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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의 음악편지

[이종민의 음악편지]낙원은 없다! - 반젤리스의 ‘낙원의 정복’

이종민 전북대 교수·영문학

봄소식이 참담합니다. 재난영화에서보다 더 참혹한 지진·해일이, 좋아하는 영화나 연주실황 보겠다고 큰 마음먹고 장만한 대형 텔레비전 화면을 설치한 첫날부터 도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멀스멀 퍼지는 방사능 공포에 북아프리카에서 들려오는 밤낮없는 포성까지. 짜증스러운 꽃샘추위나 황사는 차라리 귀여운 응석입니다!

그 때문일까? 어느 해보다 혹독한 봄맞이 몸살을 앓았습니다. 내우외환? 때늦은 눈발, 굳은 어깨로 바라보려는데 겨우 돌아가기 시작한 목에 가시처럼 걸린 말입니다. 그런데 쓰나미나 방사능보다 목이 더 아프고 부르튼 입술이 더 보기 흉합니다. 리비아 민중의 아우성보다 아픈 침 삼키며 겨우 토하는 신음이 더 크게 울립니다.

수만 명이 죽거나 다치고 집과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마당에 “바람이 어디로 불 것인가?” 먼저 따지는 호들갑을 가볍다! 탓하고 있었는데 몸이 좀 불편하니 그것이 곧 천년환란입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고통은 위대한” 것! 그렇게 읊은 천양희 시인 흉내로 “나에게 몸이 없으면 어찌/ 나에게 어려움이 있겠느냐” “타인의 고통을 바라볼 때는/ 우리라는 말은 사용해선 안된다” “밑줄 치는 대신 무릎을” 쳐보는 것입니다.

원전 재앙이 흉흉해지기 전만 해도 한국·중국 등의 재빠른 상조 움직임을 보며 새로운 동아시아공동체 문화가 이 참담한 시련을 통해 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순진한 꿈을 꾸어보기도 했습니다.

재난에 대처하는 일본 사람들의 질서의식과 차분함, 빨리 빨리!만 외쳐대는 우리네 우격다짐과는 격이 다르구나, 새삼 부러워도 했고요.

끝없이 확산되는 원전재앙 공포로 이 모두가 한가로운 객담이 되고 말았습니다. 북아프리카도 아수라장으로 치닫기는 마찬가지. 시비는 철지난 바닷가로 떠나고 갈피는 안갯속에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독재자야 옹호할 수 없겠지만 그를 내치겠다는 공습에도 마냥 박수를 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21세기 문화의 시대에도 혼돈의 기운은 역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짱짱하기만 합니다.

그러니 낙원이 없다는 것이지요. 다 좋은 곳(것)은 없습니다. 있다 해도 잠깐이지요. 자연낙원은 지진·해일 같은 재해에 약하고 인공낙원은 방사능 같은 뒤탈에 속수무책입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이 세상에 없는 곳’이라는 뜻이고 새뮤얼 버틀러의 역유토피아 ‘에레훤(Erehwon)’ 또한 ‘없는 곳(no where)’을 뒤집은 말입니다. 그것은 ‘숨은 신’처럼 부재(不在)로만 존재합니다. ‘하면 된다!’ 무릅쓰면 쓸수록 그 대가만 심각해질 뿐입니다. ‘원전신화’가 그랬고 4대강도 그런 방향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중동에 뒤늦게 불고 있는 민주화 바람과 피의 수난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수십 년 독재가 내세웠던 낙원프로젝트 또한 신기루의 환상! 그것에서 깨어난 민중의 환멸감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항거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대륙을 낙원이라 했던가? 언제나 낙원은 공격과 정복에 취약합니다. 그와 그 동료, 그 후예들에 의해 이 낙원은 무참히 유린당했습니다. 불행은 원주민만의 것이 아닙니다. 정복자들은 계몽의 이름으로 원주민과 그들의 문화는 물론 그 터전인 대지까지 망가뜨리면서 오만과 아집의 화신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이 광기 어린 낙원 정복 과정을 그린 영화가 있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1492>. 음악은 그리스의 유명한 반젤리스가 맡았는데, 그가 음악을 맡은 영화가 흔히 그러하듯 이 영화도 음악이 더 유명합니다. <불의 전차>나 <빗속의 눈물>처럼.

오늘 반젤리스의 생일에 보내드리는 <낙원의 정복>, 매우 장중하며 주술적입니다. 엄청난 파도와 폭풍우 등 긴 고행의 항해 끝에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른 벅찬 환희의 두근거림이 이러할까? 환영의 북소리 같기도 하고 무서운 미래에 대한 경고의 울림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지금도 쓰나미 후유증, 방사능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동일본 주민들이나, 민주화의 쓰라린 시련을 겪고 있는 북아프리카 민중에게 이 음악이 작은 격려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더딘 봄 기다리는 우리 모두에게도 큰 힘 될 수 있었으면 참 좋겠고요.




※음악은 경향닷컴(www.khan.co.kr)과 이종민 교수 홈페이지 http://leecm.chonbuk.ac.kr/~leecm/index.php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