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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의 음악편지

[이종민의 음악편지]흐르는 것이 어디 물뿐이랴!

이종민 | 전북대 교수·영문학

ㆍ김용택 시· 류장영 작곡 ‘섬진강 1’

섬진강가 향가라는 곳에는 김용택 시인의 표현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매운탕집이 있습니다. 순창~남원 간 철로를 놓기 위해 일제가 만들다 만 교각(사진)과 굴이 이 음식점을 사이에 두고 몇 십 년 풍상을 함께 견디고 있습니다. 순창군에서는 이들을 관광자원으로 이용할 궁리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 공공미술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섬진강 답사여행을 마련한 것도 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답사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전라도 말로 “내싸 둬!”였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래도 어설프게 손댔다가 풍광은 물론 강 자체도 망칠 수 있겠다는 짐작은 답사 전부터 할 수 있었습니다. “지저분한 개집이나 치우지!” 식사 후에 즐기곤 하던 산책로 주변도 쓰레기 천지, 흐름이 막힌 물은 검게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강을 이렇게 망쳐놓고 무슨 공공미술?

그곳에서 벗어나 김용택 시인 마을을 돌아볼 때에는 분노를 넘어선 허탈감에 맥이 탁 풀리고 말았습니다. 옛 추억을 되살리겠다고 징검다리를 건넌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그 맑던 물은 간데없고 썩은 냄새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습니다. 이 냄새나는 강으로 무슨 관광객을 부르겠다는 것인가? 혐오감 심어주려고?

물은 생명의 근원이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 했는데… 김 시인의 ‘관란헌(觀瀾軒)’ ‘물결 바라보는 집’이 무색하게 되었습니다. 이 썩은 물을 바라보며 어쩌라는 말인가?

이 서재 이름은 원래 퇴계 선생이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아 밤낮으로 쉼이 없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는 공자님 말씀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추스르기 위해 지은 당호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퇴계 선생은 같은 제목의 시를 통해서도 밤낮으로 흐르는 물을 본받아 공부에 틈이 없어야겠다는 다짐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이 편액은 제 사부님과 친구들이 마련해준 것입니다. 왕희지 글씨를 집자하여 전주한옥마을의 유명한 김종연씨가 양각을 한 것입니다. 저희가 이 선물에 담은 뜻은 아름다운 섬진강 물결을 바라보며 감동의 시상을 떠올리라는 것. 단순히 물결을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이치까지를 살펴 섬진강 연작과 같은 절창을 끊임없이 길어 올리라는 염원을 담았던 것입니다.

공자님 말씀에 대한 풀이에서 동중서(董仲舒)는 물을 군자에 비깁니다. 샘에서 솟아오르는 힘찬 기운, 낮고 파인 곳을 채우고 흐르는 공명정대한 처신, 작은 틈새도 남겨두지 않고 빈틈없이 스미는 세심한 배려, 계곡 따라 흘러 길을 잃지 않고 먼 바다에 이르는 지혜, 더러운 것까지 정화시켜주는 선인(善人)의 마음, 천길 낭떠러지도 주저않는 용기 등. 이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물의 속성을 헤아려 삶의 이치를 잘 그려주고 있는 시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까지를 담아 선물로 전했던 것입니다.

여택(麗澤)이라는 낙관에도 물의 이치가 서려있습니다. 여택은 못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을 그리는 말로 친구끼리 서로 도우면서 학문과 품성을 닦는 일을 뜻합니다. 이웃하는 연못에 물이 부족하면 서로 채워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관란헌에서 썩어가는 강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심경이 어떨까? 지금도 등단하면서 포효했던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되뇔 수 있을까? 우리의 젖줄인 4대강이 파헤쳐지고 “전라도 실핏줄 같은” 섬진강이 저렇게 망가지고 있는데.

답답한 마음을 달래보려고 시인의 ‘섬진강 1’을 합창으로 되살린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오고 있는 전북도립국악관현악단이 2007년에 발표한 것입니다. 이 악단의 지휘자 류장영씨가 작곡한 것으로 국악칸타타 ‘그 강에 가고 싶다’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시야 말할 것도 없고 곡도 좋은데 연주 기회가 없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물의 이치를 거스르면 재앙이 따릅니다. 올 겨울의 혹독한 추위나 세계 도처에 기상이변을 낳고 있는 라니냐 현상도 물 다스림을 잘못하여 생긴 일들입니다. 이 노래 들으시며 물의 흐름 그 이면에 담겨있는 자연과 삶의 이치(道)를 한 번 새겨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