘을 믿는 이들에게는/ 칼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게 해주시고/ 돈의 힘을 의지하는 이들에게는/ 돈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게 해주시고/ 부끄러운 성공보다 오히려/ 떳떳한 실패를 거두게 하시고/ …우주만큼 큰 하늘을 품고/ 한 발 두 발 세 발/ 후회 없는 날을 걸어가게 해주십시오.”

이현주님의 시 <비나리>의 일부입니다. 연말연시의 마음가짐이 대개 이러하겠지만 평소에도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바람도 아닌 것에 흔들리고 뒤척이는” 도회지의 삶이 싫어 “든든한 어깨로 선 지리산”에 기대어 “버선코처럼 고운 섬진강 물줄기”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 이들은 가난하지만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며 소박하고 진솔하게 행복을 일궈가고 있습니다. 작은 도서관 사업 등을 통해 사그라진 마을 공동체도 되살리고 동네밴드를 만들어 스스로 지은 노래를 부르며 놀기도 합니다. 이들의 행복만들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몇백만원에 달하는 동네밴드 공연 수입 전액을 결손 가정과 북한어린이를 돕기 위한 성금으로 척 내놓기도 합니다.

지지난주에는 그들 중의 하나인 버들치 시인을 만나고 왔습니다. “도시의 자욱한 치졸과 무례와 혐오”에 지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음악충전이 시급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박남준 시인은 제 음악 스승입니다. 음반을 선물하기도 하고 추천곡들을 시디로 구워 전해주기도 합니다. 이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으면 이번처럼 2박3일 찾아가 ‘합숙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공지영 작가가 방송 촬영차 찾아와 행복학교 학생들(아니면 선생님) 모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형제봉 주막에서 변진섭 ‘국민가수’의 생음악을 감상하는 행운도 함께 맛보았습니다.

이런 행복충전 덕분인지 그 뒤로 즐거운 일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은사이신 황동규 시인을 모시고 안도현 시인과 귀한 술자리를 가졌으며 스승으로 모시는 한승헌 변호사와는 김용택 시인 등과 함께 흥겨운 송년모임까지 가졌습니다. 김정헌, 임옥상 화백, 건축가 승효상 선생 등과 섬진강 및 전주한옥마을의 공공미술에 관한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가진 것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될 것입니다.

예산삭감 등으로 소리축제 관련 분위기가 뒤숭숭하지만 의미 있는 한국음악 공연은 연말에도 쉴 줄을 몰랐습니다. 이 지역의 무형문화를 바탕으로 한 ‘온소리예술단’의 창작곡 공연에서는 진행을 맡아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아끼는 후배이자 제자인 ‘동남풍’의 조상훈군이 장구 하나로 한 시간가량 연주를 하는 보기 드문 공연을 함께한 것도 귀한 연말선물이라 하겠습니다. 그 행복을 함께 나누고자 그가 연주한 <비나리>, 새해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흔히 고사덕담 혹은 고사소리라 불리는 <비나리>는 액을 물리치기 위한 액풀이, 축원덕담, 그리고 살풀이 등으로 구성됩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장구 반주로 진행되었는데 음원 상태가 고르지 못해 예전 음반의 것을 대신 보내드립니다.

쇠와 장구에 능한 조상훈은 소리 부분에서도 상당 수준의 내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가 이끄는 풍물패 ‘동남풍’ 또한 김덕수패 사물놀이 못지않은 기량으로 새로운 풍물역사를 써나가고 있으며 후진 양성 부분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새날 새 세상이 열립니다. 오늘 이 <비나리>는 이를 위한 축원이자 다짐의 기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행복학교의 가르침대로 행복은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를 가꾸듯 키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에 연연하면 큰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큰 것에 마음을 두고 있으면 자잘한 슬픔이나 서운함도 삶을 아기자기하게 수놓는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비나리>와 함께 “우주만큼 큰 하늘” 듬뿍 품고서 후회 없는 하루하루 열어 가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음악은 경향닷컴(www.khan.co.kr)과 이종민 교수 홈페이지 http://leecm.chonbuk.ac.kr/~leecm/index.php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