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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의 음악편지

[이종민의 음악편지]‘아침’을 기다리며

이종민 | 전북대 교수·영문학

그날 사고만 해도 그래. 네 덩치가 조금만 더 컸어도 그렇게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네 고운 옆구리에 생채기를 내지는 않았을 거야. 너를 탓하는 것이 아니야. 세상 그릇된 인심을 원망하고 있는 거야. 내용보다는 겉모습, 차 크기로 인품을 규정하려 하는, 작지만 아름다운, 아니 작아서 더 알찬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줄 모르는 청맹과니를 욕하고 싶은 거야.

이런 얘기를 들은 적도 있어. 대학교수가 왜 그렇게 근천을 떠는 것이냐고. 너무 가식적인 거 아니냐고. 10년이면 가식도 진정성을 얻게 되나? 이제 그런 입방아들은 잦아들었지만 자동차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작은 차 무시 풍조는 오늘 아침까지도 현재진행형이었지!

네 덕에 그 분주한 회의일정 소화하고 주말이면 시골 어머니 찾아뵈며 매실나무 돌볼 수 있었던 거, 다만 고마울 따름이다. 네가 없었다면 전주전통문화도시 조성하는 일 어떻게 감당했으며 지금 모습의 매실주 매실원액 나눠먹기가 가능했을까! 그전 20년 동안 내 발 노릇을 해준 자전거 타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니겠어?

이제 내일이면 ‘아침’을 타고 아침을 달리겠지. 너는 오랫동안 나를 도와 전주 문화발전에 큰 기여를 해온 젊은 일꾼을 실어 나를 것이고. 그런데 너 듣기에 서운하겠지만 ‘아침’이 많이 기다려진단다. 너를 만나고 자전거를 거의 거들떠보지 않은 것처럼 벌써 내 마음이 저만큼 가 있는 거야. 세상인심이라니!

오늘 준비한 음악도 네가 아니라 ‘아침’과 관련된 것이란다. 내가 좋아하는 빌 더글러스의 ‘아침이 열리는 숲에서’라는 매우 서정적인 곡이야. 뉴에이지 명반으로 꼽히는 같은 이름의 음반에 실려 있는 곡인데, 너처럼 단아하고 알찬 시로 유명한 19세기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 두 편을 그 가사로 하고 있어. 더글러스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으며 아르스 노바 합창단의 화음 또한 환상적인 매력으로 우리들 조급한 성정을 잘 어루만져 주지.

음악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동안 너에게 조금 섭섭한 게 있었어. 네 오디오, 그거 너무 구식이었잖아! CD 음반을 틀을 수 없어 얼마나 불편했는지 몰라. 네가 제공해주는 다른 편리함, 편안함이 없었다면 당장 바꿔버렸을 거야. 네가 ‘아침’에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몰라. 이제 좋아하는 음악 마음대로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신날까!

그래 이별은 이렇게 씁쓸한 것인가? 이도령에게 방자가 권하듯 “너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것이 정녕 이별이지….”

아니야, ‘세상에서 가장 이쁜 차!’ 너를 잊을 수는 없어. 그러면 가장 바지런히 활동했던 내 10년이 사라지거든. 한동안 ‘자전거 교수’로 불리다가 ‘마티즈 교수’ 별호를 얻었는데 이제 ‘모닝 교수’로 통하겠지. 정년까지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기꺼운 마음으로 너의 영원한 라이벌 ‘아침’과의 만남을 축하해주렴. 더글러스의 이 음악 들으면서 그렇게 통 큰 이별 한번 해보자꾸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